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실패의 추억 망각이 계속되는 이유…
노무현 실패의 추억 망각이 계속되는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12.02.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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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과거 인사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치적 부활의 무대에 서고 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들의 압도적 선택과 심판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면서 스스로를‘폐족(廢族)’이라고까지 자조하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이제 우리 머릿속에서 모두 사라진 것일까.

19세기 말 벅스트롬(Bergstrom)과 같은 독일의 인지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에게  망각(妄覺)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망각이란‘희미한 기억’들에게만 일어난다는 오랜 믿음을 뒤엎는 것이었다.

흔히‘간섭이론’(Interference theory)이라고 불리는 이 이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망각이란 정보 저장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저장된 정보를‘인출’하는 데 무언가 간섭해서 실패하기 때문이라는 것. 다시 말해 기억이 저장된 정보의 주소를 제대로 찾지 못하기 때문에 망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망각을 유발하는 가장 유력한 간섭은 비슷한 정보간의 경쟁이다. 즉, 비슷한 형태의 정보들이 서로 경쟁할 경우, 최근에 습득된 정보가 이전의 정보에 대한 기억을 방해함으로써 이전의 기억이 망각된다. 좌클릭한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의 포퓰리즘이 국민들의 머릿속에 과거 유사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억에 간섭함으로써 2007년 보수정권 선택이라는 기억 인출에 실패하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 기억을 새롭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권은 어떻게 실패했던가.

우리는 노무현 정권 5년 내내 국내 경제성장률이 세계 경제성장률을 밑돌았던 사실을 잊고 있다. 더구나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등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연평균 5%대 성장을 할 때 노 정권은 평균 3%대라는 형편없는 성적표를 거뒀다는 점은 더 기억하지 못한다. 그 기간에는 2008년과 같은 글로벌 경제위기도 없었으며 오히려 세계경기는 확대되고 있었다.

똑같이 실패한 서민 정부

그럼에도 소득 양극화는 당시 역대 최고였고 가계부채는 빠르게 늘었으며 청년 실업률은 8%대를 기록했다. 외부 요인이 아닌 내부의 실패로‘서민의 정부’를 표방했던 노무현 정권은 서민을 울리는 정부가 돼버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의 평가를 들어보자.

“노무현 정권 시기는 1960년대 이래 모처럼 찾아온 세계경제의 최호황기를 맞아 우리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노 정권의 과거지향적·국론분열적 국정운영, 반기업.반시장적 경제정책, 성장과 경쟁보다는 분배와 평준화.균형발전을 더 중시하는 정책 탓에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어요. 다시 말해 더 잘할 수 있었음에도 정권에 내재된 강한 반기득권 정서로 인해 그렇게 하지 못한 5년이었지요. 2007년 대선은 이러한 노무현 정권의 국정실패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경제 실패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통계는 바로 가계부채의 급증이다. 가계부채는 다름 아닌 경제 침체에 기인한다. 노 정권의 가계부채는 출범 전에 비해 140% 정도 증가했다. 가계부채는 노무현 정권 출범 직전 439조원이었으나 2003년 말 447조6000억원으로 늘어났고 2007년 9월 말엔 610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00년 이전에 100 이하이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노 정권 하에서 100을 훨씬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가계부채 증가 원인에는 다름아닌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한몫했다.

2007년 12월 부동산포털 닥터아파트가 만 20세 이상 실명인증 회원 2769명을 대상으로 11월 23일부터 12월 7일까지‘참여정부 5년 부동산정책 평가’에 대해 시행한 설문조사를 보자.

참여정부 5년 동안 체감한 집값 상승률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5.8%가 50%이상이라고 응답했다. 이중 30.7%가 50% 상승이라고 했으며 16.3%는 100% 상승(집값이 2배 올랐음을 의미), 10.0%가 100% 이상 올랐다고 답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체감한 전셋값 상승률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0.0%가 30% 상승을, 20.6%는 20% 상승, 17.0%는 50% 이상 올랐다고 했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 나온 부동산 대책이 집값 안정에 기여했는가를 묻는 질문에는 87.3%가 50점 미만의 점수를 줬으며 이중 0점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6.5%다.

이런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으로 발생한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22.8%가 거래중단으로 인한 서민 피해를 꼽았으며, 22.6%는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15.6%는 부동산시장 침체로 인한 경기 위축이라고 응답했다.

가관인 것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문재인 씨의 평가다. 그는 자신의 저서 <운명>에서 노 정권의 부동산 정책실패 사유를‘세계경기가 워낙 호황이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10여차례 실시된 노 정권의 주먹구구식 부동산 정책과 규제로 국내 건설사들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은 세계경기가 호황이어서가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이란 이름으로 행정복합도시나 핵심도시 건설 같은 부동산 개발정책 남발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여기에 강남지역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거래세와 보유세를 강화하는 세금폭탄으로 주택의 공급물량을 위축시킨 점도 한몫했다. 그 결과는 전셋값의 폭등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세금 내기 싫으면 강남에서 이사 가면 될 것 아니냐”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노무현 정권에게 부동산은 곧 강남이었고 강남의 부동산을 잡으면 전국의 부동산이 잡힌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똑같이 실패한 안보정권

 
무엇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망각이 심한 것은 대북과 안보 영역이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권의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피격에 대한 안보 무능이 불러온 간섭이 주효하게 작용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의 평가를 들어보자.

“노무현 정부에서 안보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했습니다.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밀어닥친 북핵 위기와 한미동맹 재조정이라는 양대 과제는 엄청난 도전을 요구했지만, 노 정부는 이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해서‘동북아시대’나 ‘동북아균형자론’같은 큰 그림에 집중했지요.

그러나 상황 변화에 맞춰 대북 포용정책을 당근과 채찍으로 업그레이드하지 못함에 따라 문제 해결은 하염없이 지연됐고, 한미 간에는 마찰음이 일었습니다. 한마디로 해프닝으로 끝났던 것이죠.”

노무현 정부는 미국이 2001년 9.11테러를 겪은 후 새로운 세계전략을 구상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북핵문제 해결을 자신했고 이를 외교 안보 우선 순위에 뒀다. 그러한 모토가 바로‘동북아 균형자’론였던 것.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북핵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 북의 핵실험을 방기해 버리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초기에는 “북이 핵실험을 할 리가 없다”라고 했다가 결국 2006년 핵실험에 성공하자 말을 바꿔 “북한 핵은 자위용”이라고 둘러댔다.

2006년 10월 11일 당시 한명숙 총리는 국회에서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막는 데 실패했다고 自認(자인)한다”면서도 “미국의 제재와 일관된 금융 압박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소위 미국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같은 해 11월 2일 한 총리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평화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통해 넓혀 오신 남북 간 화해협력의 큰 길이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며 오히려 햇볕정책 선전에 나섰다는 점이다.

결국 북한에 대해서는 여전히‘민족공조’,‘우리 민족끼리’라는 종북성향이 친노그룹 안에 마치 주라기시대로부터 진화해 온 파충류의 DNA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 과거 국정에 참여한 친노그룹의 인사들 가운데 이러한 북핵 문제 실패에 대해 반성이나 책임 있는 발언을 하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 그런 점을 말해준다. 2003년 대북특사로 김정일을 만났던 문성근은 최근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 출마 연설에서 “절단난 남북관계를 회복하고 다음 민주정부 5년 동안 남북간 국가연합까지 성취해내겠다”고 말한 바 있다.

똑같이 실패한 국민소통

노무현 정권에 대한 망각 가운데는 교육분야도 있다. 평준화와 특성화 사이에서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 노 정권의 교육정책 실패는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사교육 억압’이라는 인식의 간섭으로 망각돼졌다. 정유성 서강대 교수(교육학)의 평가를 들어보자.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준엄한 역사적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사립학교법 개정 과정에서 보여준 혼란과 실책, 그리고 교육 양극화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악화시켜 개천에서 용 나기는 커녕 개천에서 용쓰다 미꾸라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한마디로 공교육 평준화를 통해 사교육을 흡수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래서 평등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강조했지만 결론은 하향평준화였다는 것이 교육계의 평가다. 더구나 교육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와 정책의 일관성 부재로 인해 교사집단마저 노무현 정권에 등을 돌리는 상황을 맞이했다.

처음 내세웠던 공교육 개혁이 흐지부지 될수록 불안을 느낀 학부모와 학생들은 더욱 사교육에 매달렸다. 통계청 통계에 의하면 노무현 정부 때 지출된 연 평균 사교육비는 21조972억원. 김대중 정부(10조2018억원) 때의 2배이며, 김영삼 정부(7조1566억원), 노태우 정부(2조6478억원)에 비해 각각 약 3배, 8배에 달했다.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실패는 역시 정치에서 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를 로마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로 여겼다. 그럼으로써 정치개혁을 자신의 과업으로 여겼지만 그 결과는 분열과 갈등, 그리고 몰락이었다. 박효종 교수(서울대 정치학)의 평가는 이렇다.

“국정(國政)을 원형경기장으로 본 21세기 한국의 대통령은 처음에는 언론, 다음에는 강남, 이어 검찰, 교육, 보수층, 시장경제와 싸웠으며 종국에는 국민과 맞붙어 싸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영웅 막시무스와는 달랐다. 노 정부는 비판적 언론이나 야당과의 작은 ‘전투’에서는 더러 이겼지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큰 ‘전쟁’에서는 지고 만 것이다.

노 정권의 정치적 실패는 그들 내부에 존치된 편협한 민중주의와 종북성향, 그리고 부패와 탐욕의 결과였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출하는 대신 낡은 민족주의와 결합된 기회주의 노선은 정책 전반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가져왔고 파벌과 투쟁을 초래했다.

부패와 타락은 노무현 대통령의 웬만한 친인척과 측근들을 모두 범죄자, 내지는 혐의자로 만들었고 그 결과 2007년 대선에서 530만표 차이라는 대패(大敗)로 막을 내렸다. 친노는 한때 폐족(廢族)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다시 화려하게 부활시킨 것은 바로 그들과 차별화되지 못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었다.

민주통합당은 20일 당의 상징색을 기존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변경했다. 녹색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의 상징이고 노란색은 노무현 참여정부의 상징이다. 문재인은 이번 총선에서 당선이 유력시되며 올해 유력한 야권연대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지역 총선 후보들은 문성근을 비롯 친노 일색이다. 2007년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에 넌더리를 내며 보수 우파정권을 선택했다.

하지만 자유 보수 이념에서 멀어져간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급속하게 국민들의 기억에서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지워내고 있다. 바로 좌파라는 점과, 동시에 그 좌파정책의 실패라는 유사 정보의 간섭이 국민들로 하여금‘노 정권의 실패’라는 기억을 호출해 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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