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팩트’시대, 죽은 노무현의 천하삼분지계(?)
‘포스트팩트’시대, 죽은 노무현의 천하삼분지계(?)
  • 미래한국
  • 승인 2012.02.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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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드 만주(Farhad Manjoo)의 <이기적 진실>(True Enough)을 읽고

황성준 편집위원· 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死武鉉走生明博(사무현주생명박). 한학(漢學)에 조야가 깊다고 자처(?)하는 한 지인이 현 정세를 표현한 것이라면서 이 같은 휘호를 보내왔다.

그 뜻을 새길 수 없어 고민하다가 결국 전화로 그 의미를 물었다. 그랬더니,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즉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한다’라는 삼국지에 나오는 문구를 빗댄 것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야 비로소 ‘아하’하면서 무릎을 쳤다.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도망치게 한다’는 것이었다.

제갈공명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통해, 유비로 대변되는 한(漢) 황실을 재건할 수 있었다. 소설이며, 주자학적 세계관이 반영된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 진영을 정통으로 간주하나, 조조로 대변되는 신흥세력이 중국사의 정통이라는 것이 정사(正史)의 입장이다.

‘형수와 잔 자라도 능력 있으면 발탁한다’는 조조의 인재선발원칙이 잘 보여주듯, ‘난세의 영웅’ 조조는 유교적 명분론자가 아니라 실용적 현실주의자였다.

농지개혁을 기반으로 구축한 청주병(兵)과 북방유목민족 출신의 기마대를 결합시킨 조조 군단은 무적이었다. 유학자 일부가 저항을 시도해 보았지만, 이미 시대적 대세는 조조 측으로 기운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제갈공명은 양자강 이남의 강력한 토호세력 손권과 손을 잡고 조조 세력의 남진을 저지시킨 다음,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서 병립시키는 구도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수구적 명분론이 장악한 ‘진보’와 밀려나는 호남 보수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박정희로 대변되는 ‘상놈세력’(?)이 정치 경제 권력을 장악했다. 명분론적 양반세력이 저항해 보았지만, 권력을 탈환해 올 수는 없었다. 낡은 수구적 명분론으로 근대화 세력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들 양반세력은 토지개혁과 6·25전쟁으로 경제적 기반을 사실상 박탈당한 상태였다. 이에 일부 양반세력이 근대화 진영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 조차도 명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자신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cognitive dissonance)’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정치 경제적 권력을 박탈당한 양반세력이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서원(대학)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장기간 문화·이데올로기 투쟁을 전개한다.

그리고 ‘젊은 두뇌와 심장’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으며, 결국 젊은 유생들이 ‘진보’라는 간판을 걸고, 근대화 세력과 그 성과를 전면 부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천하삼분지책’도 이뤄졌다. 조조 군단이 적벽에서 대패한 후 양자강을 건너지 못한 것처럼, 87년 이후 이른바 보수우익은 호남지역으로 진출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유비가 손권과의 동맹을 통해 조조를 저지하고 촉나라를 건설했듯이, 이른바 진보좌익은 호남을 ‘굳은자’로 삼은 채 부산 경남 공업벨트를 공략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부산 경남 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해 내는 데 성공하기에 이른 것이다. 단 현대판 유비 진영은 손권 세력을 물리치고, 사실상 오나라 지역을 장악해 버렸다. 호남을 지역 기반으로 했던 정통보수야당 세력은 이들에게 주인 자리를 물려 준 채 소멸되고 있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True Enough>란 책을 읽었다. 책 제목을 뭐라고 번역해야 할는지를 잘 몰랐다. 그러나   <이기적 진실>이라고 번역 출판된 사실을 알게 됐다. 오히려 ‘포스트-팩트 사회에서 사는 법 배우기’(Learning to Live in a Post-Fact Society)란 부제가 책 내용을 더 명확히 해 주고 있다.

현대 정보화 사회는 정보의 ‘부족’이 아닌 ‘과잉’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무엇이 진실(truth)인지는 둘째치고라도 무엇이 사실(fact)인지 자체가 불투명한 사회인 것이다.

광우병 사태와 최근 한미 FTA 논쟁에서 보여주듯 온갖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 또 김대업이란 사기꾼에 의해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좌지우지되기도 했다.

최근 보수진영 인사들은 “어떻게 저런 거짓이 통용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 책은 이 질문에 일정 정도 답변해 주고 있다. 사람들이 접하는 정보는 ‘객관적 현실’이 아니다.

사람들은 일단 정보에 선택적으로 노출된다. 자신의 성향과 맞는 정보만을 접하기 쉽다는 것이다. 즉 조선일보 독자와 한겨레 독자는 이미 다른 정보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또 같은 정보를 접한다 해도 정보를 선택적으로 인식한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또 알기 원하는 만큼만 보고 알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미 뉴스에서의 객관성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언론의 당파성’이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잘 조직화된 소수에 의해 사기 혹은 조작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조직화된 소수에 의한 사기와 조작

솔직히 넘치는 정보 속에서 일일이 팩트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대중을 야단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하지 못했다고 화내는 것과 같은 일 일는지도 모른다. 사실 현대인은 팩트 자체가 불투명한 ‘포스트 팩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이른바 ‘전문가’의 견해가 대중의 팩트 인식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문제는 ‘거짓 전문가의 숭배’(the cult of fake expert)이다.

개그맨이 전문가를 대체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미적분 문제를 놓고 개그맨과 정통 수학자가 TV 토론한다면 누가 이길까? (필자는 개그맨에게 한 표) 사실 ‘나꼼수’와 같은 하수도 문화는 어느 사회에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주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기존 주류사회 혹은 보수우익진영이 ‘메시지’에 앞서 ‘메신저’ 문제에서 지고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메신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대중에게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다.

사실 이 책의 저자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는 내용도 많다. 저자 만주는 다분히 ‘미국식 리버럴’이다. 또 문제의 본질을 기술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기는 기술’도 배워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삼국시대 이후 시대가 북방 민족의 남하로 인한 ‘5호16국 시대’로 전환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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