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기업 공공의 적인가 성장의 견인차인가
재벌기업 공공의 적인가 성장의 견인차인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1.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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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맑은 날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를 자녀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물리학의 복잡한 양자역학 이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 역시,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자라면 이해도 설명도 쉽지 않다. 시장 참여자의 의사결정을 분석하는 ‘크라우딩 아웃’, ‘합리적 기대가설’ 등은 웬만한 일반인들은 경제 지식이 없으면 단 한마디도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에는 항상 ‘미신’과 ‘주술’을 도입해 왔다. 그러한 미신 가운데 하나가 ‘재벌기업은 악’이라는 것과 ‘재벌기업을 중소기업 시장에서 쫓아내면 양극화가 해소된다’라는 주술이다. 그러한 효과는 벌써 두부와 콩나물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풀무원과 CJ는 포장두부 가격을 현재보다 20% 올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두부시장에서 대기업의 확장을 제지하자 시장을 넓힐 수 없는 대기업들이 비용보전을 위해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가격이 안정되려면 중소업체들의 공급이 이뤄져야 하는데 여기에는 대기업들이 개발한 ‘포장두부’의 포장기술이라는 장벽이 놓여 있다. 과거 재래시장에서 신문지에 싸 주던 두부는 CJ와 풀무원, 두산 등이 잇달아 개발한 첨단 진공포장 방식으로 그 매출이 10배 이상 늘었다. 당연히 관련 중소기업들과 유통사도 성장했다. 하지만 기술이 없는 중소기업의 진입 부재와 대기업 진출 제한으로 소비자는 가격이 오른 두부를 사야 하고 하청관계에 있던 중소업체들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정부의 미신과 주술로 인해 소비자 국민이 오히려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 ⓒ
미신 하나. 재벌이 양극화를 만들고 있다 

‘재벌기업’이라고 하면 우리 국민들은 우선 음침하고 탐욕스럽다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삼성, 현대, SK, LG, 두산 등 재벌기업들은 항상 취업 대상 1순위에 들어간다. 대학생들과 청년들은 재벌기업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비판하다가도 막상 취업 시즌에 원서를 제일 먼저 넣는 곳은 다름 아닌 이 재벌기업들이다.

도대체 동일한 대상에 동일한 존재들이 이토록 이중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재벌과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공정치 못하고, 외국기업은 괜찮으며, 김치와 고추장, 된장 등을 세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떡볶이와 순대를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은 그 자체적으로만 놓고 보면 모순적이며 정신분열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공의 적’이면서 ‘대한민국 성장의 견인차’라는 모순의 재벌. 그 인식의 갈림에는 좌파와 우파간의 팽팽한 씨름이 있어왔다. 그런데 이제 우파마저 재벌에 대해서는 공공의 적이라는 쪽에 손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 우려는 2012년의 새해 벽두에 상생(相生)이라는 주술로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월 26일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언론과의 만남을 통해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재벌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9일 “출자총액제한제를 보완해 재벌의 사익 남용을 막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한국형 사회주의 선언에 가까운 것이었다. 민간 재벌은 이제 하시라도 공익의 이름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재벌이 바로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기에, 재벌을 개혁하면 사회 양극화가 해결된다는 민통당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사회 양극화가 적다는 스웨덴의 경우 발렌베리(Wallenberg)가문은 햄버거 장사부터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스웨덴 경제를 아예 통째로 주무르고 있다.

독일의 BMW는 운트(Ouandt)家가 지분의 40~50%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는 앙겔리(Agnelli)家가 지분의 32%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석유재벌 코흐 인더스트리(Koch Industries)는 코흐 형제가 지분의 80%를 가지고 있는 세계 최대의 재벌기업이다. 마이크로 소프트 역시 게이츠 가문이 지분의 22%를 갖고 있고 캐나다의 재벌 시그램 (Seagram)은 브론프만(Bronfman)家가 36%를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재벌(conglomerate) 때문에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들이 자선과 기부를 한국의 재벌보다 많이 하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소득의 양극화를 학술적으로는 이중구조의 형성이라고 합니다. 통계적으로 경제가 산업화 단계를 넘어 발전할수록 중산층이 줄어드는 현상이죠. 이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미국이나 호주, 영국 모두에 해당합니다. 우리 정부의 지난 몇 년간의 정책문제로 야기된 것은 아니죠.”

김종석 홍익대 교수(전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의 말이다. 김종석 교수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원인을 지식 서비스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과 전통산업간의 괴리로 제시한다. 실제로 재벌기업 때문에 양극화가 늘고 있다면 왜 재벌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멕시코나 브라질, 인도와 같은 신흥국에서는 중산층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재벌정책은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도외시 한 채 재벌 때리기라는 포퓰리즘에 올인하고 있다.

보수진영도 재벌 때리기에 동참

한나라당의 강령이 비대위에 의해 ‘큰 시장, 작은 정부’에서 ‘작지만 강한 정부’로 수정이 가결된 것을 신호로 26일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은 떡볶이 등 분식과 제빵, 세탁 등 영세 소상공인 업종에 대기업 진출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조치법’개정안을 발의했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김대중 정부 하에서 대기업이 김치시장에 뛰어 들 때는 모두 전통식품 현대화, 김치의 세계화라는 입장에서 환영했다는 점이다. 두산, CJ, 풀무원등이 김치 시장에 나선 것은 곧 영세한 중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라는 대로 이뤄졌다. 오늘 대기업이 김치와 고추장 된장 시장에 참여했던 것을 두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떡볶이나 순대 시장은 왜 안 된다는 걸까. 역시 시장경제에 대한 미신과 주술로 한 몫 보겠다는 얄팍한 생각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법상 대기업은 자산 규모 5조원의 기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산이 3조원이나 4조원 기업이 떡볶이나 제빵사업을 하면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죠. 게다가 외국 유명 브랜드 기업이 제과점을 할 경우도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중소상인을 보호하는 것이 취지라면 이런 법안은 아무런 효력이 없는 포퓰리즘인 것이죠.” 한 대기업 마케팅임원의 이야기다.

미신 둘. 재벌의 문어발 경영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

원칙과 상식이 결여된 이런 법안들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재벌은 사익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문어발식의 경영을 하고 있다는 오랜 대중들의 의심이 존재한다. 이런 의심은 해소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재벌기업이 과거 보여준 정경유착의 행태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심 가운데 ‘문어발식 경영’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사업의 다각화와 전문화, 집중화 전략 가운데 어떤 것이 나은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는 게 정설이다. 시장의 상황과 정부의 규제가 기업의 경영전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은 어느 경제 사회든 정부의 규제로 시장이 충분히 경쟁적이지 않을 경우 기업은 외부 조달보다 내부 거래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거래비용’ 때문이라는 것인데 예를 들어 미국의 GM社의 경우 자동차 할부회사들과 거래하는 것 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금을 활용하는 것이 장기거래에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기에 금융사업을 전개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특히 전산과 관련된 SI사업의 경우 대기업은 A/S의 지속성과 내부 정보 보호차원에서 계열사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서구의 대기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노동시장이 유연한 미국과 그렇지 않은 우리의 경우 기업들의 이러한 사업 다각화 방식에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이 이미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대기업들은 자체 사업부를 통해 다각화를 추진합니다. 그러다가 그 사업부에 채산성이 없어지면 매각하거나 일괄해고(Lay Off) 등을 하죠. 하지만 우리의 경우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해고의 자유가 없는 대기업은 별도의 법인을 세워 다각화를 추진하고 채산성이 없어지면 파산시키는 방법으로 정리하는 것이죠.”

한국경제연구원 김현종 박사의 설명이다.

한국의 재벌과 대기업이 계열사를 늘리는 현상과 미국의 대기업이 사업부를 늘리는 것은 원칙에 있어 똑 같은 것이지만 GM의 사업부 확장은 고용창출에 기여하고 삼성의 계열사 추가는 문어발이라는 인식은 쉽게 교정되기 어려워 보인다. 재벌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사업을 다각화하려는 이유는 진출하려는 사업에서 기존 기업보다 싸고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시장에 기업들이 진입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은 사익추구 집단이라는 고착화된 대중인식은 여전하다. 도대체 민간 기업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왜 잘못이라는 것일까. 이런 인식에는 한국의 재벌기업들의 오랜 관행이었던 정경유착과 사회적 공헌 등을 소홀히 했던 이유도 있겠으나 우리 사회가 근대화를 통해 ‘사유재산’과 개인의 ‘소유권’이라는 자본주의 정신의 기초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결과도 한 몫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신 셋. 재벌은 특혜로 성장했다

기업의 책임이란 좋은 물건을 싸게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이고 사회공헌은 기업의 미덕이다. 기업의 미덕이 사회적 책임으로 변하는 순간 소비자 주권은 그 빛을 잃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시장경제 사회에서 기업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싸고 좋은 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노동자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재벌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소유구조가 어떠했든 간에 시장경쟁에서 효율적으로 행동해왔고 소비자에게 가치를 제공해 왔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다른 재벌들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퇴출됐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더구나 재벌이 그동안 정부의 특혜로만 성장해 왔다는 지적도 합리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재벌들은 정부로부터 특혜 뿐만 아니라 많은 규제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이 정부의 특혜로만 성장했는지 평가해 보려면 과거에 재벌에 가해졌던 특혜와 규제로 인한 기회 손실을 비교해서 평가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단 한번도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재벌회사들이 클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들이 재벌의 상품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자식이 재벌회사에 취직했다는 것이 부모들에게 자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또 재벌이 그처럼 비효율적이고 형편없는 존재였다면 소비자들과 노동자들과 투자자들이 재벌회사를 선택했을 리 없다. 효율적인 기업만이 소비자들과 노동자들과 투자자들 모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재벌에 대해 쏟아지는 많은 비난들은 대부분 근거 없는 신화일 뿐 사실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경제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기업과 투자자다. 지난 1월 25일 개막된 2012 다보스 포럼은 이 기업과 투자자들이 지역별로 확연하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다보스 포럼의 설문에 응한 미국 기업과 투자자 대부분은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던 반면 유럽 투자자들의 75%와 아시아 투자자의 80%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촉구했다.

세계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제도 국내와 외신은 달랐다. 조선일보를 비롯 국내 언론보도의 초점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수술이 필요하다’라는 노동계와 유럽 NGO들의 주장이었으나 타임과 AP 같은 외신의 포커스는 ‘늘어나는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대체할 시스템은 없다’는 기업 총수들의 입장이었다.

결국 우리의 대기업과 재벌에 대한 시각은 바로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유럽계와 미국계의 어떤 시각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국가 재정문제로 유로화 위기를 겪는 유럽은 보다 강력한 정부의 개입을 원하고 있으며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입장을 지지하는 미국은 시장과 기업의 역할에 여전히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불황이 지나가고 난 후 우리 경제가 어떤 스탠스에 서 있었느냐는 바로 불황 이후에 다가올 호황을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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