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왜 허덕이는가
유럽은 왜 허덕이는가
  • 미래한국
  • 승인 2012.05.2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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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됐을 때였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萬惡의 근원으로 저주하던 이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목청을 높였다. 딱히 변호를 하는 이들도 달리 없는 가운데 “미국은 이제 끝났다”는 전망이 그럴 듯하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 세계경제는 예상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작 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은 서서히 경기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다른 곳들에서 신음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

우선 중국, 한동안 마치 포스트 미국 시대의 총아가 될 듯 각광받았지만 ‘기대’가 빗나가는 양상이다. 5월 13일 세계 최대 채권 펀드 PIMCO는 중국의 2012년 경제성장률을 1999년 이후 13년來 최저인 7%로 전망했다. 특유의 강점으로 여겨지던 정치적 안정성도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으로 의문스러워진 가운데 경제성장에 대해서도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더 심각하다. PIGS(돼지들)라는 한 묶음 조어로 싸잡아 불리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이 EU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더니 프랑스 대선에서는 좌파가 당선되고, 독일에서도 집권 우파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정치지형이 좌로 기울고 있는 양상인데 유럽에선 사실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왼쪽에 출구가 있는 것일까?

미국을 원망하고 싶겠지만

유럽으로선 무엇보다도 미국을 원망하고 싶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 만한가? 냉엄히 말해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스스로의 힘만으로 일어선 나라는 사실상 없다. 유럽의 전후 부흥의 시작은 거의 전적으로 마셜플랜 덕분이었다. 서독의 부흥은 패전에도 불구하고 축적된 실력이 있었던 덕분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서진을 막기 위해 서독에 대해 경제적 재무장만큼은 허용해야겠다는 미국의 선택이 없이 ‘라인 강의 기적’이 가능했을 것인가? 미소 대결의 역설적 수혜였다.

시작이야 어쨌든 나중에는 EEC(유럽경제공동체) 등으로 독자적 동력이 형성됐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착시가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전 세계경제는 (전후 폭발적 성장과 사이사이 굴곡을 논외로 하자면) 대체로 연간 통상 2% 정도씩 성장했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의 기본 동력은 거의 미국이라는 선도 국가가 이뤄내는 기술혁신에서 나왔다. 일본과 함께 유럽에선 독일이 나름 일정하게나마 역할을 한 듯이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비중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으며 그나마 독일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혁신의 존재감을 보여준 나라는 없었다.

전후 부흥의 시기를 제외하면 유럽의 전반적 경제성장률은 거의 언제나 낮은 포복이었다. “한 해 2% 정도 성장하는 국가는 세계의 성장에 아무 기여도 못하는 셈이며 경제성장이 2%에도 못 미치는 국가는 결국 경기가 후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기 소르망, <Wonderful World>) 이 기준으로 보면 유럽의 세계 경제에 대한 기여는 덩치에 비해 매우 부실했다.

유럽은 15세기 말 대항해 시대 개막 이래 질주하듯 내달리며 세계사를 주름잡았다. 동아시아의 중국, 중근동 일대의 오스만투르크, 인도의 무굴제국 등이 각기 자기 영역에서 나름의 독자적 패권을 구축하고 위력을 발휘했지만 세계사의 큰 흐름은 결국 서구의 승리로 귀결됐다. 이렇게 현대 세계 문명의 틀을 형성한 유럽이 지금 왜 이렇게 힘에 부친 모습을 보이는 것인가? 그냥 ‘서구의 몰락’(슈펭글러)인가? 하지만 같은 서구문명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유럽과 달랐다.

1831년 프랑스의 젊은 지식인이 미국을 9개월에 걸쳐 여행했다. 그의 이름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 그는 4년 뒤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기념비적 저작을 출간했다. 토크빌은 이 저서에서 미국이 당시 막 시작된 민주주의의 성공적인 실험실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그런데 토크빌이 한 가지 놓친 게 있었다. 그가 미국을 여행하던 당시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이미 유럽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후 미국경제는 20세기 초부터는 위기 때나 아닐 때나 생활수준에서 유럽보다 항상 20% 정도 앞서 있었다.

토크빌이 놓친 것

한편 미국과 유럽은 사상적 경향에서도 다른 양상을 보였다. 유럽에선 프랑스 혁명 때부터 이미 좌익적 조류가 강력한 흐름을 형성, 이후 정치지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 흐름도 대서양을 건너지는 못했다. 물론 1930년대 대공황 전후 시기 좌익사조가 미국에서도 약간의 흥행은 했다. 정부개입을 전면화한 뉴딜이 등장하고 이후 그 같은 조류가 하나의 정치적 흐름을 형성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무래도 ‘자유의 힘’이 더 강했다.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그랬듯이 줄곧 자유의 원칙이 경제적으로 더 강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유럽은 달랐다. 유럽에서는 고비가 올 때마다 언제나 국가의 더 많은 직접적인 사회경제적 역할을 기대했다.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이런 분위기는 더 심화됐다. 서유럽에선 적어도 혁명적 좌익은 억눌러지거나 혹은 순치됐지만 여하튼 사회민주주의 정도는 돼야 주류 행세를 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보수적이었던 처칠을 한방에 정리해버린 해협 건너 영국에서부터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을 거쳐 멀리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3국에 이르기까지 복지주의가 휩쓸었다. 우파 성향의 정치세력도 감히 그 자체에 맞설 수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유럽의 복지천국도 미국의 힘없이 가능한 게 아니었다. 미국은 유럽에 투자만이 아니라 대소(對蘇)안보 부담도 덜어주고 시장까지 제공했다. 유럽은 그 덕분에 한동안, ‘편히’ 번 돈으로 ‘부담 없이’ 복지를 구가했다.

하지만 허상에는 당연히 진실의 비용 청구가 따르기 마련이다. 지나친 사회보장으로 일하지 않고 버티는 자들이 늘고, 과도한 세금으로 투자가 약화되자 구조조정도 가로막혔다. 이런 상황에서 1970년대 미국 경제가 일시 약화 조짐을 보이자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일찍이 영국이 대처 등장 전후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한동안 드골의 업적을 우려먹으며 버텼던 프랑스는 지금도 거의 30여 년째 저성장과 만성적 실업에 시달리고 있다. 그다지 검토 가치는 없지만 PIGS 국가군들의 경우도 한 예만 보자. 2009년 11월 이탈리아의 손꼽히는 명문대 총장이 자국 최대 일간지에 글 한편을 기고했다. 제목은 “아들아, 조국을 떠나라”였다.

“아들아, 유럽을 떠나라”

여전히 스웨덴 모델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성공도 다분히 허구다. 이코노미스트는 “2006년 당시 스웨덴의 공식 실업률은 6%에 불과했지만 실제로는 17%에 육박했다”고 지적했다. 장기 병가로 일자리를 떠난 사람들을 고용상태로 간주한 통계 마사지의 결과였다. 청년실업률도 유럽 최고 수준이었는데 더 큰 문제는 창업정신의 고갈이었다. 스웨덴에서는 1950년 이후 민간부문에서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가 없다. 아무도 창업을 안 하고 그냥 발렌베리 가문이라는 대재벌이 먹여 살린다. 국민들은 완전히 길들여진 양떼다. 이게 성공적인 모델? 그러다 ‘가문의 위기’가 오면?

유럽은 가장 잘 나갈 때도 언제나 뒤에 미국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어느 유럽이든) 유럽 모델의 성공은 애당초 없는 것이다. 사이좋게 나눠먹는 안정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좋든 싫든 거기에는 혁신은 없다. 창조적 도약은 고른 안정이 아니라 차등이 부여하는 불안정을 계기로 한다. 스티브 잡스 등은 차등을 인정하지 않고 평균적 안정만 희구하는 곳에서는 나오지 못한다. 이것이 유럽이 여전히 허덕이는 이유다.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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