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용 죽겠지’ 龍은 중국 기원이 아니다
‘용용 죽겠지’ 龍은 중국 기원이 아니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2.0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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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2012년은 흑룡의 해다. 60년마다 돌아오는 용의 해를 그렇게 부르는데 흑룡은 고대 중국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용의 한 종류이다. 이름대로 흑룡은 비늘이 검은색이고, 앞발이 2개 밖에 없는 동양의 용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용(龍)이라는 한자는 은대의 갑골문에서도 등장한다. 그런데 당시 이 용의 한자 고대음이 지금의 중국어의‘long’과 같지 않았다는 점이 제기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현대 중국 한자음이 고대 시경(詩經)과 같은 漢대 이전에 쓰인 경전의 운율에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 계기가 됐다. 동시에 고대 중국의 한자음, 즉 漢대 이전의 상고(上古) 한자음에는 성조가 없는 대신 복자음이나 꼬리자음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즉 고대 은,주시대의 한자음은 지금의 북경어가 아니라 알타이어나 말레이어와 같은 구조를 띠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학자들은 고대 한자음이 남방지역인 광동, 차조, 복건 그리고 타이완의 민방언과 가까웠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결국 이 방면에 정통한 박스터(Baxter), 슈슬러(shuessler) 등과 같은 언어학자들은 이 龍의 고대 음가가 티베트-부르만이라고 부르는 언어군에서‘머롱(m-rong)’과 같이 불렸다는 사실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동시에 이러한 발견은 칼그렌이나 이방규와 같은 한어 고음 학자들이 龍의 고대 한자음에 초두음이 존재했으나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해 줬다. 이로써 龍은 고대에 남방어(Austro-Asian)계가 모태임을 알게 된 것이다.

한반도-일본-만주를 잇는‘미르’커넥션

그런데 이 용이라는 말의 기원에 대해 희한하게도 한국어, 일본어, 만주어에서도 공통된 고유어가 발견된다. 먼저 한국에서는 용의 해에 태어난 사람을‘미리해치’라고 한다.‘미리’는 바로 ‘미르’라고 불렸던 용에 대한 순 우리말이다. 국어학자 안영희 교수에 의하면 용을 일컫는 우리말‘미르’는‘물’이라는 어원과 관계  있으며 이는 만주어, 일본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안 교수는 먼저 물을 뜻하는 한국어‘물’(mul)과 만주어‘무커’(muke), 일본 고어(古語)‘미두’(midu)가 모두 동원관계에 있음을 주목하고 이로부터 용을 뜻하는 한국어‘미르’(mir), 만주어‘무두리’(Muduri), 일본어‘미두’(midu)가 공통 조어(祖語)로부터 파생했음을 발견했다. 특히 일본어의 경우 용(midu)은 곧 물(midu)과 동원(同原)어였던 것.

안 교수의 이러한 발견은 고대에 용이 중국과는 달리 한반도-일본-만주 지역에서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고 존재해 왔다는 추론의 열쇠를 제시한다. 더구나 우리말로 은하수를 지칭하는‘미리내’는 하늘과 물을 연계한 지시어여서 용의 중국 전래에 대해 의문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용’은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용의 모습은 중국 한나라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9가지 종류의 동물을 합성한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얼굴은 낙타, 뿔은 사슴, 눈은 귀신, 몸통은 뱀, 머리털은 사자, 비늘은 물고기, 발은 매, 귀는 소와 닮았다. 입가에는 긴 수염이 나 있고 동판을 두들기는 듯한 울음소리를 낸다. 머리 한가운데에는 척수라고 불리는 살의 융기가 있는데 이것을 가진 용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

또한 등에는 81장의 비늘이 있고 목 밑에는 한 장의 커다란 비늘을 중심으로 해서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49장의 비늘이 있다. 이것을 역린(逆鱗)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이 용의 급소다. 이곳을 누가 건드리면 용은 엄청난 아픔을 느끼므로 미친 듯이 분노해서 건드린 자를 물어 죽인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곳을 건드려 화가 나게 만드는 일을 ‘역린을 건드린다’라고 표현하게 됐다.

즉 중국의 용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전해진 것은 한(漢) 대 이후라는 점인데 사실 용의 원형적 모습은 한 대 이전인 BC 4000년 경 중국 대륙의 동남부, 하모도(河姆渡)문화와 내몽고지역의 홍산(紅山)문화에 이미 존재해 왔다. 중요한 것은 당시에 지금의 한족(漢族)의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의 기원은 BC 3000년 단오절, 그때 중화는 없었다

양자강 문화의 하나로 분류되는 하모도 유적(현재의 저장성 동부)은 1973년에 발견돼 1978년의 두 번에 걸쳐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수도작의 볍씨가 대량으로 발견됐고 인공적으로 대규모의 벼를 재배한 것이 밝혀졌다.

이외에도 양, 사슴, 호랑이, 곰, 원숭이 등의 야생 동물이나 물고기 등의 수생생물, 돼지, 개, 소 등의 가축도 발견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하모도 유적이 중국인들이 자신의 본류로 인식하던 중원의 앙소문화보다 앞서 있었다는 점, 그리고 여기에 용모양의 문양들이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현재 중국 양자강 하류 유역에서 단오절에 유행하는 용선(龍船)경주의 오리지널 모티브였던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전, 중국의 양자강 하류 지역에 용을 토템으로 하는 문화 공동체가 존재했고 이 하모도 문화는 북쪽으로 우리 고조선과 부여지역과 가까운 홍산문화와 연결돼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과거 용토템이 중국 대륙의 동남부와 동북부에 걸쳐 존재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데 이 지역에서 유독 단오절의 행사가 왕성하며 중국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단오절의 행사가 희미해진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 이 지역의 문화 공동체의 성격은 무엇이었을까. 하모도 유적의 지역이 장강과 연결되고 이 지역에서 다름 아닌 오(吳), 월(越)과 같은 나라들이 등장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나라들의 뿌리는 다름 아닌 동이(東夷)라고 불렸던 문화권을 공통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동이족들과 한반도, 일본, 만주는 어떻게 연결돼 있었던 것일까. 이 점은 우리 고대사에 최대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이 나라들이 활동했던 전국시대(BC7~BC2)에 해당하는 한반도 남부의 문화, 역사가 아직 공백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삼국시대의 모태가 되는 삼한시대 이전의 역사가 한반도 남부에 비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전혀 재구성해 볼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오히려 그러한 문제가 이 龍을 통한 새로운 고찰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오, 월 시대에‘머롱’이라고 불린 용은 한국에서‘미르’, 만주에서‘무두리’, 일본에서‘미두’라고 불렸다는 점에서 오, 월의 문화와 한반도 남부, 일본, 그리고 만주에 어떤 공통문화층이 존재했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 용의 전설에는 이 용이 비를 관장한다는 점, 그리고 흑룡의 경우 바다 밑에서 활동한다는 전승은 우리와 일본 오키나와에 존재하는 바다의 신으로서 용왕의 존재와 상통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사실들은 왜 우리의 단오제와 중국의 단오제가 함께 등장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도 유용하다. 초(楚)나라의 굴원이 장강에 몸을 던진 날을 기념해 단오가 시작됐다는 중국의 설명은 깜찍한 것이다. 이미 단오는 중국의 풍습과 유적으로 볼 때 초나라 이전, 즉 BC 3000년 이전부터 양자강 하류 유역에서 용신앙과 함께 전승돼 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의 단오가 초나라의 굴원을 기리기 위해 전국적인 행사로 이어져 왔다는 설명에는 무리가 있다. 용을 토템으로 중국 동남부에서는 용선(龍船)경주가 단오의 최대 행사로 이어졌고, 한국과 일본 남부에서는 바다의 용왕(龍王)제 형태로 분화 전승됐다는 것이 보다 합리적 설명이 아닐까.

이러한 가설로 보면 중국이 단오절을 우리가 훔쳤다고 하는 주장이 말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단오는 동이족의 태양절 축제였고 그 태양신은 바로 동이족의 최고신 태호(太昊) 복희였다. 태호(太昊)란 다름 아닌 음력 5월 5일, 즉 여름의 양기가 최고조에 오른 날 정오에 뜬 태양을 뜻한다. 그래서 昊를‘여름 하늘 호’라고 새긴다. 이러한 관계들로부터 용신앙과 관련된 단오절은 중국 한족의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오래된, 중국 동남부와 한반도, 일본, 만주를 잇는 동이족의 문화였고 그것이 지금 중국의 한족에게 전파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조공은 황제의 기우제를 위한 협찬품?

용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중국 전승에 의하면 용은 날씨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동물이어서 마음대로 먹구름을 동반한 번개와 천둥, 폭풍우를 일으키고 물을 파도치게 할 수도 있다. 또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인간에게 가뭄을 내려 고통을 안겨 준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가뭄이 오래 지속되면 용의 기분을 풀어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기우제를 지냈다.

이러한 용의 전승은 바로 중국 최고(最古)의 경전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중국 화하(華夏)족의 황제 헌원(軒轅)과 동이(東夷)족의 임금 치우(蚩尤)간에 있었다는 전쟁 이야기의 변주다. 황제는 여발(女魃)이라는 가물신을 보내 치우의 폭풍우를 멎게 하고 치우에게 승리하지만 그 여발도 힘이 다해 승천하지 못하고 죽는다. 그래서 여발이 죽은 곳에는 가뭄 즉, 한발(旱魃)이 든다는 것이다. 산해경은 이 여발이 곧 황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중국의 천자(天子)들은 주(周)대 이후로 반드시 기우제를 올렸고 주변의 나라들은 이 기우제에 쓸 협찬품을 제공해 왔으며 이것이 주의 봉건제 시작이라는 단서가 있다. 바로 무함마드 깐수(정수일) 교수가 찾아낸 9세기 통일신라에 대한 아랍의 기록이다. 깐수 교수가 발견한 아랍의 고문서에는 알 실라(Al Sila)라는 나라가 등장한다. 아랍의 상인들이 표류했다가 머무른 신라에 대한 기록인 것. 아랍 상인들은 신라 사람들이 중국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는 것이 의아해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신라인들로부터‘때 맞춰 황제에게 선물을 보내지 않으면 비를 내려주지 않는다’라는 대답을 듣는다. 고대의 조공이 정치적이 아니라 종교적인 이유로 시행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후 용이 천자의 상징이 되면서 고대 종교적 제의는 국제 정치질서의 표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2012년 임진년은 이래 저래 다사다난한 해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과 우리의 대선, 그리고 중국의 국가주석 선거가 맞물려 있다. 동시에 북한에게는 강성대국 완성의 해이다. 하지만 욱일승천하는 용이 어쩌면 우리 한민족이 길러 낸 기개의 상징이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용기를 가져 보자. 그래서 크게 한 번 외쳐보자.
“용용 죽겠지, 메롱!”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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