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본지 <미래한국>은 통일부와 안철수연구소를 번갈아 가며 중대한 사실을 하나 확인해야 했다. 지난 2000년 5월, 6·15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여 앞두고 안철수연구소가 “북한에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V3를 인도적 차원에서 제공할 의사가 있다”라고 선언한 이후 실제로 V3가 북한에 제공되었는지 확인을 위해서였다.
공식적으로는 안철수연구소의 제안은 이뤄지지 않았다. 보안상의 문제였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은 안철수연구소가 그런 발표를 하기 한 달 전인 2000년 4월 이미 V3 제품이 북한의 요청에 의해 국정원, 통일부의 협의나 승인 없이 비공식적 방법으로 북에 제공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안철수연구소에 대한 본지 취재 결과 밝혀졌고 안철수연구소도 이 점을 처음으로 시인했다. 문제는 이 제품에 안철수 연구소의 보안 핵심기술이 포함돼 있었느냐 아니냐는 점인데 통일부는 “안철수 연구소와 V3제공 문제 대해 전혀 협의하거나 보고 받은 적 없다”고 확인해 줬으며 소스 유출과 관련해서는 “기록이 없어 확인이 안 되며 전혀 아는 바가 없다”라고 답변했다.
반면 안철수연구소는 지난 2월 18일 본지와의 취재 인터뷰에서 “소스는 없었다”라고 답변하며 통일부 협의나 승인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안철수연구소는 소스가 포함되지 않은 단순 샘플을 북한에 제공하는데 왜 통일부나 국정원과 아무런 협의나 보고·승인도 거치지 않고 단독 시행한 것일까. 더구나 북에 전달한 방법도 일체 공개되지 않고 있다.
2000년 정부 협의 없이 V3 北에 넘겨
본지 <미래한국>이 이 문제를 중대한 안보사건으로 보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안철수연구소가 2000년 북한과 보안솔루션 합작 연구소를 설립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었다는 점과 그러한 요구가 북한의 대리인으로 활동했던 정체불명의 한 컴퓨터 경협회사를 통해 전달된 것으로 의심되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안철수연구소가 V3를 북한에 비공식적 루트로 제공할 당시 북한은 사이버전 수행을 위해 JML바이러스라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본격적으로 개발해서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던 시기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2월 14일 북한 정찰국 출신 장진성 대표가 발행하는 <뉴포커스>가 단독으로 북한 내 통신원을 통해 보도함으로써 알려졌다.
<뉴포커스>는 보도에서 ‘북한이 1997년 JML컴퓨터 바이러스 개발에 성공했고 사이버 해킹부대의 총사령관으로서 이 바이러스 개발을 주도한 조명래가 상좌로 임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JML바이러스는 다름 아닌 조명래의 영문 이니셜인 것으로 알려진다. <뉴포커스>는 또 ‘조명래가 2001년 경 미 국방부를 해킹한 공로로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 받았다’고도 보도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그런 민감한 시기에 왜 안철수연구소는 북한에 V3 백신을 건넸던 것일까. 그것도 통일부나 국정원과 아무런 협의나 승인도 없이 말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V3의 소스를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제품을 넘겨받는 순간 안철수연구소가 어떤 스킴을 통해 바이러스를 스캔하는지, 또 어떤 바이러스를 잡아내고 놓치는지 100% 테스트 할 수 있다”라는 점에 동의한다.
V3 제공 후 북한 미 국방부 해킹 성공, JML바이러스 국내 유포
다시 말해 북한에게 남한 보안정보 시스템에 접근할 합법적 계정권을 줌으로써 국정원의 차단과 감시를 피해 남한 내 사이버 보안 상황과 해킹루트들을 찾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당시 안철수연구소의 보안 시스템은 외부 바이러스와 해킹에 상당한 취약점을 보이고 있었고 그런 V3는 공공시설에 마저 사용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실제로 안철수연구소는 V3를 북한에 넘겨주기 약 6개월 전 V3 업데이트 엔진에 미상의 바이러스가 침입해 V3 배포 사이트를 통해 수만대의 유저 PC를 감염시키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 북한에 V3가 비밀리에 제공된 이후 북한이 개발한 JML바이러스가 국내에 침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러한 점들을 살펴보면 안철수연구소가 무리하게 V3제품을 북에 전달하려 한 배경에는 북한이 V3의 핵심기술을 파악하려 했다는 추정과 안철수연구소가 그러한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었거나 적극적으로 응하려 했던 이유가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샘플에 불과한 V3를 국정원이나 통일부와 협의·승인 없이 북에 넘겨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연구소의 그러한 배경을 탐색해 볼 수 있는 정황들이 있다.
2011년 11월 시중에는 안철수 씨에 대한 책 한권이 출간됐다.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라는 이 책의 저자는 민경우 전 통일연대 사무처장이었다. 그는 이적단체로 대법원 판결을 받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도 역임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기자가 올해 1월 취재 보도한 바에 의하면 민경우는 국가보안법상 간첩혐의로 두 차례나 실형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간첩 출신 민경우가 안철수를 띄우는 까닭?
민경우는 1997년 3월부터 범민련남측본부의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같은 해 6월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3년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대법원이 확정한 민경우의 간첩활동은 반(反)국가단체인 조총련의 대남(對南)공작원 박용(朴勇, 범민련 공동사무국 상근 부총장, 조총련 정치국 부장)의 지령과 활동자금을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 전달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러다 김대중 집권 시절인 1999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민경우는 이후 다시금 범민련 남측본부의 사무처장으로 복귀했다가 ‘통일연대’ 사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출소 후인 2003년 12월 북한과의 회합-통신 과정(2001~2002년 기간)에서 국보법 위반 혐의로 다시금 구속돼 2005년 5월 징역 3년6개월에 자격정지 3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러한 간첩 출신의 민경우가 안철수 교수를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부추기고 있는 사실은 의아하다. 그것이 자신의 개인적 판단인지, 아니면 여전히 북의 지령에 의한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파악할 수 없지만, 그의 전력으로 미뤄 볼 때 적어도 북한의 의사와는 합치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다시 말해 간첩 출신 민경우의 안철수 띄우기는 북한이 바라는 바이며 이는 지난 2000년 4월 안철수연구소의 V3 비밀제공과 모종의 연장선에 있다는 의혹을 자아낸다.
주사파 386의 反帝 反봉건 노선
이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안철수 씨의 안보관과 국가관, 역사관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가 만일 투철한 국가관의 소유자라면 V3제공은 비록 위험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더라도 당시 그의 주장대로 ‘인도적 차원’이었다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안철수 씨의 국가관은 모호할 뿐 아니라 오히려 주사파 386의 역사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역사적 질곡을 힘겹게 거쳐온 민중들에게 주는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이 코멘트는 지난 2000년 10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당시에 안철수 씨가 언론에 한 말이다. 동시에 북한에 V3를 비밀리에 제공한 후 6개월 경의 코멘트이기도 하다. 당시 경제인들은 대부분 ‘경제문제에 힘써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안철수 씨의 ‘역사적 질곡’과 ‘민중’이라는 당시 코멘트는 다름아닌 86년 전대협 주사파의 노선 투쟁에서 헤게모니로 제시된 반제·반봉건 노선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당시 전대협 주사파는 “근대사의 과제를 반봉건 반외세로 설정한 위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주체를 민중으로 파악하고, 그들이 처해 있던 일상생활이나 거기서 경험하는 질곡의 구체상, 민중의식의 내면세계를 무기로 투쟁하여야 한다”며 반제·반봉건 투쟁의 대중화 전략을 천명했다.
안철수 씨의 이러한 역사관이나 국가관은 당연히 북한 문제에 대해 안철수를 침묵하게 만들어 왔다. 이에 대해서는 조갑제 대표의 평가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조갑제 대표는 2011년 10월경 그의 홈페이지에서 ‘국민(또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결여된 안철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안철수 씨를 비판한 적이 있다.
조 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려면 도덕적 분별성을 갖춰야 할 헌법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며 “이러한 분별의 기준으로 ▲김정일 정권의 독재와 학살에 대한 분노 ▲김정일 정권에 의하여 맞아죽고 굶어 죽어가는 북한동포들에 대한 동정심 ▲한국 현대사에 대한 긍정과 대한민국적 가치(반공, 자유, 법치 등)에 대한 존중심 ▲미국에 대한 고마움” 등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조 대표는 “안철수에게는 전혀 그러한 점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안철수 씨는 2000년 V3를 북에 넘겨줄 무렵 ‘아침이슬’이라는 출판사가 펴낸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라는 책에서 평양을 불법 방문한 임수경 등과 함께 자신의 성장배경을 쓰기도 했다. 당시 이 책을 낸 출판사 ‘아침이슬’의 대표 박성규는 민청련 출신으로 전교조 핵심멤버였고 전교조 기관지 <우리교육> 사장을 역임했다. ‘아침이슬’은 현재도 전교조 교사들의 책을 펴내는 일을 중점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들은 2000년 당시 안철수 씨의 역사관이나 국가관이 386 주사파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런 와중에 북한에 비밀리에 제공된 V3에 북한이 요구하는 핵심기술이 담겨 있지 않다는 생각은 정당할까.
V3, 공공시설에서 퇴출시켜야
지난해 12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 고위급 탈북자는 이렇게 말했다.
“2000년 이전엔 사이버부대 정원이 500명 정도였는데 내가 탈북하기 직전인 2004년엔 3000명으로 늘어났다. 북한 정권이 2000년을 즈음해 IT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고 북한 내 IT전문대학은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컴퓨터기술대학, 함흥컴퓨터기술대학 이 네 곳뿐이다.”
이 탈북자의 말이 진실이라면 안철수연구소가 북한에 V3를 ‘인도적 차원’에서 제공했다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없다. 당시 2000년에 북한의 IT는 소수정예로 운용되고 있었고 일반인들에게 PC나 인터넷이란 대중화되지 않는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당시에 북한이 안철수연구소에 V3백신 기술을 요구해 왔고 안철수연구소에서 관계당국과 협의나 승인 없이 비밀리에 V3를 북한에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러한 사실은 철저히 국내 언론에 가려져 있었고 누군가 국정원의 감시체계를 무력화 시켰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V3는 공공기관에 60%를 점유하고 있다. 국정원도 통일부도 2000년 4월 안철수연구소가 북한에 V3를 비밀리에 넘겨줬을 때 어떤 내용이 어떤 목적으로 담겨 있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지난해 같은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알약’의 경우 엔진업데이트에 침입한 바이러스가 국내 수만명의 PC를 좀비로 만들어 국내 주요사이트에 대대적인 Ddos공격을 감행하게 만든 바도 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지금 당장 안철수연구소의 V3 북한 비밀제공 모든 경위를 조사하고 공공기관에서 V3를 퇴출시켜야 할 때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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