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 담겨야 올바른 이름이다
본질이 담겨야 올바른 이름이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3.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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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著 <크라튈로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세상의 사물, 현상, 인간들은 대부분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 나라와 시대에 따라 동일한 사물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름은 의사소통과 인식의 도구가 된다. 도대체 최초로 만물에 이름은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 언제 어떻게 어떤 원리로 이름을 붙인 것일까? 그 이름들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이름에 관한 문제는 기원전 5세기 후반의 그리스 소피스트들의 큰 관심사였다. 이에 대한 플라톤의 인식론적 사유가 그의 연작 대화편 중의 하나인 <크라튈로스(Kratylos)>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이름의 올바름에 관하여’란 부제가 말해 주듯, 이름(onoma, 오노마)의 의미와 어원, 작명의 기준과 원리에 대해 헤르모게네스와 크라튈로스의 대립적 견해가 제시되고, 소크라테스가 중재자로서 각각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내용이 기술됐다. 이 대화편의 주제는 올바른 이름이 ‘자연적으로 있는가’, 아니면 ’합의나 관습에 의해서 있는가’ 이다.

전자는 자연주의(naturalism)로 불리는 입장으로 크라튈로스의 견해이고, 후자는 규약주의(conventionalism)라 불리는 관점으로 헤르모게네스의 견해이다.

먼저 헤르모게네스는 어떤 것에 무슨 이름을 붙이든 올바른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무엇으로 부르든 합의와 동의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규약주의적 견해에 대해, 모든 사물들 자체가 가진 어떤 본질을 모방해내지 못하는 이름은 잘못 붙여진 이름일 수 있다고 비판한다. ‘이름은 일종의 가르치는 도구이자 본질을 가를 수 있는 도구’이므로, 사물에 적합한 이름의 형상을 자모(字母)와 음절로 구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어떤 사물의 실제 사용자가 사물의 본질과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물의 속성에 내재된 본질을 잘 포착해 이름을 부여해야 한다는 자연주의적 입장으로 규약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108개의 고유명사와 보통명사들의 언어학적 어원을 하나하나 밝히고 있다. 이 부분이 책의 5분의 3가량이나 차지한다. 이 대목에서는 소크라테스가 그리스 언어의 어원을 설명하는 주요 원리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마치 재미 있게 풀어 쓴 언어학, 음운학 사전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소크라테스가 크라튈로스의 자연주의의 입장에 완전히 동조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크라튈로스는 이름이 ‘사물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사물에 대한 완전한 모상(模相)이 아니라면 더 이상 사물의 이름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완벽한 모방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모상과 대상(對象)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동일한 두 가지만 존재하는 모순에 빠진다고 지적한다.

결국 모방의 과정에서 잘못 붙여진 이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수용하라고 설득한다. 사물과 이름 사이의 ‘닮음’을 전제하는 자연주의 입장의 한계를 꼬집은 것이다. 사물을 완벽하게 모상해 내지 못할 때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뜻을 합의와 관습에 따라 이름으로 붙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자연주의의 한계는 규약주의적 입장으로 보완돼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의 입장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견해가 어느 한가지로 단정적으로 비춰질 말을 직접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수많은 이름의 어원을 밝히고자 애쓴 점으로 미루어보면, 모든 사물에는 본질적 특성에 적합한 자모의 결합을 통해 올바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자연주의적 관점에 무게를 두면서, 동의와 합의를 통한 규약주의적 보완의 필요성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통해, 무언가 앎을 얻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사물들의 이름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자체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라는 인식론적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최근 개명된 ‘새누리당’의 이름에 대해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면, 규약주의적 관점에서는 올바른 이름일 수 있지만, 이념적 결사체인 정당의 ‘추구가치’(본질)를 담지 못해 올바른 인식을 끌어내기에 부적합한 이름이라고 질타하지 않았을까?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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