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국빈 방미에서 생긴 일
대한민국 최초의 국빈 방미에서 생긴 일
  • 미래한국
  • 승인 2012.05.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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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달인’ 이승만, 美 행정부 대신 여론에 호소하다

- 이현표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이승만 초대대통령에 대한 다양한 평가 가운데 그의 자유와 정의에 대한 신념, 한반도 통일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한 비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 있다. 즉, 1954년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국빈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의 행적을 대한민국 공보처가 영문으로 기록해 놓은 책, <President Syngman Rhee’s Journey to America>(이승만 대통령 방미기)가 그것이다.

국빈방문의 배경과 한·미 정상간의 이견

이승만은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외교와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국내외에 역설했었다. 그러나 6·25전쟁은 그에게 무력으로 공산주의자들을 한반도에서 몰아낼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게 했다. 이 때문에 휴전에 철저히 반대했고, 아이젠하워 등 미국과 국제사회의 정치지도자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적의 도발을 응징하고 북진통일하겠다는 이승만의 집념은 당시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는 이승만에게 큰 불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1954년 제네바 회담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는 자신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한편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6·25전쟁 휴전을 성립시켰지만 이승만의 불만을 잘 알고 있었고 어떻게든 그를 회유하고 싶었다.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국빈방문하게 됐다. 미국은 이승만에게 결코 호의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망명생활 중 그는 국권을 잃은 국민으로서의 푸대접을 받을 만큼 받았었다. 더구나 해방 이후 정부수립, 6·25전쟁과 휴전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한 미국의 괄시는 심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으로 미국을 국빈방문하게 된 그는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 미국인들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설득하고 싶었다.

“한반도에 ‘자유와 정의’라는 대의가 구현되는 통일국가가 필요하며, 이는 자유 아시아, 나아가 자유세계의 미래와 직결된다. 이를 위해 한반도는 물론 중국대륙에서도 힘으로 공산집단을 몰아내야 한다.”

그런데 이승만의 주장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였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사주를 받은 북한 지도부가 저지른 6·25전쟁이란 불장난으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미국과 자유세계의 피해도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들의 물질적인 손실을 제외하고 인적 피해만을 살펴보면 약 194만 명의 16개국 유엔군 참전 장병 중에서 4만5천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고 11만 명이 부상 혹은 전쟁포로로 고통을 당했다. 특히 유엔군 장병의 92%가 미군이었고 전사·부상자의 88%가 미군이었다. 즉, 179만 명의 미군이 참전했고 전사·부상 등 사상자 수가 13만7천명에 달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자유와 정의’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서는 전쟁을 계속 수행하기보다는 불완전하지만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따라서 이승만과 아이젠하워 사이에는 서로 만나 타협하기보다는 누군가 자기의 주장을 접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승만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아이젠하워를 설득해 양보를 받아낼 마음이 없었다. 그가 설득하려는 대상은 아이젠하워가 아니라 미국 여론이었다.

이승만은 국빈방문 기간 중에 아이젠하워의 주장에 굴복하거나 화해를 통해서 실질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얄팍한 술수를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여론에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호소해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 행정부에 대한 선전포고

1954년 7월 26일(미국 동부시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정부가 제공한 군용기편으로 워싱턴 공항에 도착해 소감을 말했다.

“만약에 우리가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다면, 압록강까지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조금 겁을 먹어 우리는 다 차려 놓은 밥상을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가 한국, 미국과 유엔, 그리고 모든 자유국가들에게 최상의 기회였는데 놓친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확실한 승리를 위한 우리의 계획이 기필코 성취되도록 보살펴주실 것입니다.”

이승만의 도착 일성(一聲)은 아이젠하워를 비롯해 한반도의 통일을 막았던 바로 그 사람들과 싸움을 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공항에서 백악관으로 직행한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워가 주최한 국빈만찬에 참석했으며 이 자리에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한미 양국의 우의만을 강조했다.

이승만이 미국의 한반도와 아시아 정책에 대해 첫 포문을 연 것은 7월 28일 미 의회 연설에서였으며 요지는 아래와 같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한반도에서 대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승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전투는 아직도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선에서는 현명치 못한 휴전에 의해 포화가 잠시 중단되고 일시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적은 이 기회를 이용해 무력을 증강시키고 있습니다. 제네바 회담도 예견된 바와 같이 하등의 성과 없이 끝났으니, 이제 휴전 종결을 선언할 적당한 시기가 됐습니다.

전 세계의 자유 국민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악의 힘에 유화적이 되거나 굽히지 말고, 세계의 세력균형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불리하도록 움직여서 설사 그들이 섬멸 무기를 소유하더라도 감히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에 반대하는 150만 명을 학살했지만, 아직 수많은 자유중국 게릴라들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의 경제 상태는 극도로 취약합니다. 미국 해군이 중국 해안을 봉쇄한다면 중국의 교통망은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중국을 다시 찾지 못하는 한, 자유진영의 궁극적 승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위태로워지면 소련이 지상군과 공군을 투입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의 개입은 오히려 자유진영을 위해서 아주 잘 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련이 수소폭탄을 대량생산하기 전에 그 제조 중심지들을 미 공군이 파괴하는 것을 정당화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주장이 강경정책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누구든 유화적이면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힘든 세계, 끔찍한 세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인류 문명의 존립을 가늠할 운명이 바야흐로 우리의 최고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이상과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서 궐기합시다.

친구들이여, 우리는 반쪽짜리 공산주의, 반쪽짜리 민주주의 상태의 세계에서는 평화가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시아의 자유를 안정시키기 위한 여러분의 중대한 결정이 지금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결정은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에서의 세계 공산주의 문제를 자동적으로 해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방적 제한전쟁을 역설

이승만 연설의 핵심은 인류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예방적 제한전쟁(豫防的 制限戰爭; a preventive limited war)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그 어느 외국 국가원수도 미 의회에서 감히 해 본적이 없는 도발적인 연설이었다.

이승만은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자기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고 싶어 했다. 미 의회에서 예방적 제한전쟁을 역설한 이승만은 국빈방문 기간 중 미국 어디를 가나 의회연설의 주장을 반복했고, 연설의 배경과 내용을 설명하고, 어떤 때는 아이젠하워의 미온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기까지 했다. 즉 의회연설이 총론이고 주제였다면, 이후 이승만의 발언들은 각론이자 부연설명이었다.

조지워싱턴대 연설(7. 30. 워싱턴) : “우리는 공산주의를 불편하기는 하나 위험하지는 않은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여기고 퇴치를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한적한 강의실에 앉아 자유세계가 파멸의 비극으로 휩쓸려가도록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며 공산주의에 대항해 싸우는 모든 자유인들의 편에 서야 합니다.”

미국외교기자클럽 연설(7. 30. 워싱턴) : “내가 중국에 대한 강경하고 확고한 정책이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나의 현실적인 평가에 근거한 것입니다. 언론인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여러분이 미국 정부는 물론, 위대한 미국의 힘의 원천인 미국 국민에게 호소해주기 바랍니다.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또는 자유를 보전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는 세계 도처의 민족들을 지원하자고 말입니다.”
쪾파운드리 감리교회 연설(8. 1. 워싱턴)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만약 우리가 북한에서 100만 명의 공산군을 몰아내려고 하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 인류문명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소폭탄보다 더 위력적인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모두 나를 비난하라고 하십시오. 하느님만이 나를 질책하지 않으신다면, 그뿐입니다.”

외국전참전용사회 연설(8. 1. 필라델피아) : “6·25전쟁에서 산화한 미국과 한국의 장병들은 힘이 정의를 만들지 않는다는 위대한 원칙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치렀던 전투의 목적이었던 자유라는 대의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타협의 산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위업과 희생이라는 감동적인 행위는 옳은 것과 정의가 승리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희생 각오한 자유 추구해야”

한미재단 연설(8. 2. 뉴욕) : “한국전쟁은 제한전쟁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원하지 않는 한 한국전쟁이 세계대전으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소련이 바랐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벌써 지구를 휩싸고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목표는 제한적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하면 무적입니다. 정의라는 대의명분을 가진 갑옷을 입고 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미국 국민 여론의 뜻에 따라야만 합니다. 미국 국민인 여러분이, 미국 여론과 세계 여론의 위대한 지도층인 여러분이 공산주의자들의 팽창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빨리 할수록 상황은 더 나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훨씬 수월하게 깨닫게 될 것으로 이 사람은 굳게 믿습니다.”

LA 시의회 연설(8. 6.) : 전쟁은 악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공포보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자유가 없는 나라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며 죽음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세계정세협회 연설(8. 6. LA) : “우리의 공동목표는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뤄야 하는 평화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패배와 자유의 종말을 초래할 뿐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표상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야 하는 정의이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가진 것 모두를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바쳐야 합니다.”

이러한 이승만의 발언들을 보면 의회연설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의지와 진심이 담긴 것이었다. 그는 미국이 제한전쟁을 해서라도 대한민국과 자유중국 정부가 한반도와 중국을 각기 통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이것이 아시아의 자유, 정의, 평화를 실현하는 첩경임을 역설했던 것이다.

美 전역 TV 라디오 연설

이승만은 외교, 특히 홍보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달인이었다. 망명 시절의 외교와 홍보활동은 접어두고라도 1948년 7월 그의 초대 대통령 취임사는 달인으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과거 40년간 우리가 국제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은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와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세계가 일본인들의 선전만 듣고 우리를 판단해왔지만, 이제 우리가 우리말을 할 수 있고, 우리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와 민중은 해외선전을 중요히 여겨서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각국 남녀에게 우리의 올바른 사정을 알려 줘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간에 양해를 얻어야 정의가 서로 통해서 교제가 친밀해질 것입니다.”

이승만의 미국 국빈방문 기간 중의 발언은 6·25전쟁이 그의 사고를 어떻게 변화시켜 놓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이승만은 합리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다. 심지어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압통치 아래에서 신음했을 때에도 우리의 억울함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려서 국권을 찾아야 한다는 어느 면에서 보면 이상주의자였다. 이런 면에서 그는 안중근 장군이나 무장투쟁을 통해서 국권을 회복해야한다는 애국지사들과 달랐다.

이승만은 6·25전쟁을 겪고 나서는 어제의 순진한 평화주의자, 합리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북쪽의 공산정권을 힘으로 무너뜨리겠다는 반공투사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국빈방문을 통해서 미국이 더 이상의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휴전이 성립된 지 1년 후에야 비로소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통한 북진정책을 사실상 포기했다.

반면에 아이젠하워와 미국 정치지도자들은 6·25전쟁의 휴전과 제네바회의 실패 이후 한반도의 불안이 세계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승만의 강경노선을 단념시키려고 했으며 군사 및 경제원조의 확대를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이 미국 한복판에서 경제원조나 군사지원을 구걸하기는 커녕 공산주의자들과의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하자 아이젠하워 등 미국 정치지도부는 충격에 빠졌다. 이들은 이승만이 골치 아픈 정치지도자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결코 이승만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승만이 아이젠하워와 미국 정치지도자들에게 한국 국민의 자긍심에 관한 새로운 것을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1954년 8월 2일 미국전역에 TV와 라디오로 실황 중계되는 가운데 한미재단이 주최한 만찬에서 말했다.

절묘한 국가 홍보 이벤트

“내가 여기 온 것은 더 많은 원조, 더 많은 자금, 기타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이 난관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울면서 도움을 갈구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은 눈물을 감추고 조용한 결의와 용감한 미소로 기아와 파괴를 이겨내는 싸움을 시작했습니다...나의 영혼은 미국 국민의 넘치는 후의와 지지에 의해서 한껏 고무됐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하면 무적입니다. 정의라는 대의(大義)의 갑옷을 입고 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미국 국빈방문을 통해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자들을 힘으로 완전히 몰아내고, 자유와 정의가 꽃피는 통일한국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이승만의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승만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미국과 함께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자들과 피를 흘리며 싸웠고 앞으로도 계속 투쟁할 의지가 있는 민족은 다름 아닌 한국인이라는 점을 미국 정치지도자들과 국민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줬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만의 미국 국빈방문은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인 절묘한 국가홍보 이벤트였다.

정리 / 편집국
발표 / 이승만포럼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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