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at Mid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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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02.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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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독립 일화담은 名著
래리 콜린스(Larry Collins) & 도미니끄 라삐에르(Dominique Lapierre) 共著사이몬 슈스터(Simon & Schuster) 刊, 1975인도독립 일화담은 名著제2차 세계대전 승전 직후인 1945년 7월 영국에는 처칠(Winston Churchill) 보수당 정권이 물러나고 노동당의 애틀리(Clement Attlee) 내각이 들어선다. 노동당 내각은 아직도 이 지구상 인구 25억 중 5억6,000만명과 표면적의 약 1/4이 본토, 속령, 보호령, 연방국, 식민지 형태로 구성된 대영제국을 축소 해체하기로 결정한다. 1947년 7월 1일 애틀리수상은 국왕 조지6세(현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선친 선왕)의 4촌, 루이스 마운트바텐 경을 인도의 ‘국왕 대리’로 임명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대적 임무는 인도를 통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를 포기, 독립시키는 것이었다. 하나로 통일된 인도의 독립이야 말로 3.5세기에 걸친 인도 통치를 마무리하는 영국으로서는 최고의 명예로운 유산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알리진나(Ali Jinnah)가 대표하는 회교도들은 힌두교도의 지배를 거부, 별도의 회교국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하기를 주장한다. 힌두교도를 대표하는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의 국민회의파(Congress Party)는 인도대륙을 정치, 경제, 사회적 반신불수로 만드는 분리 독립을 극력 반대한다. 힌두교도인 간디(Mohandas Gandhi)는 회교도도 힌두교도와 꼭 같은 인도의 형제며 국민으로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힌두교도와 회교도 양측의 극렬분자로부터 배척을 받아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결국 같은 종파인 힌두교도 극렬분자에 의하여 1948년 암살된다.이 밖에 또 한 가지 문제는 1947년까지도 인도에는 마하라자(Maharaja), 라자 (Raja)등 영국정부로부터 자치권을 보장받은 크고 작은 봉건영주가 565명이 있었다. 이들은 인도면적의 1/3, 영토의 1/4을 절대 권력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간디와 네루 등 국민회의파는 이들의 지위를 종식시키고 이들 영토는 독립하는 인도에 흡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마운트바텐 경은 인도의 통일 독립을 간절히 원하지만 인도가 종교와 인종 분쟁으로 폭동과 유혈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드디어 1947년 6월 3일 그는 간디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네루와 진나로부터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의 원칙에 합의를 받아내고 영국의 지배권력은 1947년 8월 15일 인도인에게 이양하기로 한다. 1947년 8월 14일 밤 네루는 평생을 싸워온 독립을 앞두고 잠을 못 이루며 이렇게 독백한다. “오늘 밤 자정, 인도는 드디어 자유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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