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성찬으로 차려진 북한 신년사
언어의 성찬으로 차려진 북한 신년사
  • 미래한국
  • 승인 2012.01.0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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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상백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북한은 1일 노동신문과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3개 신문 공동사설 형식으로 김정은 시대의 첫 정책 기조인 신년사를 내놓았다.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2012년을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 제하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한은 실체 없는 김정일의 업적 선전과 함께 김정은 중심의 결속을 다지면서 지난 한 해 성과를 결산한 다음 새해 과제를 제시했다.

예상과 달리 새해 공동사설은 전반적으로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과 내용, 형식 등 모든 면에서 지난해와 비슷했다. 양적인 면에서 지난해의 1만3천여 자와 같은 양을 유지했다. 내용에서도 선군정치와 강성국가 건설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개혁.개방 등 획기적 내용은 역시나 없었다. 지난해 성과 결산 등에서 계량화된 통계수치 하나 없이 화려한 언어의 성찬으로 차려진 속 빈 강정이었다.

공동사설은 올해도 그동안 김정일이 추진해온 국정 운영노선을 그대로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김정은에 대한 '유일적 영도체제'와 충성을 역설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설은 먼저 현란한 수식어를 총동원해 김정일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그의 유훈 통치에 따른 기존의 정책 노선을 국정운영 정책방향으로 제시했다. 선대의 후광으로 취약한 권력 입지를 다져나가려는 속셈으로 읽혀진다.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그토록 선전해오던 ‘강성대국’ 구호가 ‘강성국가’로 꼬리 내려지면서 ‘강성부흥’ 등의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의 해’가 됐음에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음을 반증하면서 경제분야의 성과 부진을 자인한 셈이다. 지난 2010년엔 공동사설에서 ‘강성대국’ 구호가 16회, 지난해엔 19회 사용된 반면 올해는 5회로 그쳤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공동사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년 연속 '경공업과 인민생활'을 강조하면서 “인민의 기호에 맞고 인민의 인정을 받는 질 좋은 경공업제품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나오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전히 생필품 부족 현상이 극심함을 드러냈다.

사설은 올해에도 "현 시기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를 푸는 것이 강성국가 건설의 초미의 문제"라며 식량 확보를 최급선무로 내세웠다. 이어서 "당 조직들의 전투력과 일군들의 혁명성은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검증된다"고 윽박지름으로써 식량 확보가 김정은 체제 안착을 위한 최우선 과제임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경제난과 식량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김정은 체제의 난항이 점쳐진다.

사설은 외부사조 유입에도 각별한 주의를 돌렸다. 공동사설은 “제국주의 사상 문화적 침투를 분쇄하고 이색적인 생활풍조를 뿌리 뽑기 위한 투쟁을 강도높이 벌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외부사조 유입으로 취약한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까봐 한류 열풍 방지 등 사회.문화 부문에서 엄격한 통제가 뒤따를 것임을 암시한다.

공동사설은 대남분야에서 김정일의 사망과 조문에 대한 우리정부의 대응에 대해 "남조선 역적패당의 반인륜적.반민족적 행위" 등 직설적 표현으로 거칠게 비난했다. 구랍 30일 북한 국방위원회 대남 성명에 이은 31일 조평통 대변인 성명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북한의 '상종 거부' 주장 등 거친 대남 비난은 김정은 체제의 권력 기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한 술책일 수 있으므로 우리 측의 조건 반사적 반응은 금물이다.

사설은 6.15공동선언 실천 강령인 10.4공동선언 5주년이 되는 올해에 ‘온 겨레가 새로운 신심에 넘쳐 조국통일의 문을 열어나가자’는 구호 아래 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하자며 대남 선동에 열을 올렸다. 우리의 양대 선거를 겨냥한 꼼수다. 공동사설은 또 5년 만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남남갈등과 한미공조에 틈새를 벌려보려는 속셈이다.

올해 사설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과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다는 점이다. 공동사설에는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단골 메뉴로 등장했던 '비핵화 실현' 입장 등 표명이 전혀 없다. 아울러 미국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현재 진행 중인 미.북 대화와 식량지원 논의를 의식한 꿍꿍이로 진단된다.

그 외 대외분야에서도 공동사설은 지난해 김정일의 중국과 러시아 방문 사실 정도를 언급했을 뿐 특징적인 내용 없이 기본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만 내비쳤다. 나진.선봉 경제특구 등을 중심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및 러시아와 정치.경제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심산쯤으로 해석된다.

결국 우리의 관심은 김정은 체제의 대남 태도로 모아진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론 올 한해 남북관계는 경색 국면이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사설에서 지난해 북한이 남한 당국에 폭넓은 대화와 협상을 제기하고 그 실현을 위해 시종일관 노력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민족화해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을 눈여겨봐야 한다. 남북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인도적 대북지원 속에 당국 간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놓고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조급성은 금물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원칙 있는 대북정책’ 기조에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김정은 체제는 여전히 선군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대내외 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내부 결속 차원에서 언제든지 정세를 조작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한은 우리의 양대 선거 정국을 자신들의 호기로 판단하고 국론 분열을 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온 국민이 단결해 북한 측의 이 같은 책동을 사전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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