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제는 자유의 북진이다
통일 이제는 자유의 북진이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1.0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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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북한은 권력 이양 이후 시장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붕괴할 것이다.”

김정일이 사망하기 약 보름 전, 바실리 미헤예프(Vasily Mikheev.57) 러시아 국제경제.국제관계 연구소(IMEMO) 부소장은 국내 한 세미나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러한 결론의 배경은 과거 동구와 소련의 몰락 경험과 함께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개방 전략의 스탠스 때문이다.

이 보고서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러시아 국제관계연구소는 지난 9월, 러시아 국책연구기관 최초로 ‘전략적 세계전망 2030’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며 북한 붕괴 시나리오를 공식으로 언급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미헤예프 부소장은 1981-1984년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의 1등서기관을 지내고 1980년대 말에는 한·소 수교에 관여하는 등 30년 넘게 한반도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러시아 국책연구원, “北 급속 붕괴”

IMEMO의 보고서는 우리에게 김정일 사망 후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성찰의 기회를 준다. 언론에서 요란하게 떠드는 문제들, 즉 김정은의 수령체제가 유지될 것인가, 누가 권력의 1인자가 될 것인가, 중국은 북한을 삼킬 것인가, 이러한 추측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시장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헤예프 부소장의 견해는 명쾌하다.

“중국은 북한 붕괴로 수백만 명의 난민이 유입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중국은 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하도록 추동하고 있다. 즉 ‘경제 개혁만이 정권의 안정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경험에 근거한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옛 소련, 동유럽을 볼 때 시장경제 도입은 정치 개혁 요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장은 북한의 선택에 여지가 없음을 의미한다. 김정일 이후의 집단체제든, 3대 세습 수령체제든, 결국 북한 주민을 기아에서 구해내지 못한다면 ‘북한정권 붕괴’라는 결론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고 문제는 시간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북한이 김정은의 우상화를 완료하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동시에 그 우상화를 심화하면 할수록 주민들의 반감도 증대될 것이고 북한 붕괴 과정에서 그 타격도 깊다고 예상해 볼 수 있다. 과거에 김정일 우상화 시기와 지금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故 황장엽 선생에 이어 북한민주화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홍순경 위원장(前북한 외교관)의 설명이다.

“김정은의 차기 수령체제를 굳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김정일의 세습독재에는 장기간의 공작이 있었지요. 그때 북한의 경제 형편도 지금과 같이 최악의 상태가 아니었고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도 있었습니다. 민심도 김일성을 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형편이 그때와 다릅니다. 국제적으로도 사회주의는 모두 망했고 민심도 반정부로 돌아선 지 오래됐지요. 특히 김정일의 경우 27세 나이에 대장 칭호를 붙였는데 군에서 10여년씩 있던 사람들이 불과 몇 개월만에 대장 칭호를 단 김정은을 인정하겠습니까. 대놓고 말을 못할 뿐이에요. 그만큼 틈새가 벌어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에요.”

제안 하나 : 자유의 핵실험장, 북한 장마당을 키우자 

홍순경 위원장의 분석은 ‘시장에 의한 북한 붕괴론’을 주장한 미헤예프의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김정은의 우상화를 진행시킬 사회, 경제적 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 전문가로부터 하나의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자유의 북진’이 북한정권 붕괴의 열쇠라는 점이다. 시장은 다름 아닌 ‘경제적 자유’이고 체제의 문제점을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거짓으로부터의 자유’다. 따라서 북한에 더 많은 시장경제 요소들이 등장하고 더 많은 진실들이 유통된다면 그 만큼 북한정권의 붕괴는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북한 주민들의 인식이다. 2010년 통일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의 인권 인식은 매우 낮지만 최근 장마당 경제의 활성화 과정에서 소유권과 인권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진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주민 인권 인식 실태연구’(이금순,전현준, 2010.6.)라는 이 보고서에 의하면 2010년에 입국한 2000여명에 달하는 탈북민 전원에 대한 설문 및 심층면접 조사결과, 최근 북한에서는 ‘공개처형’과 ‘장마당 경제활동 탄압’을 가장 높은 부당한 사례로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에서 공개처형에 대한 부당 인식이 높아진 이유는 바로 ‘뇌물’이었던 것. 보고서는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에서 공개처형은 보위부 등에 뇌물을 줄 수 없는 가장 취약한 사람이 선정된다’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북한 사회에 뇌물은 만연해 있고 결국 주민들 사이에는 ‘돈이 없으면 억울하게 죽는다’는 생각들이 일반화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 당국이 수시로 장마당을 급습해서 주민들의 물건과 돈을 압수하는 것에 대해 ‘생존권’ 차원에서 저항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장마당 단속이 나오면 사람들은 물건을 개지고 이리 저리 뛰어 도망가요. 그래서 장마당을 ‘메뚜기 장’이라고 해요. 그런데 한 번은 단속요원들이 들이닥쳤는데 할머니 한 분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거야요. 그러니까 그 요원이 할머니에게 ‘이 에미나이 뛰는 척이라도 하라’하니깐 할머니가 ‘내래 죽은 메뚜기다’하며 버티지요. 그 순간에 물건을 빼앗긴 사람들이 와~하면서 다들 단속요원에 대들으니깐 그들도 줄행랑을 쳐버렸지요.”

지난해 탈북해 입국한 최모 씨(여.47)의 증언이다. 청진시에서는 규찰부, 보위부 등이 장사를 못하게 막자 시장관리소에 여성들이 몰려와서 “장사를 못하게 하겠으면 배급을 달라”, “줄 쌀이 없으면 장사를 하게 해 달라”고 외치며 거세게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증언도 있다. 이들은 해산을 시도하려는 보안원들에 “일하면 배급도 주지 않고, 월급이라야 이것저것 다 제하고 나면 500원 정도도 안 되어 주나마나 하니 어떻게 살라는가? 이런 시책은 백성들을 살라는 건지 죽으라는 건지 말하라” 등의 언사를 퍼부으며 항의했다고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북·중 접경지역 공단 통해 북한 생필품 공급 검토 필요

실제로 북한의 장마당은 배급이 끊긴 북한사회에서 유일한 주민들의 생존 공간이다. 대개 장마당의 물건들은 군부나 고위관료들이 빼돌린 물건들이 나와 비싸게 팔린다. 홍우택 통일연구원 연구원은 북한 장마당이 북한 주민들의 ‘권리의식’을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본다.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이나 조선족이 밀집한 지역에 북한에 필요한 내수용 생필품을 생산하는 공단을 지을 필요가 있습니다. 개성공단의 경우 남한이나 해외 수요를 위한 제품들이어서 북한에 흘러들어가기 어렵지만 중국에 이러한 공장을 지으면 상품들이 북한 장마당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죠.”

홍 연구원의 제안은 어차피 중국을 통해 고가의 밀수품이 북한 암시장에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국내 공단들이 생산을 시작하면 더 많은 상품들이 북한 장마당에 유입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북한의 주민 시장 경제규모가 커진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사실 단둥지역에 한·중 공동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통일 이후 중국과의 국경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고려해 볼 만한 사항이다.

현재 단둥지역에는 남한의 의류업체들이 많이 진출해 있으며, 이들의 생산품이 북한 내로 흘러들어가고 있음을 볼 때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중국에서 남한 기업에 의해 생산된 제품이라는 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발생하는 효과가 작지 않을 것임을 홍 연구원은 지적한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장마당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 주민들의 소유권 개념도 그만큼 확대되고 높아진다. 그것이 다름 아닌 ‘북진하는 자유’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북한에서 체제 비판이 아닌 경제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행해지는 발언에 대해 당국으로부터 자유가 주어지기 시작했다는 점도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배경은 북한 장마당의 활성화로 부를 축적한 주민과 그렇지 못한 주민들간의 이해관계를 북한 당국이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통일연구원의 보고서는 지적한다. 경제적 자유가 확대되면서 언론의 자유도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실이다.

제안 둘 : 북한 사회에 진실의 유통량을 늘리자

자유를 북진케 하는 또 다른 방법은 주민들 사이에 ‘진실의 유통량’을 늘리는 방안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을 비교해 볼 기회를 갖게 하는 것. 동시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치 규범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북한사회가 얼마나 페쇄적이고 후진적인 사회인지를 알게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북자유방송과 전단지(삐라), 그리고 영상물 등은 유력한 수단으로 거론된다. 문제는 최근 급증한 대북방송들의 경우 실제로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청취하는지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단파.중파 라디오를 최대한 북한에 많이 공급하는 전략이 요청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폐지된 대북방송도 전면 확대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980년 6월 편성된 대북방송 ‘노동당 간부들에게’는 당시 소련의 아프간 침공과 폴란드 노조의 자유화운동, 중국 등소평의 개혁개방의 소식을 북의 고급 엘리트들에게 알리면서 공산주의의 모순점과 민주체제의 우월성 등을 논리적으로 설득해 나갔던 대북심리전의 핵심 수단이었다. 그 결과 1983~1987년 사이에 고급 탈북민들의 귀순 러시가 시작됐다. 1983년 2월 22일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대위를 비롯 5월 7일 신중철 대위, 1987년 김만철 가족, 유천수 하사, 홍명준 중사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웅평은 ‘노동당 간부들에게’ 방송이 북한 간부들에게 매우 불편한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부 집권 이후 대북 프로그램들에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 금지됐다.

폐지된 대북방송 재개 필요

2000년 6·15선언 이후에는 30여년간 지속되던 ‘노동당 간부들에게’, ‘남과 북 마주보기’, ‘남북분단 50년사’ 등 주요 프로그램들이 폐지된다. 특히 ‘노동당 간부들에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폐지됐다. 이때부터 남한의 대북심리전은 본격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하고 대북방송은 북한체제 비판 금지로 연성화되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것은 2003년 북한이 대남선전방송 ‘구국의 소리’를 폐지하는 조건으로 남한의 대북방송 폐지 제안을 노무현 정권이 사실상 수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대북방송 재개와 함께 영상물의 대북 보급이 요청된다.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 잘못 인식된 사실이 하나 있다. 북한에 보급되는 남한의 드라마가 북한 주민들의 생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이다. 통일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탈북민들은 남한의 드라마를 보며 그것을 대한민국의 현실로 인식한 경우는 극히 저조했다.  극 속의 꾸며진 이야기로 인식했을 뿐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볼 때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영상물은 국내 장애인이나 소외층을 다룬 다큐멘터리라고 탈북민들은 지적한다. 남한의 장애인이나 가난한 빈민층의 삶이 오히려 자신들의 삶보다 낫다는 점을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인권의 가치 등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주고 북한 내부가 스스로 시장경제와 개혁개방으로 나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눈을 뜨면 북한정권은 하루 아침에 붕괴되고도 남습니다.”

홍순경 위원장의 말대로 이제부터 우리가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은 ‘자유의 북진’ 운동이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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