차등등록금, 무엇이 문제인가
차등등록금, 무엇이 문제인가
  • 김정래 편집위원
  • 승인 2011.11.2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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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來 교수의 世說直論22〕

한 나라의 주요한 교육정책이 정치적인 계산이나 시류에 휩쓸려 결정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봄부터 야기된 반값 등록금 도입을 주장하는 일부 좌파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일군의 학생들의 주장이 정치권에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한다고 내놓은 것이 정작 가계소득에 따라 등록금 부담이 달라지게 하는 차등등록금 정책입니다.

반값 등록금 정책의 폐해는 이미 지적한 바(제396호 세설직론) 있으므로 여기서는 차등등록금 제도 도입의 실체와 폐해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12년부터 교육당국이 거의 강제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이 정책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합당하지도 않고 교육적으로도 효과를 보기 어려운 정책입니다.

소득별로 차등하는 대학등록금은 반시장적 논리

정부 당국이 발표한 차등등록금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정부예산 1조5,000억 원과 대학예산 7,500억 원을 들여 가계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을 둬 대학등록금을 부담케 한다는 것입니다. 전체 대학생의 2.7%인 기초생활수급대상 가정 학생은 한 해 546만원의 지원을 받고, 소득수준 하위 10%는 321만 원, 하위 20%는 231만 원 정도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소득 상위 30%도 38만 원정도의 혜택을 받아 전체 대학생 등록금 부담은 평균 22% 정도 줄어들게 한다고 합니다.

또 이러한 당정(黨政) 협의를 거친 내용과 별도로 지난 달 교육과학기술부는 등록금을 감면해 주도록 규정한 ‘대학등록금에 관한 규칙’ 준수 여부를 토대로 대학에 제재를 가한다는 방침입니다. 그 제재는 차등등록금제를 실시하지 않는 대학은 정부 재정 지원에서 불이익을 받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제재 방침으로 교육과학기술부는 내년부터 대학정보 공시 때 저소득층에 대한 장학금 지급 현황도 공개하겠다고 합니다.

현재 정부의 ‘대학등록금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대학은 해당 학년 등록금 총액의 10% 이상을 학생 장학금으로 써야 하며, 총장학금 규모의 30% 이상을 경제적 사정이 곤란한 학생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파악한 최근 2년간 전문대학을 포함한 사립대의 학비감면에 사용한 장학금 지급 실태는 위의 규정인 10% 이상 사용 규정을 지키지 않은 대학이 2009년 31.5%, 2010년 26.8%였으며 저소득층 감면 비율 30%를 지키지 않은 대학은 2009년 80.3%, 2010년 77.7%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실을 근거로 해서 정부의 차등등록금 제도는 일견 대학의 장학금 지급 의무 이행을 독려하고 철저하게 감독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립대들이 규정에 따른 장학금 지급을 게을리한다는 것이 차등등록금제 도입의 논거나 명분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법령에 정해진 장학금 지급을 게을리했다면 그 의무사항 이행을 하도록 하는 조치가 따라야지 차등등록금이라는 제도를 국.공립대도 아닌 사립대에 강제한다는 것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조치입니다.

학비조달 어려운 학생에게는 장학금 혜택 늘려야

첫째, 차등등록금제는 등록금 제도이기 때문에 장학금 지급 의무 불이행을 핑계로 도입해선 안 됩니다. 등록금제와 장학금 지급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등록금제는 교육재정 분야의 문제이고 장학금은 학생 복리(welfare) 차원의 문제입니다. 재정은 효율성이 일차적인 준거가 되지만 복리 문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장학금 지급 실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그것을 근거로 해서 등록금제의 근간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은 합리적인 결정이 아닙니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등록금제는 장학금제도와 달리 시장 원리에 어긋나선 안 됩니다. 한마디로 차등등록금제는 반시장(反市場)적입니다. 엄연히 대학교육을 공급하는 대학 측에다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같은 교육서비스에 대해 각기 소득별 다른 가격을 지불하라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발상입니다. 학비감면이나 생활비 보조 장학금 지급은 학생의 가계소득에 따라 충분히 차등을 둬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장학금 지급의 취지에 맞습니다. 그러나 등록금의 책정 자체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을 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백화점에서 같은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면서 소득별로 차등을 둬 가격을 지불하게 한다면 그것을 누가 납득하겠습니까. 이에 대해 대학교육은 백화점의 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면 같은 서비스를 받는데 소득 수준별로 차등가격을 매긴다면 어떠할까요. 한 이발소의 똑 같은 서비스인 커트 요금이 소득별로 다르다면 이를 누가 수용하겠습니까. 이발소마다 가격이 다르거나 한 이발소에서 제공하는 상이한 이용(理容)서비스에 따른 차등가격은 수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같은 이발소 내 같은 서비스에 대한 가격은 누구에게나 동일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대학마다 등록금이 달라야 하고, 한 대학에서도 전공이나 분야별로 등록금이 다르게 책정될 수 있지만, 소득별로 다른 금액의 등록금을 납부하게 한다는 것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 등록금 자체를 아예 국가가 통제하는 상황에서도 설상가상으로 차등등록금을 매기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합니다. 마치 마르크스의 ‘강령’처럼, ‘부담은 능력에 따라, 혜택은 필요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가 모든 가격을 정하는 계획 경제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차등등록금제 도입은 교육에 대한 그릇된 관념에 기인합니다. 교육을 공공재 또는 공공서비스라고 보는 시각이 그것입니다. 국.공립대의 경우에 재원조달과 관리를 국가기관이 하니까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다지만, 국.공립이건 사립이건 교육은 공공재도 아니고 공공서비스도 아닙니다. 교육받은 결과 획득된 재능과 자질(talent)은 개인의 것이지 그 개인의 자질을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아무나 가져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유재입니다. 만약 사유재가 아니라면 차등등록금의 혜택(?)을 받아 진출한 저소득층 출신 인물은 차등 할인된 등록금으로 배운 재능과 자질을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 낮은 급여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성립해야 합니다. 이런 해괴한 경우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교육받은 결과가 사유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은 공공서비스도 아닙니다. 그냥 공익을 위해 가져다주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만 대학교육을 포함한 교육의 결과가 공적인 기여를 하는 것은 교육의 외부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교육서비스는 공공재 아닌 사유재

넷째, 이번 교육당국의 차등등록금 정책은 야권 일각에서 줄기차게 제기한 이른바 ‘반값 등록금’에 대한 민심무마용으로 보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값 등록금이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교육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등등록금 제도도 역시 시장원리와 교육원리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괴하기까지 한 등록금 차등정책을 편다는 것은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작년 지방선거 패배 이후 이어지는 선거에서 줄곧 연패하는 정부 여당의 딱한 처지를 이해하지 못 하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값 등록금’에 대한 대안(?)으로 이러한 정책을 버젓이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책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향후 정책 방향을 당연히 장학금 확충으로 잡아야 합니다. 어떻게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몇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첫째, 같은 교육을 받으면서 다른 가격을 지급토록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처지가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저소득층 학생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해선 안 됩니다. 일정기간 대학 생활에 필요한 학자금과 생활비 일부를 지급하되, 이후 학업 성적에 따라 그 지급 여부와 범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하위 10% 학생에게는 입학할 당시 학비 면제와 생활비 일부를 지급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2학년 진급 시 성적이 상위 20% 안에 들지 않으면 생활비 지급은 중단하고, 상위 50% 안에 들지 않으면 학비 면제의 범위를 축소해서 일부 학비만 감면토록 합니다. 이 규칙은 졸업할 때까지 매 학년 진급마다 적용하도록 합니다. 하위 20∼30% 입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이보다 조금 경감해서 지급하고 같은 방식으로 적용합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학업 우수학생에게는 늘 파격적인 장학금 지급 혜택을 주는 유인 효과를 병행해야 합니다. 드워킨(Ronald Dworkin)의 용어를 빌면 장학금 정책이 ‘endowment-insensitive’뿐만 아니라 ‘ambition-sensitive’쪽으로도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여기서 ‘endowment’는 개인의 배경요인을 지칭하고, ‘ambition’은 개인의 재능과 공과와 같은 개인변인을 지칭합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작용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sensitive/insensitive’로 나눠 본 것입니다. 물론 드워킨의 의견이 저와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저소득층 학생의 학업 여건 마련도 중요하지만, 장학금 정책은 그들의 학업 증진에 일차적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아울러 중산층 이상의 학생들의 면학 의욕도 고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학금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chuck-away)’가 돼 버립니다.

참고로, 드워킨의 이론을 간략히 짚어 보겠습니다. 드워킨은 재화의 분배는  ‘endowment-insensitive’를 수용하지만 동시에 ‘ambition-sensitive’가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평등한 자원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그의 이론은 일차적으로 사법절차 상 약자에 맞춰져 있어서 ‘ambition-sensitive’조차 제어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야 약자를 위한 재화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다고 본 듯합니다. 그러나 ‘ambition-sensitive’를 제어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그대로 장학금 정책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개인의 학업성취동기 요인을 유발하려면 개인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제 견해가 드워킨의 입장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둘째, 고등교육정책의 일차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맨 먼저 헤아릴 수 있도록 설정돼야 합니다. 국가 중추를 결정할 고등교육정책이 반값 등록금 논란을 피하고자 한다거나 아니면 장학금 정책과 등록금 정책을 혼돈한 상태에서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정책 아이디어의 빈곤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대학회계 상 몇 가지 문제를 놓고서 대학재정 전체의 틀을 흔드는 방향으로 정책을 강구해선 안 됩니다. 대학이 정해진 장학금 지급을 하지 않으면 장학금 확충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이를 빌미로 차등등록금 제도를 도입한다는 발상에 경계심이 앞서는 것은 결코 기우가 아닙니다.

셋째, 교육평가와 홍보 효과도 저소득층 복지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교육 본연의 학업 성취에 맞춰져야 합니다. 대학교육공시에 저소득층 장학금 지급 내용을 반영한다고 했는데 이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교육공시를 할 적에 학업우수 학생들에게 지급한 장학금 내역도 밝혀야 합니다. 장학금 얼마를 몇 명에게 지급했는가보다는 장학금 수혜 학생이 어느 분야에서 어떤 우수한 성과를 거뒀는지를 세세하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장학금이 원래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장학금은 연말이나 특정한 때에 맞춰 공급하는 불우이웃돕기 성금과는 다릅니다. 저소득층이나 독거노인 등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데 사용되는 재원이 아닙니다. 장학금의 일차적 목적은 학업을 이어가게 하고, 나아가서 학업 성취를 높이는 데 있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정치적 제스처처럼 반값 등록금의 대안 형식으로 차등등록금제를 추진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교육당국이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자초하는 꼴입니다. 결국 차등등록금제 도입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자꾸만 부정하고자 하는 좌파 논객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는 모양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김정래 편집위원.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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