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불황 벗어나고 있나
세계 경제불황 벗어나고 있나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4.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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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기가 저점을 통과한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다. 지난 19일 중국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유럽과 미국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들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며 “글로벌 경제가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다만 “유가 강세와 이머징 국가들의 성장 둔화 등 리스크는 여전하다”며 단서를 달기는 했다. 일본경제가 대지진 충격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관측도 들려온다. 아직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징후들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도요타, 혼다 같은 자동차회사 주가는 올들어 10% 넘게 올랐고 소니, 파나소닉 등 IT업체와 신일본제철 등도 강세다. 실적 부진에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의 기세에 눌려 있기만 했던 지금까지의 모습이 아니다.

배럴당 200달러 목전에 둔 불안정한 유가

루카스 파파데모스그리스 총리가 경제 회복에 자신감을 표현하며 18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회복이 절반 이상 진행됐다. 2년 안에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미국의 3월 주택건설 체감경기가 6개월만에 횡보 양상을 보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현대증권은 20일 “미국의 주택건설경기는 올해 유동성 장세 지속에 ‘양날의 칼’ 성격을 지니고 있다”며 3월 주택건설 지표의 보합세에 대해 이같이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러한 징후들에도 불구하고 세계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들이 대세다. 17일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경기 신호들이 뜻밖에 선전하며 회복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지만 전반적인 세계경제 성장세는 지난해보다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고 지적했다.

윌리엄 C.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19일 “미국 경제는 아직 숲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우려의 시각과 함께 오히려 향후 경기 둔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더들리 총재가 지목하는 위험요소는 크게 불안정한 국제원유가격, 최근 구조조정 차원에서 진행되는 재정지출 감축, 그리고 여전히 부진한 주택경기다. 그는 이러한 요소들을‘거대한 리스크’라고 언급했다.

세계경기 회복에 찬 물을 끼얹는 국제유가는 그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유가가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주장은 이제 놀랄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이 유가급등의 원인이 정치변수에 의해 수급이 좌지우지된다는 점에 있다. 즉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21일(현지시간) CNBC는 최근 원유시장에서는 영국 브렌트유 가격이 향후 12개월 안에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10달러 초반까지 치솟았고, 브렌트유는 126달러대를 돌파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1~2월 하루 평균 원유 잉여생산분은 250만 배럴로 지난해 370만 배럴보다 낮아진 상태다. 이에 더해 원유 수요 역시 하루 평균 100만 배럴까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시리아, 이란에서 벌어지는 위기와 더불어 공급량마저 빡빡해진 이유는 전쟁 수요에 대비해 비축유가 방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국제유가의 향방은 향후 경기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경기의 회복을 이끌었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유가상승이 멈추면서 압력이 줄어든 인플레이션이었다.

즉 소비자들의 실질구매력이 회복됐다는 것. 그러나 유가가 다시 상승할 경우 미국의 경기상승 모멘텀이 크게 약화될 수 있고, 특히 중국, 인도 등 주요 개도국들은 유가상승이 긴축기조 완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리스와 유로존 재정긴축

 
이란 핵 제재와 관련된 긴장상태의 지속, 북아프리카 주요 산유국의 정정 불안 등을 고려할 때 올해 유가는 지난해보다 10달러 이상 높아진다는 것이 현재 주요 전망기관들의 컨센서스이기도 하다. 공급 충격으로 인한 오일쇼크 시기의 경우와 비교해볼 때 유가상승은 국내외 경제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세계경기 회복에 또 하나의 변수는 그리스와 유로존 국가들이 힘겨운 재정긴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을 4.4%까지 축소해야 하는 스페인의 경우 유럽위원회가 올해 스페인의 경제성장률이 -1.0%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하자 스페인 정부가 EU 집행부에 재정적자 비중 목표를 5%로 상향 조정해줄 것을 요청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 급격한 재정긴축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 때문이다. 이탈리아도 올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을 5%로 축소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재원을 대부분 세금인상을 통해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이러한 정부안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역시 그리스다. 2015년까지 370억 유로 규모의 재정긴축을 실시해야 하는 그리스는 이 중 55%를 부가가치세, 소득세 등 세금인상으로 충당할 계획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로이터 통신은 13일 유럽위원회 관계자와 보고서를 인용해 그리스가 2013년과 2014년 안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를 추가로 5.5%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2차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그리스가 그에 대한 대가로 재정적자를 줄이거나 경제개혁을 단행하는 약속을 내걸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이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그리스가 올 초 도입한 GDP 대비 1.5% 규모의 긴축 패키지를 통해 올해 재정적자를 1%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최근 전망에 따르면 내년부터 2014년까지 사이 재정적자 격차가 점차 커질 것”이라며“2년간 5.5% 재정적자를 더 줄여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재정긴축을 시행하면 일단 해당 국가의 경제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단기적으로는 불황을 견뎌내야 한다. AP통신과 그리스 언론은 12일(현지시간)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벌어진 긴축안 항의 시위가 방화 등 폭력사태로 이어져 80여명이 부상당했다고 전했다. 수도 아테네에서는 적어도 15곳의 상점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10만 명 가량이 모여 구제금융 조건으로 제시된 대규모 긴축안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트로이카’에서 제시한 제2차 구제금융 조건을 “협박”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ECB 관련 한 소식통은 “그리스가 디폴트에 처하면 연금이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급이 중단될 것”이라며 “그리스 시민들이 무언가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실패한 독일의 재정긴축 약속

재정긴축의 어려움은 독일의 사례가 보여준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해온 독일이 정작 지난해 자국의 긴축재정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던 것.

12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쾰른경제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독일 정부가 지난해 지출삭감 목표액 112억 유로(약 16조5,300억 원) 가운데 47억 유로를 줄여 목표 달성률이 절반도 안 되는 42%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독일 정부가 올해와 내년에도 긴축재정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독일은 올해 191억 유로의 예산절감 계획을 밝혔으나 절반 수준도 이행하지 못한 상태다. 또 이달 중 내년 연방예산 초안을 합의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합의된 긴축방안은 예산절감 계획의 3분의1에 불과하다.

문제는 EU와 더불어 남유럽의 재정긴축을 요구해온 독일이 자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함으로서 제기될 그리스, 스페인 국민들의 거센 항의다. 독일 정부가 당황했던 것은 이 같은 결과가 이달 초 EU 정상회의에서 25개 회원국들이 재정규제를 강화하는 신(新)재정협약에 공식 서명한 직후 나온 것이라는 점.

신재정협약은 독일이 주도해 제정된 것으로 독일의 ‘채무 억제(debt brake)’ 법안을 벤치마킹해 EU 각국이 균형예산을 이룰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피겔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EU 정상회의 때마다 긴축을 외쳐왔지만 정작 자국의 재정상태에 대해서는 엄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재정긴축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던 투자자 소로스가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이 아닌 독일이 강도 높은 재정긴축을 부과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이는 EU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경제적ㆍ정치적 긴장을 초래 중”이라고 말했던 것은 차라리 투자자의 전략 마인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노벨 경제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교수는 대놓고 “재정긴축안은 실패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은 ‘재정긴축이 더 깊은 침체를 가져올 것’이라며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오닐 회장은 독일 주도 하에 추진되고 있는 재정통합에 대해 “유럽은 추가 긴축이 아니라 성장이 필요하다”며 “긴축을 전제로 한 재정통합이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없을 것이라는 S&P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긴축-침체-재정적자 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美 주택경기 속에 가려진 진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잘못된 케인지언의 처방을 따르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후버연구소의 그레고리 폴 교수는 “크루그먼은 그리스가 더 이상 공공부채를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파탄이 날 때까지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케인지언들의 잘못된 처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포브스지의 칼럼을 통해 반박했다. 그는 또“ 유럽에서 케인지언들의 승리라고 자랑하는 그 재정지출 정책이 오늘의 그리스 사태를 불러왔다는 점에 그들 스스로 눈감고 있다”라고도 지적했다. 그레고리 폴 교수에 의하면 “그리스에 재정지출을 늘리면 국민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더 해외로 반출할 것”이므로 재정지출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과 더불어 미국 경기의 회복조건으로 지목되는 주택가격 문제에 새로운 쟁점이 등장해 주목을 끈다. 지난해 11월 공공금융 전문가 데이빗 핸더슨이 쓴 <2008년 금융위기의 뿌리: The Roots of of the 2008 Economic Collapse>라는 제목의 책에서는 2008년 월가의 금융위기가 무디스, S&P와 같은 신용등급회사들이 정부규제 하에 묶여 주택담보채권에 대한 평가를 소홀히 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에 따르면 2007년 이들 신용평가회사들은 민간 금융기관이 발행했던 모기지 채권 상품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로 급격히 조정했으나 공공금융기관인 프레디맥이나 페미니에와 같은 기관이 발행한 모기지 채권 상품에는 여전히 AAA등급을 유지했다는 것.

이로 인해 대형 금융기관들의 혼란이 초래됐지만 이들 신용사들은 그러한 배경을 설명하지 못했고 결국 투자자들이 이 두 공공기관의 채권에 몰림으로써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핸더슨 교수는 그러한 배경으로 미국의 신용평가회사들이 미국 정부의 규제 하에서 민주당 정부가 포퓰리즘 차원으로 추진한 주택보유 촉진 정책에 훼손을 가하는 자신들의 평가를 우려했던 점을 지목했다.

즉 미국의 경기불황을 가져온 2008년 금융위기의 본질은 시장이 아니라 잘못된 정부의 규제에 기인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제퍼리 프리드먼(Jeffrey Friedman) 록펠러대 교수는 “잘못된 규제 하의 자본주의는 규제 없는 자본주의 만큼이나 위험하다”며 “경제 권력들이 서로 경쟁하는 체제에서는 서로 다른 정보들로 인해 위험이 분산될 수 있지만 규제 하에서는 단일한 정보만을 발신하게 돼 총체적 위험을 안게 될 수 있다”고 서평에서 밝혔다.

이러한 주장은 향후 불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 경제정책이 보다 시장 자유 쪽으로 무게를 둘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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