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문산의 교훈
회문산의 교훈
  • 미래한국
  • 승인 2012.03.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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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건차 수원샘내교회 목사

전국의 신대원 동기생들이 순창으로 모였다. 열차로 남원역에 내렸다. 순창으로 가는 길에 회문산(回文山)이 바라보인다. 빨치산으로 인한 회문산의 역사를 알기에 그 시대를 겪었던 연유에서 마음이 그곳으로 쏠린다.

회문산은 임실군과 순창군에 걸쳐 있다. 산세가 지리산에 버금가는 곳이라 구한말 일제 침략강점기에는 의병대의 활동무대였다. 6·25를 전후해 조선로동당 전북지역의 사령부로 빨치산들의 정치훈련원인 노령학원이 있었다. 그리고 주로 수류탄을 만드는 병기공장과 피복공장, 야전병원, 세탁소등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설프게 집착한 이데올로기의 결과를 보여준 곳이다. 고요한 산야를 피로 물들였던 살육의 아성이었던 곳을 찾아 오르며 그때의 정황들을 떠올려본다. 그 무렵 나도 소위 빨치산 해방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겪었던 일들이 눈에 선하다. 53년 7월 6·25전쟁이 휴전됐지만 그들은 김일성에게 이용된 희생 제물이었을 뿐, 아무런 보장도 보상도 못 받은 채 처참하게 소멸되고 말았다.

신문기자 출신의 이태가 빨치산 실상을 기록한 <남부군>의 내용은 정도의 차이는 좀 있지만 내가 어린 시절 보고 겪었던 일들과 같다. 겨울이면 남부군을 또 읽는다. 잠시 후의 운명을 모른 채 추위와 굶주림으로 지냈던 때를 회고하면서 풍요와 안일함에 젖기 쉬운 현실을 타개하는 방편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회의를 마치고 회문산으로 향했다. 오늘도 산에 오르는 것은 기행의 연속으로 산을 찾아 기도하는 습관 때문이다. 정상에 올라서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도하는 보람에 높고 험한 산을 더 찾게 된다. 산길을 오르면서 만국기가 휘날리는 곳으로 가 봤다. 빨치산에 의해 희생된 양민들을 추모하는 위령탑과 그때의 기록들을 보자니 빨치산들 속에서 겪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회문산에서 제일 높은 회문봉(837m)에 올랐다. 기도를 마치자 인도자가 손을 들어 건너편 멀리 보이는 마을을 가리키며 “저기가 J모 국회의원이 태어난 고향입니다”라는 것이다. 지역에 흐르는 이념의 정서가 있어서일까 회문산 주변에서 태어났다는 J의원은 요즘 좌편향의 선두에 서서 그 나름 대단한 활동을 하고 있다. 종북주의자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적극 반대하면서 자식을 미국에 유학시키는 그의 아이러니에 씁쓸한 마음이다.

빨치산이 소멸된 지도 반세기가 지나 60년이 다 됐다. 이전보다 숲이 더 울창해진 산들은 여유로워진 등산객들의 차지다. 요즘 이념의 전사들은 산에 숨어 지낼 필요 없이 도시와 농어촌 산업지대에 파고들어 대단하게 자리를 잡고 거칠 것 없이 전술을 펼치고 있다.

저들의 활동 무대는 잘 차려진 밥상 같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다.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 교육, 종교, 언론,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전화의 잿더미에서 일어선 대한민국의 발전과 정통성을 뒤집어엎고 있다.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해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했던 시국으로 회귀하려는 것 같다.
계곡 물소리에 늦겨울 바람이 스산하게 느껴진다. 회문산 계곡을 내려와 기차를 타러 남원역으로 간다. 좌파의 불화살이 전국을 휘젓는 판국을 보면서 회문산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들이 뭘 좀 알고 좌파활동을 하느냐’고…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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