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 탈북여성 구출 현장
인신매매 탈북여성 구출 현장
  • 미래한국
  • 승인 2012.04.1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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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중국 인신매매 현장을 가다

지난 3월 사단법인 세이브엔케이(Save North Korea)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이 좀 다급하다.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온 사내는 남한에 있는 조선족 동포였다.

중국 OO에 있는 한족 마을에 인신매매로 팔려간 탈북민 여성들에 대한 제보였는데, 여성들을 구해 줄 남한의 단체들을 수소문하다가 본 단체를 알게 됐다고 했다.

경기도 모처에서 그 남자를 만나 상황을 체크해 보니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남자 자신도 관련 상황을 중국 내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었다며 중국 내 원제보자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이에 세이브엔케이는 중국 현지 도우미를 포함한 4명의 구출팀을 구성했고 상세한 구출계획을 논의한 뒤 <미래한국>의 협조를 받아 3월O일 중국 현지로 출발했다. (보안을 위해 현지 지명과 관련자들의 인명, 일부 내용을 밝히지 않음)

3월O일 오후 중국 OO시 - 인신매매범 제압, 정보 입수

일행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현지로 직행했다. 한 커피숍에서 만난 남녀 제보자들의 태도가 수상했다.

애초부터 순순히 협조를 받기는 틀렸다고 판단한 구출팀은 현지 도우미에게 신호를 보냈고 도우미는 수갑을 꺼내 남자의 손목에 채웠다. 남성을 먼저 제압하고 나니 여성 제보자가 겁에 질려 모든 사실을 순순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짐작했던 대로 그들은 탈북여성을 팔아넘기는 인신매매 브로커들이었다. 한번 팔아넘긴 여성들을 다른 곳으로 또다시 팔아넘기기 위해 ‘구매자’를 물색하던 중 한국 내 조선족까지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그 브로커 여성 역시 북한에서 인신매매로 팔려와 지금은 또 다른 중국 한족남자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시골 마을에 있는 탈북여성들을 우리 일행에게 돈을 받고 넘기려고 했다. 팔려온 북한 여성들이 임신을 한 상태거나 남자에게 맞아 병들거나 부상당해서 제대로 성적 노리개의 역할을 할 수 없을 경우 구매자들이 ‘반품’이나 다른 ‘제품’을 요구한다고 했다.

북한 여성들의 ‘가격’은 나이나 외모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통 20대 초중반의 경우 2만~3만 위안, 30대 1만~2만 위안, 40~50대 5천 위안 선이었다.(1만 위안=약 180만 원) 심지어 팔려온 여성 중에는 10대 소녀와 60대 할머니도 있었다고 한다.

북한 여성을 원하는 중국 남자들은 대개 결혼을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거나 변태 성욕자, 혹은 아주 늙고 중국의 기준에서도 최하위 빈민층에 속하는 남자들이다.

브로커 여성은 인신매매로 넘겨받은 북한 여성들을 자신들의 은어로 ‘돼지’라고 불렀다. ‘돼지 두 마리, 세 마리가 간다’라는 식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렇게 팔려온 북한 여성들이 중국 내 낙후된 시골 마을에 넘쳐난다는 브로커의 자백이었다.

자신이 팔아넘긴 북한 여성들의 숫자를 묻자 “다 셀 수는 없지만 100명이 넘고, 그러한 브로커들이 족히 수백, 많게는 천명이 넘을 것”이라고 자백했다.

구출팀은 브로커부터 모든 정보를 입수한 뒤 구출계획을 다시 짰다. 애초에 파악했던 5명의 인신매매된 북한 여성들의 위치를 확인했고 그곳으로 신속히 이동했다.

3월O+1일 오후 중국 OO 마을  - 인신매매 여성과 접촉 

한 현지 여성 도우미가 행상으로 가장하고 여성들이 있는 마을에 들어갔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산속 마을이었고, 구출 대상자들은 모두 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오후시간 이들이 사는 집을 각각 방문해 ‘마실 물을 좀 달라’라는 식으로 접근하니 북한 여성들이 물그릇을 들고 나왔다.

현지 도우미는 물을 받아 마시다가 한글로 쓰인 준비한 쪽지를 보여주면서 휴대폰을 건네줬다. 쪽지는 ‘당신의 탈출을 도와줄 사람이 전화 통화를 원하니 화장실로 들고 가서 받으시오’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서 5명의 탈북여성들과 모두 통화를 했다.

그들은 처음엔 놀라고 반신반의하면서도 한결 같이 도와달라며 탈출을 희망했다. 하지만 탈출을 원하는 5명의 여성 가운데 2명은 구출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파악한 사실이지만 2명의 여성 가운데 30대 여성은 임신 9개월이었고 함께 사는 남자의 폭력으로 다리에 부상을 입고 있었다. 또 다른 여성은 3살난 아기를 데리고 있었고 확실히 탈출 결심을 하지 못했다.

3월 O+2일 새벽 중국 OO 마을 - 여성 3명 속옷바람으로 탈출

구출팀은 구출이 가능한 3명의 여성들에게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새벽 2시 집을 나오라고 전달했고 정해진 시간 마을 어귀에서 그들을 태울 차의 위치를 알려줬다.

초조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약속된 시간이 되자 3명의 여성들이 집을 나와 숨어 있던 곳으로부터 달려나와 봉고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한결 같이 새벽에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속옷이나 잠옷바람에 나왔고 추위와 공포에 얼마나 떨었는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행은 전속력으로 마을에서 벗어났다. 도중에 한 사람이라도 들키거나 잡히는 경우 일은 대단히 복잡해지고 구출팀의 안정도 보장할 수 없었다. 일행은 번화한 OO시로 들어가 미리 마련해둔 개인주택에 구출자들을 묵게 했다. 구출팀 일행도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반나절을 쉬었다.

3월 O+3일 중국 OO시 - 운명의 또 다른 갈림길

구출된 여성들은 자신들의 행로를 결정해야 했다. 3명의 탈출자들은 모두 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한국을 가려고 마음먹었던 상황이 아니었던 만큼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들에게 일단 중국 내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친인척을 찾아 가도록 권유했다.먹을 것을 찾아 중국으로 넘어온 이들은 북한에서 브로커들의 꾀임에 빠져 중국에 들어왔거나 중국 내 친척집에 가는 도중 납치되거나 브로커들의 유혹에 넘어가 인신매매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임신 3개월째의 20대 초반 여성은 다행히 OO에 있는 삼촌과 연락이 닿아 그리로 떠났고 여성의 요청에 따라 낙태비용을 제공했다. 그들은 거기에서 남한행을 택할 것인지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또 다른 20대 후반과 40대 중반 여성 2명은 6개월분 생활비를 제공하고 다른 중소도시로 거처를 옮겨줬다. 그리고 구출팀 일행은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서울로 항하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서울의 모습을 떠올렸다.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달리고 시가지의 빌딩들과 아파트단지들은 태양 아래서 빛나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닫고 있을까.

자유는 공기처럼 사라져 보아야만 그 가치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공항에 내리니 밝은 얼굴들의 여행객들이 바쁘게 스쳐간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에서 뛰어 놀고 부모들의 손을 잡고 무언가를 칭얼대기도 한다.

중국 시골 농촌에서 매맞고 굶주리며 말 그대로 짐승과 노예처럼 살다가 탈출한 그 북한 여성들의 얼굴에도 언제가 저런 밝은 웃음을 볼 날이 올 수 있을까.

수많은 인신매매 여성들 중 단 몇 명을 우리가 구출한다고 한들 그것이 또 무슨 소용일까라는 의견도 있다. 구출된 여성들도 지금 당장은 그들이 어떻게, 왜, 누구에 의해 구출됐는지 어리둥절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인간의 도리를 할 뿐이다. 이 일이 가능하도록 기도와 물질로 도움을 준 세이브엔케이 후원자들과 미래한국 독자들에게 감사를 돌린다. (미래한국)

세이브엔케이/미래한국 긴급구출 및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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