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홍수 그리고 王
태국의 홍수 그리고 王
  • 김용선
  • 승인 2011.11.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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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홍수로 수도 방콕의 왕궁 가까이까지 물이 차기 시작했다. 고령의 푸미폰 국왕이 입원 중인 병원 근방에도 물이 들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번에 피해가 이렇게 크게 확대됐을까. 금년 여름의 강수량이 예상을 넘는 양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돌고 있다.

태국의 우기는 매년 6월에서 10월까지이다. 이 기간에 북부농촌지대의 수위가 높아지면 왕실 관개(灌漑)국은 모세혈관처럼 퍼진 관개용수로를 통해 물이 잘 빠져 나가도록 수문을 조절하는데 농촌지대는 침수하더라도 하류의 도시 침수를 막는 치수 방식을 전통적으로 실시해 왔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방자치, 분권이 진행돼 중앙집권식 국가관개 기능이 약화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이익우선주의로 흘러 우기에도 자기 지역에 물이 차지 않도록 관개시설을 정비한 것이다. 이런 경향은 북부 농촌 출신인 탁신 전 총리 때 특히 활발했다.

금년 7월 우기에 국민의 관심은 정권교체선거에 몰렸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잃은 탁신 전 총리의 누이 동생인 젊은 여성 후보 잉락 타이공헌(貢獻)당 대표가 농촌표의 지지를 얻어 승리했다.

8월에도 비는 계속 내렸으나 국민은 군이 잉락 총리에 반대해 다시 쿠데타를 시도할 것인지 정국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9, 10월에 대형 태풍이 이 나라를 연타해 북부농촌지역의 수위가 높아지자 관개국이 수위 조절에 나섰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이 이에 저항해 작업 방해까지 있었다.

농촌지역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잉락 총리는 농촌지역에 강경책을 쓸 수 없었다. 넘친 물은 남쪽으로 내려와 수도를 향하고 공업지대가 물에 잠겼지만 이 물을 어떤 방법으로 바다에 흘려보낼 것인지 야당계 지사와 총리의 의견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총리는 ‘재해대책법’에 따라 군대 출동을 명령했으나 ‘긴급사태법’은 발동하지 않았다. 재해대책법에서는 경찰이 치안유지를 담당하고 출동한 군의 임무는 재난구조활동에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총리는 오빠를 추방했던 군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전례 없는 대홍수 속에 정치의 공전이 계속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의 일본의 사태를 연상케 한다. 두 나라 모두 사태는 심각하다.(마이니치신문 11/3)

정리: 김용선 객원해설위원 /서울대 공대 졸업 전 LG 경영개발원 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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