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속의 도시’ 싱가포르에 가다
‘공원속의 도시’ 싱가포르에 가다
  • 조진명
  • 승인 2012.03.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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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부흥과 시민의식의 한계, 그리고 기독교 부흥의 목격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보고 싶다면 싱가포르만한 곳이 없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남아 있는 서양풍의 건축 양식과 어우러진 최첨단 건물이 주는 독특한 미학. 거주지별로 확실히 드러나는 민족성과 모든 거주지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나무들. 서로 다른 언어를 하나의 풍경 속에 조화시키려 했는지 나무를 심고 나라를 움직여 경제성장을 이룩한 리콴유의 리더십. 짧은 역사 속에 눈부시게 발전한 싱가포르의 드라마틱한 현장이 궁금해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후덥지근한 습기가 온 몸을 덮치듯 불쾌하게 감겨왔다. 후끈한 더위와 습기만 빼면 깨끗한 거리와 현대식 건물이 쾌적하기만 한 환경이다. 과거 리콴유가 공항에서 내린 외빈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조성했다는 각종 식물이 시내 중심지까지 이어져 있다.

실상 싱가포르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경거리는 화려한 관광지보다는 길가의 나무들이다. 외국에서 수입해 왔다는 각종 나무가 일자로 뻗은 보통의 나뭇가지를 멋없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개성적으로 휘어진 가지를 뽐내고 있다. 크기 또한 남다르다. 한낮의 강렬한 햇볕과 이틀에 한 차례씩 쏟아 붓듯 내리는 소나기를 머금고 자라서인지 그 높이가 중심가에 위치한 빌딩만하다.

싱가포르 중심지에 위치한 오차드로드는 서울의 명동과 코엑스를 조합해 놓은 듯한 쇼핑거리인데 지상에 세워진 쇼핑몰은 하나같이 대형 빌딩이다. 싱가포르 부의 70%를 장악하고 있다는 중국인들 스타일이 빌딩 규모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길가의 나무는 그 빌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울창하다. 누가 싱가포르에 오면 도시 속의 공원이 아니라 공원 속의 도시에 온 것 같다고 했다는데 정확한 표현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등장한 새떼에 놀란 사람은 관광객들 뿐이었다. 현지인들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거리에 울려 퍼지는 새 지저귀는 소리에도 고개 한번 들지 않았다. 서울을 비롯한 세계의 도시인들에게 새들의 합창은 동화책에서나 흘러나오는 선율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한 표정이다.

나무, 새, 고층빌딩…‘창조자’의 보이지 않는 손

 
시내 한복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은 주택가로 갈수록 종류도 다양해지고 한층 자유스럽게 자라 있다. 나라에서 기획한 계획 도시답게 주택가에는 풀과 아파트뿐이고 시내도 금융가와 쇼핑가, 관광지가 뚜렷하게 갈려 있다. 바다를 보고 싶으면 싱가포르 최대의 관광지 센토사 섬에 가면 된다. 수평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짐을 가득 실은 대형 선박이 꽉 막혀 있어 다소 답답한 풍경이기는 하지만 바다에서 물놀이 하는 가족들과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이곳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유토피아라는 생각에 동조하게 한다.

민족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즐기기 위한 시민들의 경제수준도 높고 물가도 높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브랜드로 뒤덮인 아기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사주는 젊은 부부를 종종 만날 수 있다.

정작 만날 수 없었던 것은 이 풍족한 나라의 시금석이 된 리콴유 ‘본인’이었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후 말레이시아 연방의 강제 추방으로 군대도 없이 시작한 나라를 오늘날의 강대국으로 만든 전설적인 인물. 그가 만든 제도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다한 앳된 군인들도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하는데 나라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없었다.

사실 모든 것이 그의 흔적이라 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독재의 힘이 작용하는 나라라는 인식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중국 자금성에 걸린 모택동의 초상화 같은 것을 기대하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리콴유의 사진은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에 위치한 현대사 전시관에서나 볼 수 있었다.

물론 얼굴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리콴유를 비롯해 일명 ‘건국의 아버지’들로 불리는 이들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의 후손들도 물려 받은 힘을 바탕으로 사회 곳곳에서 일하고 있다. 1%가 또 다른 상위 1%를 만들고 있는 현실이지만 이 나라 국민들은 큰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도 없었으니 혜택을 보는 게 당연하다는 여론이다.

유명한 시민질서, 그 중심은 눈가리고 아옹(?)

 
이들의 생각이 철학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토론과 논의를 거쳐 자란다면 이러한 사회구조에 반발할 날이 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꿔 말하면 경제적인 성장은 이뤄냈으나 아직 그에 걸맞게 깊이 있는 성찰의 단계는 이뤄내지 못한 것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몇 개의 대학은 모두 경제, 경영, 과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의대와 음대가 있긴 하지만 학문의 중심은 아니다. 인문은 물론이거니와 예술 분야는 불모지나 다름없다. 자연히 문화적인 환경은 턱없이 부족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공연은 대부분 매진 사례를 기록한다고 한다.

자연히 이들의 눈은 타국을 향하게 되고 그중에서도 동질과 동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한국 드라마, 영화, 가요에 빠져든다. 이곳에서도 한류 열풍은 여전하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젊은이들을 흔히 볼 수 있고 한국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암표를 구해서라도 떠나는 팬들이 많다. 자연히 이곳의 인기 스타는 한국이나 중국의 연예인들이다. 먹는 것부터 보는 것까지 모든 것을 수입해 쓰는 나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민들의 공공질서도 ‘눈가리고 아옹’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일단 한 명이 무단 횡단을 시작하면 우르르 따라서 무단 횡단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버스에 사람이 꽉 차 있어도 옆자리에 장바구니를 놓고 비켜주지 않는 아주머니와 딱히 뭐라 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 벌금을 물리지 않는 범위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자신의 안위가 먼저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식당 종업원의 서비스도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 특유의 문화와 비교해서이기도 하지만 음식을 나눠서 여러 번 주문하면 메뉴판을 던져 버리는 주인도 있고 사람이 바글바글해지면 테이블이 남아도 자신은 일을 더 할 수 없다는 종업원도 흔하다.

종업원의 마인드는 손님의 마인드로 이어진다. 셀프서비스라는 개념이 없어서 푸드코트나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자신의 접시를 치우는 법이 없다. 영업시간이 끝나 청소까지 끝냈는데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손님도 많다. 손님이 왕이라서가 아니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

고급 호텔이라 하더라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은 전체적으로 서비스가 떨어져 비싼 돈 내고도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푸대접을 받기도 한다. 싱가포르에서 1년을 넘게 거주하고 있던 친구는 이들의 모습에 질렸다는 듯이 그 원인을 유모 탓으로 돌렸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곳 여자들은 모두 일을 나가고 아이는 동남아에서 온 어린 유모들이 저임금으로 길러주니 그 유아교육이 오죽하겠냐는 거다.

철학 부재 메우는 기독교 부흥의 물결

 
철학이 부재한 나라의 공백은 종교가 메워 주고 있었다. 중심가나 주택가에 힌두교든 무슬림이든 민족 각자의 사원이 곳곳에 세워져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호기심에 들른 관광객들도 많지만 진지한 얼굴로 기도를 드리는 신자들이 중심을 이룬다. 종교는 각자의 기호처럼 존중되는 분위기다. 조그마한 기념품 가게에 가도 힌두교인을 위한 코끼리 조각상과 성경 말씀이 적힌 저금통을 함께 팔고 있다.

카톨릭, 힌두교, 무슬림, 불교가 자유롭게 공존하고 있는 이곳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특이 현상은 기독교의 부흥이다. 그 중심에는 젊은이 선교로 유명한 시티 하베스트 교회가 있다. 주일 아침, 시티 하베스트 교회 앞은 예배를 마친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STAFF라는 티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질서 정리를 해야 할 정도로 혼잡했다.

예배가 시작되자 무대 위에 오른 성가대원들이 찬양을 시작했다. 성가대 가운은 걸치지 않은 채 붉은 조명 아래 서 있다. 로커 차림의 예배 인도자들을 따라 모두 스탠딩으로 드리는 찬양시간은 듣던 대로 파격적인 모습이었지만 묘한 경건함이 절제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찬양을 빌미로 콘서트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콘서트처럼 드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등장한 콩히 목사는 젊은이들이 공감할 만한 예시를 들며 열정적으로 설교했고 연극을 방불케 하는 성대묘사와 제스처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싱가포르 네 개의 대학 중 한 곳인 SMU(Singapore Management University)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기도 모임 또한 싱가포르의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기독교 부흥의 현장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한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호감을 통해 기독교 부흥의 물결이 더욱 확산됐으면 하는 마음이 새로운 소망으로 떠올랐다.
조진명 기자  jadu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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