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채용 시험 문제없나
공무원 채용 시험 문제없나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5.25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정학 선택과목으로 변경, 전형적 탁상행정 효율성 의문

흔히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그‘영혼이 없는 공무원’이 되려는 경쟁은 너무나 치열하다. 나라 전체가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열풍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청소년 미래 희망 직업 1위가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4월 7일. 전국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이 치러졌다. 20개 분야에서 2180명을 뽑는 이 시험에 무려 15만7000여 명이 몰려 경쟁률이 72.1대 1을 기록했다. 특히 일반행정 전국 모집분야는 경쟁률이 1000대 1을 넘어서 사상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바늘구멍이다. 연령층도 대학생에서부터 4, 50대 직장인, 여기에 고등학생까지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원래 9급 공무원 시험은 고졸 학력자를 대상으로 했다. 9급의 직무가 대개 단순하고 사무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취업난과 80%가 넘는 대학진학률이 만들었다.

공무원 시험 경쟁이 심해지면서 9급 공채 합격자 가운데 고졸 이하 학력은 2%를 밑돌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 사회에도 학력 양극화가 높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고교 과목으로 공무원 뽑기?

문제 해결에 이명박 대통령이 나섰다.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고졸 출신의 공직 진입 장벽을 낮추라”고 지시했다. 그 후 행안부가 관련 법 개정에 나섰고 지난 4월, 2013년 9급 공채시험에 행정학과 행정법, 형법, 세법 같이 대학에서 배우는 직군별 필수과목들이 선택과목으로 돌려졌다. 대신 고교과목인 사회, 과학, 수학 등을 선택과목에 추가하는 내용의 ‘공무원 임용시험령’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과목만으로도 9급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정부 개정안은 즉각 찬반을 불러왔다. 의아한 것은 정부가 이런 개정안의 경우, 통상적으로 공청회를 개최한다든지 해서 여론수렴을 하는 것이 관례지만 이번 공무원 임용시험령은 단 한번의 공청회도 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대 주장의 핵심은 “취지에 비해 현실적으로 고졸 학력자 합격률은 높아지지 않고 행정 이론에 대한 무지는 증가할 것”이라는 거였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이렇게 생각해 보죠. 서울대에 대도시 출신 학생들이 너무 많이 입학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험문제를 중학교 수준으로 바꾸면 농촌 출신이 더 합격할까요? 아닐 겁니다. 국·영·수·사 등의 과목에서 대학생들은 수능·수시·논술 등으로 단련돼 있어요. 즉 대학생들이 고졸자보다 훨씬 좋은 득점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임도빈 교수의 주장은 일단 9급 공무원 시험에서 행정법과 행정학을 필수로 하는 경우에 대학생이나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유리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만약 9급 공무원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행정학이나 행정법을 교육받은 대학생 이상이라면 모르겠지만 9급 공무원 응시자의 대부분은 대학에서 이들 과목을 정규과목으로 교육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졸 이하의 졸업자들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임도빈 교수의 논지다.

사실 행정학과 행정법을 선택과목으로 변경한다면 대부분 수험생들은 행정학이나 행정법 대신에 사회나 과학, 수학 중에서 2과목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고졸 이하의 학력자가 대입 수능을 거친 고학력자보다 유리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시 말해 행안부의 ‘고졸응시자 증대’라는 목표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보다 복잡해지고 이해관계가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이제 9급 공무원의 역할이 과거 1990년대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첨단 IT를 활용하는 시대에서 행정서비스 역시 첨단으로 갈 수 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말단 공무원들도 행정의 원리와 법체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도 그래서 제기된다.

9급 공무원, 영어보다 행정학 수요 높아

이러한 논란은 사실 9급 공무원에 고졸자를 더 늘리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 우리 공무원 선발 시험이 얼마나 업무 연관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제기한다.

국가 역시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야 하는 점에서는 기업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기업보다 더 성품과 전문성에서 뛰어난 인재를 선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올해 2월 한국행정학회가 주최한 ‘공무원역량과 채용시험제도’ 토론회에서 잘 드러났다. 토론에 나선 일선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의 결론은 한마디로 “공무원시험 과목이 실무에 별 도움 안 된다”는 것이었다.

토론회에서 강인호 조선대 행정복지학부 교수가 발표한 ‘공무원 시험의 실용성에 관한 연구’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조사는 지난해 7월 서울·인천시 소속 일반직 공무원 185명(9급 152명, 7급 29명, 미응답 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공채시험과목의 직무수행과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에 16.8%는 ‘매우 낮다’고 답했다. 35.7%는 ‘낮은 편이다’라고 응답했다.‘보통’이라는 응답은 40%였고 반면 ‘매우 높다’는 응답은 0%, ‘높은 편이다’라는 응답도 7.6%에 불과했다. 우리 공무원의 절반 이상은 공무원시험 과목이 실제 업무와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7·9급 공채시험의 필수과목인 영어와 한국사가 직무와 가장 동떨어진 과목으로 조사됐던 점이 눈에 띈다. 조사 결과 9급 과목 실용도는 영어와 한국사가 각각 14.9%, 14.3%로 가장 낮았다. 특히 7급 공채 과목의 영어와 한국사 실용도는 각각 5.1%와 3.5%로 행정법(25.5%), 행정학(20.8%)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사를 담당했던 강 교수는 “영어는 수험생들 사이에 당락을 좌우하는 가장 어려운 시험과목으로 인식되지만 실제 7·9급 하위직 공무원들이 업무를 수행할 때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면서 “영어 과목의 난이도를 조절하거나 과목 자체를 대체할 실용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9급 공무원 시험에 행정이론에 대한 효용성은 생각보다 컸다. 조사에서 실용성이 높아 필수과목으로 채택할 과목으로 9급의 경우 ▲지방행정론(61.6%) ▲도시행정론(15.7%) ▲지역개발론(9.2%)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우리 공무원 시험에 보다 발전지향적인 개혁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공무원 선발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함께 요청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공무원을 어떻게 선발할까.

미국, 캐나다, 영국은 채용의 전 과정에 걸쳐 권한과 책임이 분권화돼 있다. 이들 나라들의 경우 공무원 공개경쟁채용 시험은 원칙적으로 공무원 수요가 있는 각 부처 또는 기관별로 실시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나 일본과 다르다.

물론 미국, 영국의 경우 엘리트 공무원의 경우 일부 채용시험은 중앙인사기관이 직접 관장하기는 한다. 프랑스의 경우 국립행정학교(E.N.A)를 통해 고급 공무원을 양성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프랑스 역시 일부 고위직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험이 각 부처별로 실시된다.

공무원 선발방식에도 ‘선진화’ 필요

물론 이러한 나라들이 처음부터 공무원 선발에 권한을 분산시켰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1994년까지는 인사관리처(OCM)라고 불리는 곳에서 일률적으로 공무원 선발을 담당해 왔다. 그러다가 클린턴 정부 시절에 모든 연방정부에 적용되던 공무원 선발 지침을 각 부처별 자율에 맡기기 시작했던 것.

이러한 조치는 미 정부기관과 지자체간에 서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촉발시켰다. 미국에서는 공무원 선발에 필기시험을 보지 않고 대학 성적과 연구실적만을 가지고 선발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아울러 공무원에 자격시험을 도입하고 수요보다 많이 뽑는‘예비시험제’도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각 부처에 해고나 이직 등으로 수요가 발생했을 경우 즉시에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부처별 공무원 선발은 우리도 이명박 정부 초기에 구상했던 계획이다. 200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 부처별로 공무원을 자율 채용하는 방식을 도입하기로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에서도 특채 형태의 수시 채용이 크게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이르면 2010년, 늦어도 2011년까지 행시를 폐지하고 부처별로 필요한 인력을 자율적으로 채용하는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 공약은 백지화됐다. 대신 로스쿨이 도입됐고 외무고시 대신 국립외교원에서 외무 공무원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올해부터 시작됐다. 행정직 공무원만 여전히 집필고사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9급처럼 하위직 공무원의 학력 양극화를 해소하는 문제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현재의 과목변경과 같은 방법보다는 차라리 ‘특수 행정高’,‘세무高’처럼, 특수목적고교의 활성화를 처방으로 주문한다. 대학을 가지 않고도 공무수행에 필요한 필요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은 과거 산업화 시기에‘철도高’,‘상업高’와 같은 학교를 설립해 좋은 결과를 얻었던 역사적 경험에 바탕한다. 공무원이 청소년들의 희망직종 1위가 된 바라면 이렇게 지자체별로 특수고교를 설립해 기초 공무원의 수요를 충원하는 방법이 공직사회에서 학력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은 설득력이 있다.

‘공무원 증가의 법칙’견제할 방법은?

하지만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점은 비대한 정부다. 공무원의 수는 해야 할 업무의 경중이나 그 유무에 관계없이 일정 비율로 증가한다는 파킨슨(Cyril N. Parkinson)이 주창한 ‘공무원 증가’법칙 때문이다. 영국의 행정학자 파킨슨은 이렇게 공무원 수가 증가하는 이유로 부하(部下)배증의 법칙(제1공리)과 업무배증의 법칙(제2공리) 두 가지를 들고 있다.

부하배증의 법칙은 특정 공무원이 과중한 업무에 허덕이게 될 때 그 업무를 나누기 보다는 그를 보조해 줄 부하를 보충받기 원한다는 공리를 말한다. 그리고 업무배증의 법칙은 부하가 늘어나면 과거 혼자서 일하던 때와는 달리 지시, 보고, 승인, 감독 등의 파생적 업무가 창조돼 본질적 업무의 증가 없이 업무량만 배로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원리를 생각해 볼 때 거대 정부에 넘쳐나는 공무원이 반드시 우리 사회에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러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뷰캐넌(James M. Buchanan)의‘합리적 공공선택론’이다. 이 이론은 공공정책에서 반드시 비용 대비 편익을 따져야 한다는 것인데 공공선택론은 관료제에도 적용된다. 공무원들도 기업처럼 경쟁을 통해 일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한 지역에 경찰서가 두 개 있고, 소방서가 두 개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많은 사람들은 이를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며 중복과 낭비를 줄이기 위해 기관들을 통폐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지만, 사실은 중복을 없앰으로써 나타나는 효율은 보면서 독점화시킴으로써 나타나는 더 큰 비효율은 보지 못한다는 거다.

자동차 생산업체를 여러 개 두고 경쟁 시키는 것이 효율적이지, 중복과 낭비를 줄인다고 한 업체만 남겨두고 다른 업체들을 없애서 독점으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은 이치와 같다. 이 원리가 공공 서비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점을 ‘공공선택론’은 밝히고 있다.

공무원에 영혼이 없다면 이는 자기 생존을 위한 경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