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병철 회장은 왜 밀가루에 ‘삼성’브랜드를 붙였나
故이병철 회장은 왜 밀가루에 ‘삼성’브랜드를 붙였나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1.12.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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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기획] 무엇이 일류를 만드는가

이병철 삼성 회장이 세운 제일제당은 1958년, 국내 최초로 토종 기술과 인력만으로 제분공장을 지었다. 완공 후 이 회장은 제분기계가 제대로 돌아갈까 걱정이었지만 밀가루는 아무 문제없이 잘 쏟아져 나왔다. 당시 밀가루는 미국 원조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다. 칼국수와 수제비가 없다면 배고픈 국민들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회장과 임원들이 모여서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밀가루 등급에 따른 명칭문제였다. 당시 제품에 등급을 매겨 상품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 회사는 가장 낮은 3급분(粉)에는 일단 백옥같이 하얗고 곱다고 해서‘미인’(美人)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급분에는 이보다 더 낭만적인 이름으로‘월세계’가 결정됐다. 문제는 1급분이었다. 회사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1급분에‘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토종 기술과 자체 인력으로 생산한 1등품 밀가루는 제일제당과 이병철 회장의 긍지였기 때문. 최초의 삼성 브랜드는 그렇게 출시됐다. 하지만 제일제당의 주력제품은 역시 설탕이었다. 그래서 한때 설탕, 밀가루, 시멘트를‘삼분’(三粉)이라고 불렀다.

70년대 중반까지 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명절 선물세트는 설탕이었다.

 
그런 설탕은 해방 후 국내에서 생산되지 못했고 전량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당시 설탕은 아주 고급품이어서 귀한 선물로 주고 받았으니 설탕값이 쇠고기보다 비싼 시절이었다.

국내에서 처음 그 귀한 설탕이 생산된 것은 휴전이 된 1953년 그해 11월. 제일제당이 설탕 생산공장을 지은 이래로 엿장사들은 울었고 떡장사들은 웃었다. 설탕은 순식간에 우리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음식에 설탕을 넣는 것도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텁텁하거나 짠음식에 설탕이 들어가면 어느 정도 감칠맛을 낼 수 있었으니 제일제당이 설탕공장을 지은 이래로 우리 밥상에서 설탕은 빠질 수 없는 양념이 됐고 급기야 당연히 제일제당의 매출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50년대 말 제일제당의 직원 월급이 당시 집 한 채 값이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제일제당 총각 사원은 일등 신랑감 1호였다.

이렇듯 설탕과 밀가루로 시작한 제일제당은 지난 해 매출 6조원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놀라운 것은 불과 3년 후인 2015년 매출을 15조원대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 김철하 CJ제일제당 대표는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바이오, 식품신소재, 한식세계화를 3대 성장 축으로 삼아 2015년 매출을 15조 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제일제당의 그런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다. CJ제일제당의 식품사업이 세계 최대의 식품시장 중국을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국내에서 쇠고기 맛으로 유명한‘다시다’. 중국 현지 브랜드를 중국인들이‘다-시-다’로 읽는‘大喜大’로 정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중국 다시다가 쇠고기가 아닌 닭육수맛이라는 것인데 중국인들이 쇠고기보다 닭고기를 선호한다는 현지화 전략이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중국 시장에서 다시다는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시장 안착 단계에 이르렀다. 베이징 조미료 시장 점유율은 무려 25%, 순위로는 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 CJ제일제당은 중국 베이징권 최대 식품기업인 얼상그룹과 합작해‘얼상CJ’를 설립, 얼상그룹의 두부 브랜드인‘바이위(白玉)’에 CJ 로고를 붙여 본격 영업활동도 개시했다. 그 결과 2년여 만에 베이징 두부 시장에서 점유율 70%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CJ제일제당은 일본 식품사업에도 야심차게 도전하고 있다. 대표적 한류음식인 김치, 잡채, 비빔밥 등을‘에바라 CJ’브랜드로 출시해 일본시장 공략에 나섰고 2015년에는 3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해 일본 내 한식 카테고리 산업부문 1위 브랜드로 성장한다는 방침이다.

과거 내수기업에 머물렀던 CJ제일제당이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60여년전 1등품 밀가루에‘삼성’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의 긍지와 고객에 대한 책임감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무엇보다 CJ제일제당 사원들에게는 현지화라는 글로벌 마인드와 함께‘코리아’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말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한류’. 이와 관련해 최근 K-POP의 열풍은 CJ제일제당의 중요한 영감을 주고 있다. 회사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가요제인 ‘MAMA’(M.net Asian Music Award)에서‘백설 브라우니 프리믹스' 등 다양한 식품들을 홍보하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이 2010년 들어 공을 들이고 있는 아이템이 있다. 다름 아닌 천일염.

우리나라 국산 천일염은 맛과 성분면에서 프랑스의‘게랑드’를 제치고 세계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면밀한 조사와 연구 끝에 100% 자연탈수 천일염을 개발했고 이를 ‘오천년의 신비’라는 브랜드로 지난해 런칭했다. CJ제일제당은 천일염 시장 세계 1위인 프랑스 ‘게랑드 소금’(약 1만5000t) 보다 생산능력이 25% 가량 많은 세계 최대 규모를 가지고 있다. 세계 명품 게랑드 천일염이 1Kg에 5만4,000원인데 비해 국내 천일염 1,100원으로서 약 1/50 수준이다. 품질이나 맛의 측면에서 국내 천일염의 경쟁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CJ제일제당이 국산 천일염의 세계화에 성공할 경우 그 시장은 무한대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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