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 정치판의 동네북인가?
재벌이 정치판의 동네북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12.01.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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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길]황의각 편집고문, 고려대 명예교수(경제학)

 
총선과 대선을 앞에 둔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재벌(대기업) 두들겨 패기 경쟁에 나선 것 같다. 돈 벌 수 있는 일에서 물불 가리지 않는 재벌기업이 당분간 방망이를 든 정치권 눈치보며, 자기맷집을 미리 점검하며, 선거가 끝나고 새 질서가 잡히기까지 곤욕의 때를 겪어야 하게 생겼다. 하기야 재벌들이 이런 시련을 한두 번 당해본 것도 아니어서 매 맞는데 어느 정도 이골이 붙었고, 또 우리 사회에는 아직 자유주의시장경쟁 원칙을 사수하려는 일부 우호세력도 적지 않으니 크게 위축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금년의 총선과 대선 이후 정치권에서 사회 정의(正義)에 대한 기존 이념적 해석이 달라지는 결과가 초래되면, 그동안 시장경쟁체제하에서 쌓아온 대기업의 큰 몸집과 부(富)의 축적이 와해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 기업의 입장에서는 금년 양대 선거를 결코 안이하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일단 선거 태풍이 지나고 나면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에 따른 국제경쟁력을 발휘해 경제성장에 기여하도록 다시 권유를 받고 힘을 얻어 새로 뛸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 상황 변화와 더불어 사회일반국민의식이 많이 변하고 있다. 다수 국민의 보편적 기대치가 기존체제나 질서에 반해 급속하게 전향적으로 되고 있다. 금년 양대 선거에서 각 분야에 걸쳐 종래와 차별화된 이념정강정책을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할 경우 당연히 기존질서를 갈아 엎어버리려고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경제와 기업정책 그리고 기업소유구조개혁에 대한 정책변화가 시도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재산소유와 사회경제활동의 평등을 내세운 사회주의적 복지정책이 강조될 것이고 대기업 해체 또는 개혁과 변화 방향으로 나라경제를 재편성하려 할 것이다. 정치권 권력중심축이 변동될 경우 그동안 여론몰이로 비난의 대상이 돼온 재벌그룹이 살아남아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개혁될 수 있을지 또는 해체 위기를 맞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요즘 정치권 논쟁 중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된 재벌기업, 그 정의(定義) 및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재벌이란 1960년대 경제개발정책 추진하에서 성장하게 된 복합기업 중에서도 주로 가족구성원이나 일가친척으로 구성된 기업집단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거의 모두 예외없이 재벌기업의 특성을 지니고 성장했는데 이들은 생산구조상 다면다각화를 통해 많은 계열기업을 소유하고 있으며 외형상으로는 독립돼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산하기업 간에 자본소유와 친인척 임원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상호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기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이들의 독과점경영이나 은행업과의 겸업경영 또는 연결소유를 방지하기 위해 금산분리법, 출자총액제한 및 상호출자채무보증제한 등 여러 가지 조치를 통해 규제하며 관리해 왔다.

재벌로 불리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고용 및 국제경쟁력 제고에 기여한 막중하고도 긍정적 공헌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게 된 이유는 사회 전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한 책임에 대한 비난 여론 때문이다. 경제성장 과실의 큰 몫을 이들 소수 재벌기업과 기업주들이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중소기업들과 일반근로소득자들의 성장배당 몫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는 것이 비난의 근거이다.

소득분배의 불균등화 현상은 시장경제운영체제에 내재된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자유주의시장경제체제를 보완하기 위한 경제주체로서 대기업주들이 보여야 할 사회적 윤리와 도덕의 부재, 그리고 사회적 나눔정신의 결핍에 대한 책임은 면할 수 없다. 재벌과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와 높은 자본과 기술생산성을 통해 획득한 성장 파이(pie) 중 큰 몫을 차지하고도 이들이 부의 사회환원에 인색함으로써 부의 배분에서 소외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다수로부터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소득에 비례해 누진세를 부과하는 조세제도를 적절히 도입해 실행하지 못한 정부 당국의 책임 또한 크다.

실제로 물욕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처럼 대기업은 막대한 자본력과 경영능력을 이용해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확대함으로써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사업영역을 위축시켜온 것에 대해 사회적 비난을 받아오고 있다. 이윤의 기회가 있는 곳에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다. 자본주의 경제운영의 근간인 시장과 이윤동기를 좇는 자본은 그 자체로 ‘정의(正義)나 부정의(不正義)’와 같은 윤리개념과는 독립적이다.

사회정의와 윤리 그리고 법규준수는 기업주, 경영자, 소비자 그리고 관리감독을 책임진 정부당국을 포함한 모든 시장참여자들이 지켜야 할 절대규범이다. 우리나라 대기업과 관련된 문제는 사업 다변화와 경쟁력 확대를 통해 성장하려는 기업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기업을 지배하는 기업주의 공정한 사회적 윤리, 도덕심, 기업철학과 선의의 관리능력의 부재에 있다.

따라서 정치권은 재벌과 대기업의 해체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창업주와 그 혈족에 의한 피라미드식 지배구조에 내재된 병폐를 수술하는 정책 채택(예컨대, 합리적 조세정책)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재벌기업의 가치와 역할은 정의로운 사회규범이라는 상황에서 그 규범에 일치하는 정의로운 책임의식 실천철학을 가진 기업주가 기업윤리와 사회법규를 준수하며 경쟁적으로 선의의 경쟁과 이익추구를 할 수 있도록 정부당국이 제도적으로 관리감독할 때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해체시키고 시정해야 할 대상은 재벌이나 대기업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기업주들의 소실된 기업윤리와 각계각층의 사회정의의 부재 및 정부정책의 실패가 그 개혁대상이다. 작금의 이 나라 정치판에서 시장경제체제를 버리고 사회주의경제체제를 도입하려는 정치인들의 주장이 커지고 있지만 그런 체제로의 전향은 분명 시대와 역사 진행에 역행하는 잘못된 선택이 될 뿐이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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