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을 붕괴시킨 고르바초프의 선택
소련을 붕괴시킨 고르바초프의 선택
  • 미래한국
  • 승인 2012.01.1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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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유럽] 로드릭 브레이스웨이트 전 주러시아 영국대사

 
1991년 고르바초프가 소련 대통령에서 사임한 이후 러시아에 기대했던 허다한 희망이 무너졌다. 그러나 희망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오늘날의 러시아는 옛날의 소련과는 달리 비교적 개방 번영된 사회로 변모했다. 1989년에 변화를 열렬히 지지했던 러시아인들은 그들의 권리를 다시 주장하기 시작한다. 푸틴의 대통령선거 재출마 결정은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실책이 되고 말았다.

역사학자들은 로마제국이 무너진 사유를 아직도 밝히지 못하고 있듯이 소련이 붕괴된 사유를 해명하지 못할 것이다. 1960년대부터 소비재 부족, 원시적 생활조건, 노후한 공장, 제 기능을 상실한 농업, 중화학공업과 국방부문에 대한 불균형한 집중투자, 제로에 가까운 경제성장 등으로 소비에트 체제는 심각하게 쇠퇴해 냉전시대에 이미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명백한 징조가 있었다. 흐루시초프는 이 체제를 개혁하려다가 축출됐다.  

1988년 제국적 지위 포기 선언

 
그 다음 15년간 소련은 원유고가시대를 누리고 살았다. 그러나 반체제 인사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진정한 정치개혁 없이는 경제가 침체하리라고 공개적으로 예언했다. 소련 공산당 정치국에서는 1985년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적임자로 고르바초프를 선출했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정력적이며 정통파였다.

소련의 체제는 과감한 변혁이 없이는 재활할 수 없다고 그는 믿었다. 그는 1988년 12월 UN 연설에서 소련이 제국적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언급했다. 1989년 3월에는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선거가 실시됐다. 그러나 그도 경제문제에 봉착했다. 기능을 상실한 체제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체제를 가일층 불안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소련 붕괴 2년 전인 1990년 초 나는 “혼란스럽지만 꾸준하게 소련의 해체가 진행 중임”을 본국에 서면 보고를 보냈다. 이 판단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 정부 분석가들은 1989년 4월 말까지도 소련이 앞으로도 예측 가능한 미래에 서방측의 주적으로 잔존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정치적이고 심지어 사회학적이기도 하다. 냉전기간 중에 양측은 모든 사안을 흑백으로만 보았다. 관리들은 최악의 분석에만 집착했는데 이것이 안전했기 때문이다.

군부는 군비예산을 더 많이 받아내고 보다 더 정밀한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의 위협을 자주 언급했다. 1988년 한 CIA 정보분석가는 “제정신이 아니다” 라는 평가를 두려워해 소련을 종말로 이끌 수 있는 요인은 분석도 하지 않았다고 미의회에서 증언했다. 동서 양측의 보좌관들은 그들의 상관이 듣기 원하는 사항만 보고했다.

서방진영에서 고르바초프는 소비에트 체제의 철폐가 아니라 어리석게도 겨우 그 개선에 착수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의 집권 기간 중에 소련은 공산주의로부터 사회민주주의와 유사한 체제로 변화의 먼 길을 걸어왔다. 이는 존경받을 만한 정치인이 취할 합리적인 노선이었다.

그가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을 비난할 수 있겠지만 그는 급격한 자유시장이 초래할 혼란을 두려워했다. 옐친은 허둥지둥한 개혁으로 고삐 풀린 인플레와 그로 인해 수많은 러시아 인민들이 여러 해 동안 빈곤상태에 이르게 했다. 이는 아마도 필요한 변화의 불가피한 대가였을 것이다.

체제 변화 따른 경제 혼란 막는 데 역점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각 공화국과 지역에서 민족주의의 발호를 억제하지 못한 것을 비판 받고 있다. 1989년까지 지역별 민족주의는 그 억눌린 속박에서 벗어났는데 고르바초프는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었지만 소비에트연방의 여러 공화국으로 구성된 진정하고 자발적인 연합체를 창건하려고 애를 썼다. 이는 바로 서방 지도자들이 핵의 초강대국이 유혈로 발칸반도처럼 분할 해체되는 것보다 훨씬 선호한 해결책이었다. 1991년 고르바초프를 거역한 반란과 옐친 자신이 전권을 장악하려는 결심으로 그의 시도는 중단됐다.

러시아는 기아와 빈곤, 그리고 초강대국 지위 상실로 인한 모멸감과 깊은 분노로부터 다시 태어났다. 고르바초프가 그들에게 가져다 준 공산주의 종말과 자유를 환영하던 러시아인들 조차도 그들의 위대한 조국의 멸망 때문에 그를 비난했다. 지금 러시아인들은 믿지 않지만 서방진영에서는 진정한 선의와 도움을 주려는 열망이 일어났었다. 몇몇 군데에서 서방진영은 러시아를 뜻대로 굴종시킬 수 있다는 오만한 승리의 표시가 있었다. 이것이 현실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이는 결코 올바른 정치가의 도리는 될 수 없다.

서방진영의 정책은 이 양면을 반영했다. 우리는 러시아의 부패한 정치와 인권 침해를 얘기했다. 값지고 가끔은 하찮은 경제자문도 제공했다. 우리는 러시아가 서방진영의 해외정책 목표를 채택하도록 주장했다. 그러나 서방진영은 러시안인들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발언권과 영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를 도외시했다. 서방진영은 잦은 구두 언약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정반대로 NATO를 확대했다. 서방진영은 러시아 동맹국 세르비아를 폭격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인근 지역과 국가의 내정에 간섭했다. 서방진영은 그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을 뿐더러 가장 자랑하는 자유경제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다고 러시아는 믿고 있다.

동시에 반드시 인과관계는 아니지만 러시아의 정치는 점점 지저분해지고 있다. 풍부한 원유매장량은 정치적 관행과 결착해 근본적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 소비에트연방이 그 종말의 막을 내린 지 5개월이 지나 나는 러시아가 경제와 기타 난관을 극복하는 데 수십 년 혹은 여러 세대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기록했다. 러시아가 결국 의심할 나위 없이 불완전하지만 고유의 민주주의를 개발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얼빠진 하나의 낙관론적 예언이 아니라 아직도 실현될 수 있는 명제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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