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과 철학의 탄생
상업과 철학의 탄생
  • 미래한국
  • 승인 2012.05.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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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만큼 플라톤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플라톤(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다소 소홀히 취급되기도 한다. 아직 본격적으로 무르익지 않은 초기적인 사유로 취급되거나 더러는 희화화된 일화를 통해서 주로 언급되는 것이다. 탈레스도 그렇다.

탈레스는 BC 6세기경의 자연철학자인데 서양철학사에선 일반적으로 철학의 창시자라는 명예를 누린다. 하지만 그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게‘별을 관찰한다고 하늘만 올려다보며 걷다가 물웅덩이에 빠졌다’는 이야기다. 이 얘기는 철학자란, 관념의 세계에만 빠져 현실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예화로 자주 인용된다. 여기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지면 더욱 우화가 된다. 현대인의 입장에선 ‘난데없이 물은 웬 말이냐’는 게 일감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탈레스를 이렇게만 대접하는 건 사실 경솔하고 부당하다. 오늘날의 과학적 견지에서 볼 때도 원소주기율표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소가 수소이니 물을 근원적 요소로 지목한 게 딱히 그냥 버릴 얘기도 아니다. (水素 Hydrogen은 물의 원소라는 뜻이다.) 그리고 세계의 물질적 구성을 하나의 기본 원소를 갖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자 한 일원론적 시도는 매우 가치 있는 과학적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밀레토스의 지경학(地經學)

게다가 그는 그런 단편적인 얘깃거리를 통해 알려진 수준을 넘어서는 인물이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칠대 현인 중 첫 번째 인물로 꼽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탈레스가 그런 대단한 인물이 된 데는 그의 출신지이자 주 활동무대인 밀레토스의 일종의 지경학적(地經學的) 조건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밀레토스는 그리스 종족의 하나인 이오니아인들이 에게 해 연안의 소아시아 서쪽 외곽 지역에 세운 열두 도시 중의 하나였다. 다음은 요하임 슈퇴리히의 <세계철학사>의 묘사다.

“이 도시들은 대단한 번창을 누렸는데 아시아 대륙의 깊은 내륙에서 시작된 기나긴 대상로가 이곳에서 끝이 났으며 동방에서 도착한 물품들이 여기서 선적되어 그리스 본토로 수송되었다. 동방의 무수한 상품과 함께 전래한 동양 민족들의 수많은 문화적 자산도 이 길을 통해 그리스로 전해졌다. 천문학과 달력, 동전, 계량법 그리고 어쩌면 문자도 동방에서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인들을 거쳐 다른 그리스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밀레토스는 이 열두 도시 중 가장 남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BC 6세기 경 밀레토스는 주요 무역항이었고 아마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을 것이다. 밀레토스는 여러 인종과 언어와 종교가 교차하고 있었다.”

밀레토스는 교역을 배경으로 한 문명의 십자로였던 셈인데 탈레스는 이 대단한 무역항의 상인이었다. 그는 장사를 위해 여행을 많이 한 탓에 상당한 견식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특히 이집트를 자주 왕래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밀레토스의 정치가이기도 했는데 무역도시의 베테랑 상인으로선 당연했을 것이다.

한편 그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이기도 했다. 탈레스는 일식을 정확히 예측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으로 유명한데, 동방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칼데아에서 전래한 천문학 지식을 습득한 덕분일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또 자력을 연구하고 그림자 길이를 이용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고 탈레스의 정리로 불리는 수학의 몇 가지 기초정리를 발견했다. 이것은 이집트에서 얻은 지식이었을 것으로 본다.

상인이자 정치가이며 철학자인 탈레스

상인이며 정치가이자 이처럼 해박한 지식인이었던 사람이 철학자가 아닐 이유는 없다. 우선 자연철학자로서의 면모인데, 세계의 근본이 물일 리는 없지만 이것도 당시의 팽배했던 신화적 세계관에 비춰보면 매우 과학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탈레스가 경박한 유물론자였던 건 아니다. 그를 유물론의 시조쯤으로 지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좀 견강부회다. 그는 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작과 끝이 없는 무엇”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가 그리스 신화의 신들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지 않았던 것은 거의 틀림없지만 ‘궁극적 존재’에 대한 관념은 여전히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정치가이기도 하고 ‘궁극적 존재’에 대한 진지한 관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문철학자로서의 면모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탈레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즐겨 인용했던 그리스 어느 신전의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와 비견된다. 탈레스는 또 어떻게 하면 완전한 덕을 갖출 수 있느냐는 질문에 “타인이 행하면 잘못됐다고 비난할 만한 일을 스스로 저지르지 말라”고 답했다. 황금률이다.

고대 동서의 선현들을 탐사하다 보면 이 같은 황금률이 표현만 조금씩 바뀌며 도처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석가모니가 그러했고 공자가 그랬는가 하면 또 예수가 같은 말을 했다. 이러한 공통점은 궁극적 가치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하지만 지역 간의 활발한 교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밀레토스에 탈레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도 있었다. 특히 아낙시만드로스는 어쩌면 탈레스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언급돼야 할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본격 철학사의 몫으로 넘기고 여기서는 그의 놀라운 면모를 슬쩍 짚고만 가겠다.

그는 “현대 진화론의 일부를 선취”하고 지구와 천체의 기원과 운동을 물리학적 방법으로 설명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동시대 주변을 살펴보면 느닷없는 돌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의 이 같은 지식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밀레토스의 이들 자연철학자들은 마치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을 연상케 하는 바가 있다. 신화의 시대에 이처럼 자연과학적 사고를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밀레토스라는 교역도시 자체가 가장 중요한 해답일 것이다.

무역은 상품의 교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명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접촉과 교류 교환은 중요하다. 무역은 상품의 교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역을 통해서 사람들은 타문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경험하고 신세계를 발견한다.”(마이클 우드의 <인도이야기>)

문명은 그렇게 꽃을 피우는 것이고 밀레토스도 그랬을 것이다. 상업과 교역이 성장하면서 사유 또한 풍요로워졌다. 철학이 탄생하게 되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물론 자연철학을 넘어서는 본격적인 인문철학 나아가 정치철학이 탄생하려면 좀 다른 조건과 시대적 상황을 만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 삶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은 사유의 단순한 풍요가 아니라 갈등과 고뇌가 드리우기 시작해야만 비로소 잉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다.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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