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창업정신, 우리의 정치 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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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2.02.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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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 세노르·사울 싱어 共著, <창업국가>(Start-up Nation)를 읽고

황성준 편집위원· 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몇 해 전 네덜란드를 방문해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박물관을 우연히 보았다. 일본 도자기 박물관이었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니 엄청난 양의 도자기가 진열돼 있었다. 주로 17세기 일본에서 제작된 것들이었다.

도자기에 대한 지식이나 심미안을 갖추지 못한 필자에게 진열품들은 그저 그래 보였다. 최소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보다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대부분의 도자기에 기독교 성화(聖畵)가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박물관 안내책자에 적힌 내용을 보니 17세기 일본이 유럽 수출품으로 제작된 것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이미 17세기에 유럽 수출용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본 도자기 기술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陶工)들에 의해 전수된 것이라고 배우면서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현재 유명 일본 도공이 당시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긍지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우수한 도자기 기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을까? 일본에서는 수백년 된 도자기 명문 가문(조선 도공의 후예)이 존재함에도 불구,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가문이 명맥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한 도예가는 이렇게 말했다. 갑오경장이 실시되자 많은 도공들은 자식들에게 노잣돈을 주면서 “빨리 이곳을 떠나라. 그리고 앞으로 절대로 도자기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평화협상을 위해 사명대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가족을 두고 온 나이든 도공들은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그렇지 않은 젊은 도공들은 스스로 일본에 남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신분상 천민으로 양반들에게 멸시당하고 경제적으로도 빈곤한 조선 도공으로 돌아가느니 일본 다이묘(영주)들에게 존중되고 부를 누릴 수 있는 일본 도공으로 남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비즈니스계의 최고 인맥은 軍 부대

 
도공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최근 읽은 <창업국가> 덕분이다. 이 책은 자원도 없고 항상 안보 위협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경제 기적을 만들어 냈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흔히 이스라엘 유대인하면, 높은 교육열과 높은 수준의 인적자원에 대해 떠올리곤 한다.

그러한 민족적 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이 강조한 것은 이러한 인적자원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시스템’(ecosystem)이다. 기업가 정신과 기술혁신을 장려하는 정치·경제 체제와 이를 수용하는 문화·이데올로기적 가치체계가 존재해야만 창의적 개인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 기술혁신과 경제개발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창업국가>는 21세기 이스라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이스라엘 벤처기업들의 창업정신과 그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구글 검색엔진을 만드는 데 이스라엘 성경 색인 학자가 개발한 ‘예측 검색’ 기술이 결합됐다는 이야기, 전기 자동차를 현실화시키는 데 있어서 방전 시 전기충전 문제가 가장 심각한 장애의 하나로 떠오르자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 전투기의 무기장착 원리를 이용해 전기 자동차 배터리를 교환했다는 이야기 등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만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흔히 ‘혁신’과 ‘창의’를 ‘파괴’와 ‘부정’으로 오인하기도 쉽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혁신’은 무(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경전의 백성’이다.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한 폭넓은 사유 구조가 창의력의 바탕이 된 것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스라엘의 창업정신의 기초가 군대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벤처 창업기술 대부분이 군사기술을 민간부문에 응용하는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군대 지휘관 경험, 특히 실전 전투 경험을 통해 뛰어난 조직력과 판단력을 몸에 익힌 젊은 예비 기업가들이 대량으로 배출되고 있다.

또 3년(여자는 2년)의 군대 복무기간과 20년에 걸친 예비군 생활을 통한 인적 유대가 이스라엘 비즈니스 인맥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가 아니라 어느 부대에서 근무했느냐가 비즈니스 인맥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실제로 현재 이스라엘 비즈니스계의 가장 중요한 인맥은 ‘탈피오트’란 특수부대 출신인데 훈련기간만 41개월이고 이후 최소 6년을 복무해야 하기 때문에 총 9년 이상을 복무해야 하는 부대이다. 그런데 이 부대 출신들이 이스라엘 기업계를 장악하고 있으며 벤처기업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부대를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군 복무 기간을 ‘썩는 기간’으로만 생각하는 우리의 문화 환경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빅 데이터 시대, 우리는 당파싸움에 몰두

최근 다보스포럼의 핵심 키워드는 빅 데이터였다. 빅 데이터를 분석해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맞도록 행동하는 기업과 기관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세상의 변화에 우리는 너무나 안이하다는 점이다. 주요 언론도 이러한 문제에 별로 관심을 쏟지 않는다. 조선시대 당파싸움을 연상하는 악무한적 흠집잡기와 ‘정치 과잉’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기업가와 기술, 그리고 무(武)를 천시하던 조선은 변변한 싸움조차 하지 못한 채 망하고 말았다. ‘부(富)를 경멸한 위선적 사고’가 조선을 식민지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48년 건국 이후 대한민국은 전쟁을 거치면서 야성을 회복하기 시작, 숭무정신을 갖추기 시작하고 창업정신으로 기업을 일궜다. 그 결과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뛰어나다고 한다. 그러나 ‘순한 양떼’(다른 사람에게는 ‘문약한 수전노’)와 같았던 이들은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런 유대인들이 1948년 건국 이후 변하기 시작했다. ‘중동의 군사 깡패’로 불릴 정도로 강한 전사(戰士)로 재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질을 바탕으로 ‘벤처 선진국’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덧 ‘배부른 돼지’로 전락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그동안 변방으로 밀려 있었던 ‘수구 양반 세력’이 ‘진보’란 가면을 쓰고 다시 사회 전 분야를 장악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기업이란 건설하고 가꿔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약탈품’ 혹은 ‘전리품’일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한다면 너무나 현실을 모르는 자의 넋두리가 될는지…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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