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과 통합민주당 등이 제19대 총선을 겨냥해 성사시켰던 야권연대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앞두고 삐걱거리고 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출마하려다 포기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는 김희철 민주당 의원과의 후보단일화 경선 도중 이 대표 측 인사가 여론조사 조작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경기 안산 단원갑에서도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한 백혜련 민주당 후보가 후보 등록을 강행한 후 불출마하기로 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앞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지난 3월 10일 야권연대 공동 합의문을 발표하고 “민생파탄과 부정비리로 점철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정권 심판, 민주주의와 평화회복, 노동존중 복지사회 건설이라는 국민의 여망을 받들겠다”고 밝혔다.
양 정당은 일부 지역구에서는 전략 공천을 통해 민주통합당(이하 민통당) 또는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후보로의 단일화를 성사시켰고, 상당수 지역구에서는 3월 17일과 18일 양일간 여론조사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했다.
이와 관련해 양당은 구체적으로 △ 4·11 총선에서 야권단일후보로 함께 승리하고, 총선 이후 구성되는 19대 국회에서 양당이 합의한 공동정책합의문을 실천하며 △ 연대의 정신에 입각해 야권후보 단일화 방안에 합의하고 △ 야권단일후보 경선은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3월 17~18일 양일에 걸쳐 진행하나 민주통합당 경선이 완료되지 않았을 경우 후보등록 전까지 완료한다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정책합의문에 드리운 ‘극좌’ 그림자
민통당과 통진당은 정책 및 노선에도 합의했다. 지난 3월 15일자로 발효된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국익과 민생 및 입법·사법주권을 침해하는 굴욕적인 협상으로 무효”라고 규정한 뒤 한미 FTA의 시행에 전면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관해 정부에 깊은 분노와 우려를 전달하고 강정마을 군항공사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또 19대 국회에서 공사계획 전면 재검토와 필요할 경우 책임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당은 공동 합의문에서 19대 국회에서 최우선적으로 실천할 민생 현안 5대과제도 밝혔다. 우선 서민주거 안정을 위해 △ 계약갱신청구권 △ 전월세상한제와 보조금 제도 실시 △ 공공임대·전세주택의 공급 확대 등을 약속했다. 교육분야에서는 △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 등록금 후불제와 상한제 도입, 국립대 법인화 폐지 및 사학비리 척결 등을 주문했다.
이어 △보육·교육·보건·복지 등 사회서비스 확대 △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확대 △청년고용할당제와 창업지원 △해외 일자리 진출 지원 등을 제시하고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반대 의사도 분명히 밝혔다.
우선 △ 언론법의 전면개정과 종편사업자 선정과정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 △ 4대강 사업의 진상과 책임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추진 △남북국회회담 추진 및 6·15, 10·4 선언의 이행을 담보하는 입법조치 △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찰청법 개정을 통한 검찰개혁 추진, 법관재임용제도의 개선 △권력형 비리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검 실시를 다짐했다.
소위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의 실현을 위한 내용도 포함됐다. 출자총액제한, 순환출자금지, 계열분리 청구제, 일감몰아주기 근절,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확대 강화 등 재벌개혁 정책을 추진키로 했으며, 또 복지재원 확충을 위해 조세 관련법 개정과 소득 최상위 1%에 대한 슈퍼부자 증세와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감면 범위의 축소를 밝혔다.
이어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유통업체의 영업시간 제한 확대 및 허가제 도입 등 법규와 조례 정비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고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무상보육의 전면실시 및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을 추진하기로 했다.
양 정당의 합의문 내용을 뜯어보면 시장경제의 핵심 개념인 사유재산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며 실현 가능성도 미지수다. 우선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는 개념은 사실상 주인으로부터 주택을 강탈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집주인이 자신이 소유한 집에 직접 입주해서 살기 위해 세입자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려고 해도 세입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확대’도 反시장적일 뿐 아니라 비현실적 공약이다. 동일 임금 하에서의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비용의 상승을 의미한다. 즉 민통당과 통진당은 노동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고용 총량을 확대시키겠다는 수수께끼에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6·15, 10·4 선언의 이행을 담보하는 입법조치를 주장한 부분에서도 두 정당의 종북성향이 드러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 독재자 김정일이 2000년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6·15 선언에는 북한의 대남적화 노선인 연방제 통일을 용인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 관련 언급이 있다.
총선에서 민통-통진 좌파연합이 압승할 경우, 헌법 영토조항을 개정한 후 북한 김정은 정권과의 연방제 통일을 추진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 전역을 우리 영토로 규정하고 있기에 현행 헌법 하에서는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는 ‘연방제 통일’은 용인될 수 없다.
국보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연방제 실현
4·11 총선의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민통-통진 좌파연합의 과반의석 확보 가능성은 적지 않다. 이 경우 과거 민주노동당의 극좌 노선을 앞세운 좌파 연합세력이 입법부를 장악한다는 의미가 있다.
지난 2000년 창당된 민노당은 △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 국가보안법 철폐 △ 북한 연방제 동조 △ 주한미군 철수 △ 사유재산 및 시장경제 부정 등의 주장을 해 왔다.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는 지난 2006년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통일 정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3대 원칙에 기초하고,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기본 목표로 하며 6·15공동선언의 철저한 이행을 통해 실현해 나가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민노당은 지난 2000년 1월 29일 창당대의원대회에서 제정된 강령을 통해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해방공동체를 구현할 것”,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사회주의적 가치 계승”을 주장하는 등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어 민노당은 강령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계급적 불평등을 초래하여 소유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민중에게 고통스런 삶을 강요하고 있다”고 규정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사유재산의 무단 몰수’를 연상시키는 구절도 눈에 띈다. 강령은 ‘새 세상’의 모습으로 “자본주의의 질곡을 극복한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를 제시하며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삶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는 공공의 목적에 따라 생산되도록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노당의 극좌 성향은 대북문제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민노당 대표단 20명은 지난 2005년 8월 23일 북한 조선사회민주당 초청으로 방북, 첫날 만경대를 방문했다. 만경대는 6·25 남침 전범 김일성의 생가다. 이어 둘째 날인 24일에는 평양 신미리에 위치한 애국열사릉을 방문해 묵념했다.
문재인도 ‘통합진보당 감싸기’
남한 정부 당국자나 정당 대표단이 북한의 애국열사릉을 방문하고 묵념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지난 1986년 조성된 신미리 애국열사릉은 대성산 혁명열사릉과 함께 북한의 대표적인 국립묘지로, 북한 체제 건설에 기여한 당·정·군 고위간부, 문화예술인 등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한 소위 진골성향 공산주의자 500여명의 유해가 묻혀 있다.
민통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 역시 극좌진영에 대한 이념공세를 색깔론이라고 매도하는 수법으로 통진당을 두둔하고 있다. 문 상임고문은 3월 17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저는 민주통합당이지만 당내 누구라도 이념적 색깔 공세를 한다면 동의하지 않습니다”라며 “친북좌파니 종북좌파니 하는 말은 상대와의 공존을 거부하는 사악한 말입니다”라고 적었다. 문 고문은 이어 “그런 표현부터 정치권에 추방돼야 우리 정치가 공존과 타협이 가능한 정치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문 고문의 발언은 김희철 의원의 선거사무실에 ‘관악의 지역발전 종북좌파에 맡길 수 없다’고 적힌 민통당 로고의 현수막이 걸려 논란이 불거지며 야권연대에 균열이 생길 조짐이 보이지 이를 진화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앞서 지난 3월 16일에 서울 관악을 야권 후보 선출 경선에 나선 김희철 민통당 의원 측이 이정희 통진당 공동대표를 ‘종북좌파’라고 비난하는 현수막을 걸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이정희 공동대표는 북한이 연평도를 선제공격한 지난 2010년 11월 24일에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를 정부는 똑똑히 봐야 합니다. 대결로 생겨나는 것은 비극 뿐”이라며 북한 포격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덮어씌운 바 있다.
또 이 대표는 2010년 8월 4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시청자의 질문에 “개인적인 견해보다는 그리고 과거에 대한 어떤 규정보다는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문제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다시 답을 드리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문재인 고문의 이념성향 또한 이 대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지난 2011년 2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이 평화통일에 가까워졌다. 국가연합 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통일은 커녕 전쟁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연방제 통일을 ‘희망’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또 문 고문은 재야 변호사 시절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과 동의대 사건 등 극좌세력의 폭력·살인행위를 변호한 경력도 있다. 동의대 사건은 1989년 5월 동의대 운동권 학생들이 전투경찰 5명을 납치, 폭행하고 학내에 감금해 이를 구출하려던 경찰관 7명이 화재와 추락으로 숨진 사건이다.
‘도로 민노당’이 된 민통-통진 야권연대의 파괴력을 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민통당과 좌파진영에서는 공천 잡음으로 불리해졌던 총선 판세를 반전시킬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접전이 예상되는 수도권 일부 지역구에서 좌파 단일후보가 출마할 경우 승산은 더욱 높아진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야권연대가 지나치게 좌편향적인 정책과 노선을 앞세운 나머지 중도층 유권자들의 표를 잃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일보는 야권연대 협상 타결 직후인 지난 3월 11일 분석기사를 통해 “야권연대가 보수층 결집을 부추기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라며 “민주당이 급진 성향의 통합진보당 정책을 상당 부분 수용함에 따라 현 정권에 등을 돌렸던 일부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위기감을 느껴 새누리당 후보를 찍게 될 것이란 관측”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희의 배후 ‘경기동부연합’
실제로 이정희 대표의 배후에 통합진보당 내 극좌세력인 ‘경기동부연합’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이 같은 시나리오도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경기동부연합은 NL(주사파) 성향으로,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당내 선거에서 위장전입, 여론조사 조작 등의 방법으로 세를 불려 마침내 민노당 구주류를 제치고 당을 장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실이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질수록 민통-통진 좌파연합은 중도층의 표를 얻기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민통-통진 야권연대가 판세를 역전시킨 회심의 승부수였는지, 자충수였는지는 오는 4월 11일 밤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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