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자
합창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자
  • 이근미
  • 승인 2011.11.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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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이 큰 화제를 낳았다. 청춘합창단 최고의 스타라면 단연 윤학원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이다. 청춘합창단 프로그램이 끝난 후 윤 감독은 신문 잡지 방송을 합쳐서 서른 번 넘게 인터뷰를 했다.

청춘합창단은 평균 연령 62.3세인 47명의 단원을 가려내는 오디션 과정, 3개월간 연습하는 과정, KBS 전국민합창대축제 ‘더 하모니’에 출전해 은상을 수상하는 과정이 안방에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최고령자 84세에서부터 각양각색의 합창단원들이 다양한 스토리를 쏟아내는 가운데 그룹 부활의 리더인 로커 김태원 씨가 지휘자로 변신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윤학원 감독은 합창 지휘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김태원 씨를 3개월간 지도했다.

"소리가 높아질수록 겸손해져라"

윤 감독이 주목을 받은 것은 김태원 씨의 멘토로 몇 차례 TV에 출연했을 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청춘합창단 최종 연습 때 상당히 불안한 상태였던 단원들은 윤 감독이 몇 시간 지도하자 급격히 실력이 향상됐다. 단원들을 가르칠 때 했던 “첫소리가 똑 같으려면 호흡을 같이 하라, 높아질수록 겸손해져라”같은 말은 곧바로 어록이 돼 인터넷에 떠다녔다.

청춘합창단이 합창대회에서 입상하기 까지 과정을 TV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휘자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합창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관객들을 통해 ‘합창의 힘’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성 강한 음색을 뒷받침하는 요란한 기계음과 현란한 몸동작에 익숙해져 있었으나 소박한 피아노 반주와 아름다운 화음은 감성을 뒤흔드는 원초적인 힘이 있었다.

실력 없는 지휘자와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팀과 실력 있는 지휘자와 목소리가 안 좋은 사람들이 모인 팀 가운데 어떤 쪽이 더 유리할지 궁금했다.

“좋은 지휘자가 있는 팀이 유리합니다. 목소리가 좀 안 좋아도 바꿀 수 있어요. 지휘자가 음악을 만들어 가는 방법과 느낌에 따라 합창단이 달라집니다.”

윤 감독에게 뜬금없이 우리 사회 진단을 부탁했다. 시끄럽기 그지없는 사회 곳곳에 좋은 리더가 자리한다면 합창단처럼 화합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였다.

“우리나라는 서로가 지켜야 할 걸 지켜야 하는 게 그런 게 없어요. 다 자기 마음대로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합창을 해야 합니다. 합창의 원칙은 민주주의예요. 민주주의가 뭡니까. 자기가 지켜야 할 걸 지키면서 남을 존중하는 겁니다. 합창은 자기 파트를 정확히 지키면서 다른 파트 소리를 듣습니다. 다른 사람 소리를 들어서 조화가 되도록 해야 아름다운 노래가 만들어집니다. 다른 사람 소리 안 듣고 내 소리만 내면 안 됩니다.”

윤 감독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지도자가 어떻게 하든 다 반대합니다. 이 사람이 해도 안 된다, 저 사람이 해도 안 된다고 합니다. 입시 위주 교육을 받아 자기 밖에 모르니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우리 사회의 화합을 위해서는 예체능교육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 윤 감독의 입장이다.
“예전에는 중고등학교에서 합창을 했어요. 지휘자를 따르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민주주의 과정을 익혀야 합니다. 체육도 하고 그림도 그릴 줄 알아야 감성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성품의 아이로 키워야죠. 요즘 대개 외동 자녀여서 혼자 자라는 데다 어울릴 틈이 없으니 점점 더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미국의 명문대는 중고교 때 단체생활을 얼마나 했나 꼭 점검합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미국 대학은 많은 사람과 어울린 것을 점수에 포함시키는데 우리는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윤 감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합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인천시의 각 동마다 합창단을 만들기 위해 관계자와 협의하는 중이다. “인천시에 건의를 했어요. 합창단이 조직되면 우리 단원이 각 동에 파견 나가서 가르치면 되니 실현될 거라고 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KBS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대회 참가 미션을 수행하자 각 학교와 기업체에 합창단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합창단 만들어내는 음악계의 전설

‘대한민국 합창계의 대부’로 불리는 윤학원 감독은 이미 음악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이다. ‘윤학원이 맡는 합창단은 세계적인 합창단’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낸 그는 월드비전 선명회어린이합창단 상임지휘자와 대우합창단을 비롯한 수많은 합창단을 이끌었다. 16년 전 인천시립합창단에 부임했을 때 전임 작곡가를 배정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로 인해 격조 높은 새로운 작품을 많이 선보이게 됐다. 인천시립합창단과 과거에 맡았던 대우합창단과 서울레이디스싱어스 합창단은 세계적인 합창 페스티벌에서 공연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지난 25년간 중앙대 음대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한국합창총연합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세계합창올림픽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순천시립합창단 이병직 지휘자, 월드비전 선명회어린이합창단 김희철 지휘자 등 현재 대한민국 합창단의 상임지휘자 가운데 60여명이 그의 제자이다.

73세인 윤학원 감독은 현역 지휘자로서는 가장 나이가 많다. 윤 감독 다음으로 나이 많은 그룹이 61세라니 띠동갑 후배들과 함께 달리는 셈이다. 아직까지 안경 안 끼고 악보를 볼 정도로 시력이 좋고 건강도 좋다. 건강관리를 위해 아침에 아령운동을 하고 저녁에 산책을 한다고 일러주었다.
 
교회음악 발전 위해 헌신하다

기독교 음악에도 그가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가 40년간 이끌었던 영락교회 시온성가대는 ‘성가대의 모범 답안’이라고 불렸다. 70세에 원로장로가 되면서 영락교회 성가대 지휘를 그만두고 현재 자양교회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자양교회는 원래 아들 윤의중 한세대 교수가 지휘를 맡았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 지휘자로 초빙되면서 윤학원 감독이 지휘를 맡았다.

“다른 사람이 1년간 맡았다가 제가 맡게 되었는데 가보니 찬양대가 자신감이 없었어요. 굉장히 잘하던 찬양대였어요. 교회에서 저한테 책임지라고 해서 가게 됐죠. 60명이었던 대원이 40명만 남아 있었는데 지금 70명으로 늘었어요. 첫날 ‘하나님께는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구체적인 소리를 만들어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윤학원 감독이 지휘하는 성가대의 운영 방식이 궁금했다. 일단 윤 감독은 6개월 동안 부를 성가를 미리 선곡하고 찬양대원들은 6개월간 부를 성가곡집과 그 곡이 녹음된 CD를 구입해 예습을 한다고 일러주었다.

“매주일 예배 마치고 다음 주에 부를 성가를 30분 정도 연습합니다. 대강 이런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죠. 1주일 동안 각자 악보를 보고 CD를 들으며 곡을 익힙니다. 주일 아침에 모여서 1시간 30분 동안 연습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매번 새로운 곡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은 새로 작곡한 성가곡들이 많은 덕분이다. 매년 7월 말이면 영락교회에서 전국 1200명의 지휘자들이 교회음악협회에서 내놓은 새 곡을 익힌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에 변변한 창작 성가곡이 없었다. 12년 전 지휘자 세미나를 위해 제작한 악보집이 저작권 문제로 폐기처분 당하고 손해배상까지 해준 일을 계기로 윤 감독은 ‘한국 성가곡’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작곡을 해도 성가곡집을 출판해주는 출판사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설립한 업체가 코러스출판사이다. 1999년부터 매년 30곡의 창작곡을 수록한 ‘예수 나의 기쁨’을 출간해 현재 12권까지 발간했다. 한국교회음악의 수준이 높아져서 이제 외국 지휘자들이 한국 창작 성가를 채택하는 상황이 됐다.

윤학원 감독은 현재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서 서울코러스센터를 개설해 코러스출판사와 함께 한국합창지휘자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합창 지휘자와 성가 작곡가를 양성하고 성가곡을 출판하는 중이다. 3년 과정의 합창 지휘 과정에 현재 20기가 재학 중이다. 10여 년 전 작곡가 5명이 모여 성가 작곡을 시작했는데, 현재 50명으로 늘었다. 작곡가들은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후 윤학원 감독의 지도를 받은 사람들이다.

윤학원 감독은 기독교음악을 알리기 위해 1989년에 서울레이디스싱어스 합창단을, 2004년에 윤학원코랄을 창단했다. 서울레이디스싱어스는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합창심포지움에서 연주해 최고의 합창단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지금은 아들 윤의중 교수가 지휘하고 있다. 윤학원코랄은 선교활동을 주로 펼친다. 얼마 전에도 서문교회에서 주민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열었다. 두 합창단은 아마추어 합창단인 만큼 회원들이 회비를 내서 운영하고 있다.

대를 이은 지휘자 가족

윤학원 감독은 코러스센터 3층과 4층에서 아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지하1층과 지상 1,2층에서 출판과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아들 윤의중 한세대 교수는 창원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이다. 고등학생인 손자도 지휘자를 꿈꾸고 있어 3대 지휘자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딸 혜경 씨는 서울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외국인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윤학원 감독과 윤의중 교수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초교파로 교회가 연합해 연주하는 헨델의 메시아를 대를 이어 연주한 기록을 갖고 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현역으로 일하고 명문대를 졸업한 자녀들까지 제 몫을 하고 있어 그에게 삶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의 노력으로 된 건 아닙니다. 젊었을 때는 새벽기도를 나갔어요. 지금은 집사람과 밤마다 성경 읽고 같이 기도합니다. 부모님이 신앙이 좋으셨는데 특히 아버지께서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윤 감독은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 1년 전에 하나님의 인도로 인천을 향했다. 38선 근처에 살던 아버지 친구 김 장로가 인민군에게 사고를 당했는데 아버지가 기도하는 가운데 “김 장로를 봐라. 빨리 떠나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모두 인천으로 이주하고 나서 1년 후 전쟁이 나면서 옹진은 휴전선 이북 땅이 됐다.

어릴 때부터 교회음악 속에 살면서 성악가가 될 꿈을 꾸었으나 “음악하면 밥 못 먹는다”며 부모님의 만류로 인천공고 응용화학과에 입학했다. 밴드부 활동을 하며 음악의 꿈이 되살아나 연세대 음대에 진학했고, 3학년 때 연세대기독학생연합회 합창단을 지휘한 것이 계기가 돼 오늘에 이르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인천으로 이사 와서 인천시립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윤 감독에게 인천은 제2의 고향이다. 윤 감독의 사무실에 걸려 있는 인천시립합창단 재창단 공연 포스터에 ‘세계 정상을 향하여’라는 구호가 담겨 있었다. 그 목표가 이뤄져 인천시립합창단은 세계적인 합창제에 초청되는 합창단이 됐다.

“2009년에 미국 오클라호마에 세계합창지휘자 6,000명이 모인 가운데 인천시립합창단이 연주해 대단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합창박람회에 아시아지역 합창단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됐습니다.”

인천시립합창단은 지난 10월 4-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오라토리오 뮤지컬 모세’ 공연을 마쳤다. 12월 15일에는 인천에서 크리스마스음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 음악회에 김태원  씨가 지휘하는 청춘합창단도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윤학원 감독의 소망은 세상 떠나는 날까지 지휘하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학교와 우리 사회 곳곳에 합창이 울려 퍼지는 날이 속히 오도록 힘을 기울일 계획이다.

글/ 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사진/ 인천시립합창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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