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동성결혼 지지 발언에 美 정치권, 이슈화 회피
오바마 동성결혼 지지 발언에 美 정치권, 이슈화 회피
  • 미래한국
  • 승인 2012.05.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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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국민 과반수 동성결혼 ‘반대’서 ‘찬성’으로 돌아서

1996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간 결합으로 정의하는 결혼보호법안을 서명하기에 앞서 망설였다. 민주당 대통령으로 서명하고 싶지 않았지만 대선을 45일 앞두고 이 법안을 거부하면 당시 국민정서상 선거 패배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1996년에 미국인 68%는 동성결혼을 반대했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결혼보호법안을 서명했다.

하지만 불과 16년이 지난 지금 이 결혼보호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같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동성결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대선을 5개월 가량 남겨놓은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과는 정반대로 동성결혼을 지지한다고 발언한 것이다.

미국인 52%가 합법화 주장

그 사이 동성결혼에 대한 국민정서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 47%는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43%가 반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3월에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52%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갤럽이 지난해 5월에 발표한 여론조사는 미국인 53%가 동성결혼을 이성 간 전통결혼과 동등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갤럽은 1996년부터 동성결혼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이래 미국인 과반수가 동성결혼을 찬성한 것은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그 결과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결혼 지지 발언에 대한 미국인 대다수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일부 동성애자들은 열렬히 환영하고 있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은 맞는 말을 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USA 투데이와 갤럽은 지난 5월 12일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결혼 지지 발언이 유권자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다. 응답자 중 26%는 이 발언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더 찍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13%는 더욱 찍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60%는 이 발언은 자신의 향후 투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가 지난 3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4%는 후보의 동성결혼에 대한 입장이 큰 이슈가 아니라고 답했다. 특히 무소속 유권자의 경우 2/3가 후보의 동성결혼에 대한 입장은 자신들의 표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갤럽이 지난 4월에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경제 일반(32%), 실업·일자리(25%) 등이고 동성결혼은 1% 미만이었다.

동성결혼을 수용하는 사람이 반대하는 사람보다 많고 ‘경제’가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이슈인 상황에서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동성결혼은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닌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결혼 지지 발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공화당의 모습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공화당, 선거 이슈 분산 우려

사실상 공화당 대선후보인 미트 롬니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결혼 발언 직후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간 결합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동성커플들이 아이를 입양하고 가족을 시작하는 권리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고 말한 뒤 동성결혼 보다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을 선거에서 이기는 전략으로 ‘경제’를 삼고 있는 공화당은 동성결혼 이슈가 오래 언급되면 유권자들의 경제에 대한 관심이 분산될 수 있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공화당의 내부 분열도 공화당이 동성결혼 이슈에 조심스러운 접근을 취하는 이유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기초’들 가운데는 성경은 동성결혼을 금지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작은 정부, 감세, 안보 강화 등을 주장하지만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경우 재임 시절 동성결혼을 반대했지만 물러난 후 동성결혼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입장을 180도 바꿨다.

미국 30개 주는 현재 주헌법에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간 결합으로 규정한다는 조항을 넣으며 전통적 결혼을 지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지지한다고 발언한 것은 그만큼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정서가 미국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되고 있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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