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의 ‘2013년 체제’완성되나
종북의 ‘2013년 체제’완성되나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4.2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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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오만해서 선거에 졌다는 건 수구언론이 씹는 용어인데, 그것을 우리 진영이 멍청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17일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권한대행의 말이다. 문 대행의 이런 말은 이제까지 야권 내에서 나온 패배 원인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다. 여론과도 거리가 멀다. 총선 직후인 12~15일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새누리당 승리의 원인으로 “야당이 잘못해서(38.2%)”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새누리당의 아성, 대구에 출마해 40%의 지지를 얻은 민통당의 김부겸 후보도 “이길 수 있는 선거였으나 김용민의 막말이 문제였다”라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문 대행의 기이한 발언은 계속된다.문 대행은 18일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느닷없는 독재 때문에 이긴 것이고 민통당은 중심이 없어 졌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자신의 낙선에 대해 “부산 젊은이들이 나꼼수를 잘 안 듣기 때문”이라고 한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노무현) 탄핵 이후 균형이 이렇게 맞은 건 처음”이라며 “12월 대선에서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 만만하게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돈키호테마저 연상된다.

문성근은 아직 미치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은 이런 문성근 대행의 발언을 ‘치기’정도로 이해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이야 표정관리 차원에서 대꾸를 안하고 있지만 한 보수 언론은 문 대행의 발언에 대해‘당의 생각과는 다른 주관적 입장’이라며 ‘다음 대선의 김용민은 문성근일 것’이라는 조롱 섞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문 대행의 그러한 발언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문성근이라는 변방적 존재를 단숨에 야권연대의 아이콘과 당대표 권한대행으로 부상시킨 핵심세력의 생각을 봐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핵심세력은 친노와 종북 NL그룹을 연대하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존재들일까.

이번 4·11총선의 결과를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 일 수 있다. 여·야가 어떤 시각을 갖느냐 하는 것은 19대 국회에서 야권연합세력과 새누리당간에 형성될 전선은 물론 12월 대선에서 승패를 가르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관망된다. 팩트로 이야기 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민주통합당의 경우 18대 81석에 비해 46석이 증가한 127석을 얻었다. 이는 1992년 14대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이다.

반면에 2008년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그리고 미래희망연대의 의석수는 2012년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의 의석수를 비교할 때 28석이 감소했다. 반면 ‘민통-통진’연합은 51석이 늘었다. 무소속까지 고려하면 보수진영의 의석수는 최고 50석이 줄어든 셈이다. 야권연대와 100석에 가까운 차이가 벌어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야권연대 좌파진영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압승을 기록했다. 득표율로 따졌을 때 야권연대가 새누리당보다 40만표 이상을 더 얻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한마디로 좌파 지지층이 상당히 증가했다는 이야기다

이번 총선은 종북과 좌파의 명백한 승리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총선에서 큰 관심을 끄는 부분은 야당의 성격이 중도좌파에서‘사회주의’수준으로 좌클릭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야권연대를 견인한 민주노동당의 이념적 헤게모니 투쟁 전략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바탕에는 지난 6·2 지방자치 선거에서 민노당이 대약진했던 배경과 함께 7·23 전남 광주 재보선 선거에서 민노당과의 야권연대를 결렬시켰던 민주당이 광주 유권자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아 고전했던 트라우마도 작용한다. 한미 FTA 반대,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과 같은 對 여당 이념투쟁 역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을 견인했다.

그 결과 총선 전 지지율 30%의 민주당은 지지율 3%의 민노당에게 끌려갔고, 야합이나 다름없는 야권연대를 통해 자기 지역구에서 후보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던 것.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껍데기만 남았던 민주통합당은 19대 총선에서 종북노선의 핵심세력들인 민노당의 김선동, 이석기, 김미희와 함께 남민전의 주역인 이학영을 제도권 국회로 입성하게 하는 운반선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둘러싼 원외 세력 역시 대부분 구(舊) 민족민주혁명당(이하 민혁당) 관련 인사들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혁당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김영환, 하영옥 등이 1992년 3월, 김일성이 항일투쟁 시기에 만들었다는 반제청년동맹을 모태로 설립했다. 당시 법원은 민혁당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노선)을 달성하기 위한 노동자, 농민의 지하 전위당으로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바 있다. 민혁당은 총책 김영환이 북한에 대해 비판적 태도로 돌아선 이후 1997년 7월 해체 선언을 하면서 분수령을 맞았으나 하영옥 등이 조직을 장악해 활동을 지속했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의 최근 저서 <진보의 그늘>에 의하면 새누리당이 소위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지적했던 진보당 비례대표 2번인 이석기 후보는 구 민혁당 하부의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이다. 그는 민혁당 사건이 발표되자 3년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2년 5월 검거돼 구속된 전력이 있다.

주사파 세력들의 제도권 진입

이번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공동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이의엽 통합진보당 정책위의장도 민혁당 간부 출신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혁당 부산지역위원장으로 2000년 9월 말 검거되어 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다.

4·11 총선에서 울산 북구 야권연대 후보였던 김창현 전 민노당 사무총장은 2008년 분당 사태 당시 당내 다수파인 자주파(NL계열)를 대변했고 1998년 적발된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이적단체 가입 혐의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던 것으로도 확인됐다.

김창현 후보는 선거에서 47.62%를 얻어 박대동 새누리당 후보(52.37%)에게 4,000여 표차로 패했지만 그가 얻은 득표율은 과반에 가까운 것이었다.

민혁당 잔존 세력과 전향을 거부했던 주사파 경기남부 세력은 당시 패권주의 성향을 보였던 주사파 최대 조직인 경기동부연합을 장악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과거 북한의 핵실험에서부터 천안함 사건, 3대 세습에 이르기까지 줄곧 북한의 입장을 두둔해 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종북 주사계열의 19대 국회 입성은 과거와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먼저 18대와는 달리 이들 종북세력을 견제할 야권 내 중도세력이 없다는 점과 야권연대의 모토로 제시된‘2013년 체제’가 非주사, 非종북 계열의 좌파그룹과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3년 체제란 무엇이었던가.

통일전선‘2013년 체제’의 진실 

2011년 11월 당시 혁신과 통합(혁통)의 상임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범야권 인사들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2013년 체제를 향해’라는 토론회를 열고 야권 통합과 내년 총ㆍ대선 후 들어서게 될 새 정권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는 2013년 체제의 이론을 주창했던 백낙청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과 출판사 '창비'가 운영하는 세교연구소와 함께 주최한 것으로, 문 이사장 외에도 박영선 민주당 정책위의장, 심상정 통합연대 공동대표, 윤여준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장이 함께 패널로 참여했다. 논의된 주요 정책과 아젠다는 87년 체제로 표상되는 민주화, 자유화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문 이사장은 ‘2013년 체제’에 대해 “2012년 총·대선의 양대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 복지, 남북평화, 환경, 노동, 삶의 질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근본적인 다른 시대’란 어떤 것인가. 이론의 주창자인 백낙청은 올해 1월 자신이 펴낸 <2013년 체제를 위하여>에서‘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북연합으로 분단현실을 공동 관리하는‘1단계 통일’을 주장한다. 백낙청은 그날 토론회에서 “남북이 적대적이면서도 동일한 체제라고 말할 만큼 쌍방 기득권세력이 공생관계이고 나쁜 점을 닮아가며 재생산되는 구조”라는 말로 북한과 남한 체제를 같이 취급했다. 그렇다면 그런 남한 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것일까.“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심지어 사회주의도 원칙상 용인되어야 하는 국가”라는 그의 말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차기 대권주자로 지명되는 문재인은 “남북 평화체제로,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화답했다.

<프레시안>은 올해 1월 이를 ‘2013년 체제의 핵심은 평등이다’라는 칼럼으로 사회주의 가치를 명백히 했다. 한마디로 2013년 체제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포기하고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는 테제에 다름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사회주의라는 것이 북한이라는 체제의 수령독재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도권 야권 세력이 종북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끌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야권의 ‘2013년 체제’는 총선 과반수 확보 실패로 일단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 이들의 공세는 새누리당의 ‘경제 민주화’와 ‘유연한 대북정책’이라는 약한 고리를 집중 타격하리라고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ISD조항 재협상이 뜨거운 주제로 등장할 것이고 ‘6·15정신 계승’역시 양보 없는 공세 아젠다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새누리당에 이념전사가 없다는 점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주장하는‘경제 민주화’와 야권이 주장하는 ‘경제 민주화’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새누리당의 유연한 대북정책이 야권의 6·15정신 계승의 공세 앞에 어떤 스탠스를 취하게 될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보수 시민세력의 역할을 요청하게 된다. 새누리당이 기회주의적인 대북정책과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약한 고리를 스스로 버리고 이 부위를 다시 튼튼한‘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되돌릴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추동해 내지 못한다면 웰빙정당 새누리당은 또 다시 위기를 맞게 되리라는 점은 불보듯 뻔하다는 이야기다.

새누리당, 투쟁할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
 
이제 총선은 끝났고 대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종북과 사회주의 세력이 통일전선으로 추동하는 ‘2013년 체제’는 그들의 전열이 재정비되는 대로 다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때 그 전술과 테제는 홍세화가 말한 것처럼 ‘보다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업그레이드’될 것이고 그 추진 강도도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런 이유로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행은 자신 있게 ‘진보의 패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패배를 인정하는 진보진영의‘어리석음’을 질타하는 배짱이 생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은 야권의 종북세력과 기회주의적 친노(親盧), 그리고 노동계 사회주의 그룹이 구축한 통일전선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문성근이라는 ‘야권 부족연합의 무당’을 통해 전달될‘그 분의 말씀’과 이를 기다리는 세력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더욱 날카롭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새누리당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복지정책이 이번 총선에서 얼마나 이슈가 되었던가. 오히려 새누리당을 구한 것은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와 같은 자유 시장경제와 보수적 가치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면 묻고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발현될 한미 FTA에‘경제 민주화’는 문제가 없는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과 3차 핵실험 앞에 ‘6.15 공동선언’은 설득력이 있는가.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되는 무소불위, 전능한 존재인가. 또 다시 새누리당이 자유,애국 보수 진영을 인질로 삼을 생각이라면 박근혜 대권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보수진영의 힘으로 대안을 찾게 될 테니까 말이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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