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1차적 사회자본"
"가족은 1차적 사회자본"
  • 미래한국
  • 승인 2012.05.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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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류석춘 연세대 교수

세대간 단절에 이어 가족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가정문제로 자살하는 청소년들과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가정폭력은 경찰이 안방에 들어설만큼 심각해졌다. 무엇이 우리의 가정을 황폐화시키고 있는가. 가정의 달 5월에 <미래한국>이 전통과 자본주의 관계를 연구해온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를 만났다.

- 최근 우리 사회에 가정문제로 자살과 폭력이 증가하고 있어 가족의 위기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가족윤리가 약화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그리고 가족문제에 있어서 문제가 심화되는 큰 이유는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 패턴이 파편화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가족의 유대를 만들어주던 가족생활의 전형적인 모습이 있었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안방에서 주무시고 아이들은 아이들 방에서 사는 것 또한 주말이면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한다든가 저녁이면 둘러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그런 모습이죠. 그런데 인터넷이 보급되면서부터 가족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게 됐어요.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개인의 컴퓨터를 가지고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각자가 다른 일들에 빠져 있죠. 함께 있어도 같은 것을 공유하고 같은 것을 하지는 않고 있는데 이런 모습들이 가족의 불화를 부추긴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이 IT 강국이라며 좋은 측면으로만 자랑삼아 얘기하는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가치관과 윤리의 혼란을 조장하는 부정적인 요소도 있는 것이죠. 인터넷 상에 윤리가 정립돼 있지 않으니까 그 영향이 가족관계에까지 침투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전통적인 가족상을 잃어가는 것 아닐까 진단해 봅니다.

 

- 가족 간의 소통 부재가 문제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만.

네. 최소한 가족이라면 여러 결정에 있어 대화를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맞춰가는 것이 정석인데 요즘에는 각자가 인터넷에서 보고 들었던 지식을 기반으로 각자가 결정하고 더 이상 얘기 나누지 않는 경우가 많죠. 예컨대 대통령 선거가 있다면 가족이 선거에 대해 얘기하고 어느 정도는 공유되는 가치가 있었는데 요새는 아들 따로, 아버지 따로, 투표 후에도 가족과 대화하기 보다는 각자 인증샷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며 인터넷 집단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한다는 거죠.

- 전통이‘사회자본’으로서 사회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을 하셨는데 사회자본으로서의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회자본과 신뢰라는 말이 동일어일 수 있어요. 신뢰나 도덕, 윤리 같은 것들이 사회자본을 구성하는 실체들인데요. 이런 가치들을 1차적으로 생성하고 유지시키는 기능이 가족이죠. 특정한 개인이 어떤 사람과 사귀느냐,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느냐를 통해서 1차적으로 사회화가 되고, 사회화 과정에서 그 사람이 믿고 따르는 가치를 심어주는 과정에서 가족이 가장 중요하죠.

인간이 만든 사회적 구성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구성이 가족이며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죠. 어떤 가족을 배경으로 살았고 어떤 학교에서 어떤 친구들과 사귀었는지 어떤 사회에서 어떤 직장을 다녔는지의 구성들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실체들이고 이런 맥락에서 사회자본으로서의 가족이라는 것은 출발점으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죠.

- 최근에 다문화가정 문제도 새로운 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다문화가족과 우리 전통의 긍정적 유교 가치의 접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전전통적인 유교가치는 혈통을 중요시 했어요. 그런데 그 혈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모계, 즉 여성이 어디 출신인지는 상관이 없었어요. 남자의 혈통은 중요했지만 여자의 혈통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요새는 여자도 반쪽 지분을 가지고 자녀들이 엄마의 성을 받을 수도 있는 평등세상이 됐죠.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정을 보면 남자는 전부 한국 사람이고, 여자만 외국에서 왔어요. 옛 유교 전통으로 다문화가정을 바라본다면 사실 문제될 게 없는 거죠. 부계 사회 전통면에서 모계의 바탕은 상관없어요.하지만 요새는 양성평등을 기준으로 하는 가치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다문화가정 내에서도 남녀가 공동으로 50%씩 지분을 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하겠죠..

- 호주제가 심각한 문제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호주제가 파괴되면 근친 결혼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텐데 선생님은 호주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어려운 문제인데요. 현재는 완전히 양성 평등으로 가족 관계법을 바꿨잖아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진보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고, 남녀평등 문제에서 법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우리나라가 최고 수준으로 앞서 있는데 아까 얘기하신대로 여성이 호주가 돼 자녀가 엄마 성을 따른다면 우생학적으로 아주 가까운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게 되니까 생물학적으로 나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법이 바뀐 거죠. 옛날 같은 경우에는 8촌 이내에는 결혼 못한다는 동성동본의 법이 있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가족법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 거죠. 

- 결국 가족문제는 전통과 현대 사이에 놓인 교량이라는 생각입니다만, 이 문제의 당사자가 개인이어야 할지, 아니면 국가 사회가 나서야 할지 고민스럽습니다. 가족의 문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요?

저는 가족의 문제에 있어서 개인이 스스로 부담할 수 있으면 국가가 개입하지 말고 개별단위 가족에게 맡기는 게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스스로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낄 수 있으니 이런 경우에는 국가가 개입해서 일정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확보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 결국 인위적이고 급진적인 가족정책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전통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거죠. 고칠 게 있다면 점진적으로 고치자는 것이 보수적 입장이고, 보수의 반대 입장인 진보나 개혁에서는 문제가 있으면 일단 뜯어 고치고 보자는 입장이에요. 한번 고쳐서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은 문제가 문제를 낳으면서 문제의 악순환이 벌어지니까 오히려 역사적으로 검증된 보수적인 방법을 존중하면서 문제가 있으면 고쳐나가는 온건한 개혁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가족에 대해서는 가족 내 구성원을 독립된 개인으로 존중하는 자유주의적인 가족관도 있고 가족공동체를 중요시 하는 보수주의적 가족관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 안에서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충돌한다면 어느 편이시겠는지요?

어려운 문제죠.(웃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되는데 많은 경우에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유만 주장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소홀히 하거나 관심을 안 기울여요. 자유를 주장하면 거기에 책임도 꼭 따른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의사결정을 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죠. 그렇다고 가족 안에 개인이 무시돼도 안 되죠.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실 저는 어떤 면에서는 공동체를 더 강조하는 사람이에요. 사람이라면 자신이 처한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요. 나와 관계되지 않은 채 나 혼자만의 이해관계가 중심이 돼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만약 이것을 공동체주의자라고 얘기한다면 저는 공동체를 더 강조하는 사람일 수 있죠.


- 독자들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 말씀하신 공동체 문제로 좀 더 들어가 보죠.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발전사를 설명하실 때에 공동체 안에서 개인들의 지연, 학연 같은 연고를 중요한 인자로 주장해 오셨는데요. 설명을 좀 부탁드릴까요.

얘기하자면 복잡한데 아주 쉬운 예가 있어요. 우리나라에 민주화가 돼 자유가 많이 신장됐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이 자유를 신장시킨 힘이 뭐냐? 바로 지역주의라는 것입니다. 경상도 정권이 계속 정권을 잡는 것에 대해 호남지역이 왜 너희만 성장하느냐며 반기를 들었고, 호남의 힘만으로는 안 되니까 충청도를 끌어들여 수평적 정권교체가 처음으로 이루어졌거든요.

그러니까 정치적인 역학관계에서 민주화를 일으킨 것은 지연의 힘이에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람들은 지연을 정치발전이나 민주화에 역행한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연이 한국 민주화를 이끌어 내는 가장 큰 동력이었다고 생각해요.또 다른 예로 가족기업이 확대돼 재벌이 됐는데 가족기업이 만약 전통적인 혈연 지연 학연 때문에 나쁜 거였으면 우리나라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가 없어야 되는 거죠.

학연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은 서울대의 나라이다. 혹은 연고대 등 얘기하는데 이에 대해 특정한 학교에 권력이 집중되고 자본이 집중하는 것이 문제였으면 한국은 발전할 수 없었죠. 실제 한국은 서울대나 연고대의 엘리트 학교들이 인재를 양성해 그 힘으로 커온 거니까요. 한국의 발전과정 자체가 혈연 지연 학연을 통해 만들어지고 공급되는 큰 루트였는데 사람들은 이를 깊이 있게 생각 안하고 이건 전통적이니까 나쁜 것이라고 하는데 현실을 보면 학연이 우리나라를 만들어 냈고, 지연과 혈연이 우리나라를 움직이고 경제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이것을 정확하게 못보고 있는 거에요.

- 학연이나 혈연, 지연의 연고가 발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는 신뢰와 같은 것 때문인가요?

그렇죠. 신용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죠.‘나는 어떤 가문에 속했기 때문에 우리 가문에 먹칠 하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이죠. 이것이 바로 신뢰에요. 신뢰를 담보로 함부로 헛소리 못하게 하는 네트워크 속에 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네트워크가 가져오는 부정부패의 모습만 보면서 부작용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부작용이 엄청나게 많아 보이는 거에요. 그런데 이것을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면 사회적 약자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1차적인 네트워크는 혈연 지연 학연이에요.

만약 누군가 경제적으로 혹은 상황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국가가 그들을 도와주지 못하면 이들이 어디 가서 도움을 청하느냐, 바로 혈연 지연 학연이에요. 지금 얘기하신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이 자기 때문에 망신을 당하지 않게 집안의 명예와 가문의 명예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산다는 것이죠.

-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보시기에 가족의 문제를 발전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 제안을 하신다면?

IT사회의 도래 후 인터넷의 영향력의 확대와 가정문제가 얽혀 있어 처방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인터넷을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인터넷을 쓰면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자기 컴퓨터에 집중하느라고 전통적인 공동체인 가족을 소홀히 대하게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가족이 제공하던 신뢰를 되찾을 만한 새로운 인터넷 상의 시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인터넷에는 온갖 난리가 다 일어나고 있거든요. 욕설, 비방,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온갖 허무맹랑한 요설들이 인터넷을 타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런 것을 잘 알고 대안을 마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한정석 편집위원
정리.사진 곽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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