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호들을 행복하게 만든 기부서약(Giving Pledge)
미국 부호들을 행복하게 만든 기부서약(Giving Pledge)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1.12.0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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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기획 / 노블레스 오블리주2

2010년 8월 5일. 미국 시민들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비전을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했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데이비드 록펠러, 테드 터너 등 미국의 쟁쟁한 부호들이 모여 서약을 했다. 그 자리에는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도 있었다. 서약의 자리에서 그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렇게 서약합니다. 제가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재산을 갖고 있는 한, 저는 미국에 있는 모든 나이의 학생들이 그들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 장애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할 방법을 찾을 것이고 이를 위한 교육 개선에 쓰기 위해 제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합니다.”

기부 서약(Giving Pledge)이라고 불리는 이 모임에서 부호들은 자신들 재산의 50% 이상을 기부하는 데 흔쾌히 사인했다. 당시 40명이 기부를 약속한 금액은 최소한 1,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75조 원이나 됐다. 40명 모두 기부 결심을 담은 공개편지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재산 기부야말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고 해도 재산을 기부하는 것 만큼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기부서약이 정부나 시민단체가 다그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과 같은 이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네트워킹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2006년 캠페인이 시작되기 전에 버핏은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빌 게이츠 재단에 희사할 것을 약속했다. 버핏과 빌 게이츠는 이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의 동참도 이끌어 내보자는 데 뜻이 맞았고 2009년 3월 빌 게이츠는 데이비드 록펠러를 만난다.

부자가 부자들을 설득한 기부서약 운동

게이츠는 록펠러에게 이날 행사의 사회를 봐달라는 부탁을 했고 록펠러는 흔쾌히 동의했다. 버핏과 게이츠는 블룸버그 뉴욕시장과 조지 소로스, 줄리아 로버츠, 오프라 윈프리, 테드 터너, 피터 피터슨과 같은 이들을 초대하면서 각자 15분 정도 ‘박애주의’에 대한 연설을 부탁했다. 이때만 해도 이들에게 기부서약에 대한 언질은 없었다. 그해 11월 워렌 버핏이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만찬을 열었고 여기에 명사들과 함께 부호들을 초청했다.

버핏은 만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자리에 잠시 앉아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여러분과 후세들이 필요한 돈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적어보세요. 그리고도 남은 돈은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0년 6월 기부서약 계획은 그렇게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빌 게이츠와 버핏은 “서약의 뜻이 있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현재 총 70명의 부호들이 자기 재산의 절반 이상에 대한 기부서약을 했고 이 캠페인은 해외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버핏은 기부서약에서 “인도와 중국의 부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도 기부운동이 벌어지길 원한다며 방문을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우리는 미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자애로울 뿐만 아니라 역사상으로도 가장 박애적이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올해 4월 빌 게이츠와 버핏은 기부서약 캠페인 차 인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만찬에 초대됐던 중국 부호들의 행태도 뉴스가 됐다. 2010년 9월 빌 게이츠와 버핏이 주최한 자선 만찬에는 소호 차이나의 장신 회장과 배터리 사업으로 중국 최대 거부가 된 BYD의 왕추안후, 그리고 2006년 버핏과의 만찬에 62만 달러를 호기 있게 쓴 둔양핑과 2008년에 200만 달러를 쓴 자오단양 등이 초대됐으나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만찬 관계자는 “이날 만찬은 기부서약을 받는 자리가 아니었고 박애와 자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 부호들은 그 자리에서 기부서약을 요청받을까 두려워 서로 자리를 피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에 대해 진진핑 북경대 교수는 “미국의 기부문화는 가족을 우선시 하는 중국의 특성상 문화적으로 맞지 않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사정이 어떻든 이러한 기부서약이 성공적일 수 있는 배경에는 버핏과 게이츠 두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빌 게이츠 재단의 효율적인 자선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워런 버핏은 그의 기부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빈민들에게 1인당 매년 1달러밖에 안 되는 금액”에 불과한 액수임을 인정하며 “자선사업이 비즈니스보다 더 어려운 게임”이라고 평한 바 있다. 또 빌 게이츠는 “전 지구적인 개발과 교육이라는 문제의 규모를 고려할 때 우리는 해결책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도 말했다. 그 만큼 기부로 인한 자선활동은 치밀한 전략과 프로그램이 없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사실은 빌 게이츠가 초기에 자선을 부탁하는 사람들을 주먹구구식으로 돕다가 실망했던 경험담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작가 매튜 비숍이 쓴 ‘박애자본주의’에 등장하는 빌 게이츠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만약 자선단체들이 현재 손대고 있는 일의 종류를 절반으로 줄이고, 그들이 관심과 에너지를 거기에만 쏟는다면 훨씬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런 전문화는 흔한 일이죠. 왜냐하면 비즈니스에서는 경쟁적인 피드백으로 인해 ‘좋아, 넌 이것에만 신경 쓰면 돼. 그리고 최고가 되면 돼’라고 말하니까요. 그러나 자선 사업계에서는 대부분 너무나도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듭니다.”

자선사업에도 효율과 경쟁의 경영능력 필요

빌 게이츠 재단은 자선사업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경쟁과 효율이 존재해야 함을 발견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에 걸쳐 게이츠 재단은 박애자본주의 사상 가장 성공적인 교육부문 지원으로 기록될 1억3,5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뉴욕교육위원회에 증여했다.

의료부문에서 게이츠 재단은 2000년부터 제약업계의 거인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협력관계를 맺어 유아들에게 유용한 말라리아 약을 개발했다. 또한 세계백신면역연맹(GAVI)이라는 민관 단체와 협력해 대규모 백신개발 프로그램을 확장했고 그 결과 2007년 즈음에는 약 2,900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놀라운 성과는 빌 게이츠가 자선사업에 도입한 경영원리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2006년 게이츠 재단이 잡다한 사업을 정리하고 주요 활동 분야를 세 부문으로 재구성했던 것이 주효했다. 세 부문은 글로벌 의료보건, 글로벌 발전, 그리고 미국 사회의 불평등 해소였다. 게이츠는 2008년부터 재단 활동에만 본격적으로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빌 게이츠 재단의 사회사업과 비교해 볼 때 우리 형편은 사실 창피스러운 수준이다. 한 예로 2007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8,000억을 희사해 세운 ‘삼성 고른 기회 장학재단’은 한마디로 좌파 활동가들과 전교조 사업의 돈줄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월간조선>이 지난 2009년 8월호에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2006년 삼성이 8,000억 원을 출연해 설립한 국내 최대규모의 장학기금인 ‘삼성 고른 기회 장학재단’의 경우 좌파성향 인사들이 재단 이사진과 사업선정.평가위원단 전면에 포진돼 재단의 자금을 좌지우지하며 상당 금액을 좌파단체들에게 지원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한 지원 사례로는 민노당 선거운동을 지원한 노동실업광주센터에 2년간 1억5,500만원, 진보신당 창당발기인이 활동하는 청소년자활지원관련협의회에 2년간 1억3,000만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연구비 5,000만원, 광우병대책회의 등에 참여한 좌파성향 인사 6명에게 ‘공익활동가’ 지원 명목으로 7,500만원 지원 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최근 불거진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서 삼성 장학재단이 KTB 펀드를 통해 부산저축은행에 500억원을 투자했다가 날리고는 소송에 들어간 사실은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삼성 장학재단의 이러한 파행은 기업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이 아니라 정권과 결탁하거나 비리로 인한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오너들의 ‘뇌물’ 수준이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중론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벌들의 기부행위를 국민들이 영웅적으로 보아주지 않음으로 인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안철수 기부의 순수성 논란

최근 안철수 교수의 1,500억 상당의 재산환원 역시 이러한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의 기부서약과는 달리 안철수 교수의 희사는 대권을 향한 정치적 수순이라는 점에서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부서약은 그 어떤 정치적 행보와 관계없는 순수한 박애정신의 발로로부터 시작됐다.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한 이유가 ‘선출직 공직 당선자의 주식 처분 의무’ 때문이고 이를 주변에 토로하며 고심해 왔다는 이야기는 그의 기부 행보를 순수하게만은 볼 수 없게 만든다. 더구나 안철수연구소의 주식은 과대평가돼 있고 앞으로 정부의존 사업을 펼 수 없어 기업가치가 하락할 수 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정계 일각으로부터 안철수 교수가 최고 시세에서 지분을 정리해 대선활동 자금화하려 한다는 의혹마저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원래 닭이 벼슬(노블레스)을 자랑하지 않고 알(오블리주)을 낳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는 뜻으로 작명됐다고 알려진다. 안철수씨는 오블리주(알)로 노블레스(벼슬)를 사려는 것은 아닐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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