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갤럽 최시중 회장
한국 갤럽 최시중 회장
  • 미래한국
  • 승인 2002.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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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값있는 주춧돌 역 하고 싶어”
“여론조사로 대선후보 정한 것은 전무후무한 사건”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있던 지난 금요일 오후,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론조사기업인 ‘한국갤럽’의 최시중 회장(崔時仲·66)을 만났다. 미디어선거와 여론조사는 이번 대선기간 내내 국민 모두의 화두(話頭)였다. 최회장을 통해 들어본 여론조사활동의 내용과 그의 인생유전(流轉)은 긴박하게 돌아가던 대선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고요하고 인상깊게 기자에게 전해졌다. 최회장은 동아일보 정치부 평기자에서 논설위원이 되기까지 30년간 언론에 종사했던 언론계의 원로다. 그는 1994년 동아일보 김상만 회장이 타계하자 오랜 기간의 언론사생활을 접고 정치부 기자로서의 경험과 식견을 살릴 수 있는 한국갤럽의 경영일선에 참여하게 됐다.“인생이란 행복한 시간을 맞고자 하는 노력의 연속이자 선택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어머니가 남기신 ‘작정(作定)이 복(福)이다’라는 유언도 그가 어렵던 시절 일찍부터 갖게 된 이와 같은 인생관을 반영한 것이었다.최회장은 누구보다도 험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어려운 환경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그 자신 스스로의 노력과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그는 경북 포항의 항구마을 구룡포(九龍浮)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까지 낮에는 어머니를 도와 선창가에서 고구마나 호박을 구워 팔고 밤에는 인근 공장에서 통조림을 담는 나무박스를 만드는 소년가장 역할을 했다. 불을 피우기 위해 장작을 불 때마다 눈에 들어오던 연기와 또래 아이들의 부끄러운 시선으로 당시 그의 얼굴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최회장은 그시절 날마다 동해안이 내려다 보이는 구룡포공원에 올라 한 시간씩 줄넘기를 했다.“맨발로 줄넘기 줄을 넘을 때마다 내 발밑에서 다져지는 땅을 느꼈어요. 그 땅처럼 내 의지와 건강이 다져져야 되겠다고 생각했지요.”검정고시를 보는 것보다 정규과정을 거쳐 사회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최 회장은 가정교사로 입주해 일하며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나 굶는 이웃을 돕기 위해 정치를 하고 싶어 서울대 정치학과에 도전해 합격했다. 가장 높은 곳을 향한 노력이었고 어려운 기간동안 다져진 의지의 성과였으며 미래를 향한 새로운 선택이었다.대학에 들어가서 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들이 생겼다. 정치자금의 이면사(裏面史)를 통해 존경하던 역사의 인물들도 검은 돈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낮에는 화려했던 민주투사들이 밤에는 정치자금을 받아 쓰는 사실을 가까이서 목격하기도 했다. 정치 지망생이었던 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사이에서 방황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치열했던 정신적 갈등을 생생히 기억하는 건 인생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한 그의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동아일보에 입사해 인촌 김성수(仁村 金怯秀)선생의 연구를 맡아 수백 명의 각계 인사를 만나게 된 것도 그가 정치의 이면을 볼 수 있었던 계기였다.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의 노후가 불평과 회한으로 점철돼 초라하게 느껴진 반면 이따금 술병을 들고 찾아오는 제자들과 사념없이 술 한잔을 기울일 여유를 가진 학계원로들의 노년은 한없는 부러움이었다. 정치를 하자는 구체적인 요청들을 미련 없이 물리친 것도, 오랫동안 몸담아 온 언론사를 떠나 늦은 나이에 새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그때의 배움을 충실히 간직했기 때문이 아닐까. 1974년 설립된 한국갤럽은 세계 각국의 갤럽기업 중 한푼의 로열티도 내지 않는 유일한 갤럽회사다. 1978년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의 조지 갤럽씨는 언론이 엄격히 통제되던 유신시절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여론조사기업을 경영하고 있던 박무익 소장에게 고무되어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가 근거가 되어 1980년대 말 미국 갤럽사의 전문 경영인들이 지적재산권 소송을 제기했을 때 한국갤럽이 승소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대선후보 단일화가 여론조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은 전대미문(前代未聞)한 사건만이 아니라 아마도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사건이 될 거예요.”정치는 스스로가 지혜와 용기와 결단으로 풀어야 하는 것인데 여론조사의 과학적인 오차범위나 공정성 오류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일회성의 여론조사로 그와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단독 여론조사 요청을 거부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론조사를 업무로 하는 회사가 27년 동안 신뢰를 유지하며 지속되어오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조사를 요구해 오는 의뢰처도 많았고 심지어는 자기들의 조사결과를 갤럽의 이름으로 발표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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