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과 민주화
‘돈의 맛’과 민주화
  • 미래한국
  • 승인 2012.06.0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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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우 칼럼니스트

대학생들에게 부자의 기준을 물어보면 3,4억은 순식간에 푼돈이 된다. 신한금융투자가 지난 4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생 384명 중 자산이 10억은 있어야 부자라고 응답한 비율이 34%, 30억은 있어야 부자라고 대답한 비율은 32%였다. 참으로 학생답다. 1,20만원에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부모를 청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차치하더라도, 20대의 스케일이 이렇게도 원대한데 사회의 어디가 위기라는 것인지를 누군가는 설명해야 한다.

학생들의 현실감각만을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700명에게 조사해 본 결과 20.4%는 100억은 있어야 부자라고 대답했다. 앞으로 평생 얼마나 모을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평균 8억이라고 답했다. 쉽게 말해 나는 절대로 부자가 아니며 미래에도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생업 전선에서 상사의 비위를 맞춰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속주머니의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다보니 배포도 작아진 것인가? 허나 자세를 낮춰 대답한 8억조차 결코 만만한 금액은 아니다.

마지막은 노년층이다. 2010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60세 이상 주식투자자수는 78만3,000명. 이는 20~35세 주식투자 인구보다 많은 수치이며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90만 명 넘는 노년층이 100조원에 육박하는 시가총액을 굴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금리와 부동산 불경기가 태생시킨 새로운 경향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면 애널리스트의 조언마저 순하게 감겨드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경제민주화 명목으로 돈 많은 사람 비판

일련의 데이터는 한국인들이 돈과 관련해서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모두가 돈을 뒤쫓지만 누구도 자신을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따라서 추종은 나이와 관계없이 지속된다. 내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 있건 그건 푼돈이고 남의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 있건 그건 떼돈이다.

모든 사람들이 수십 수백억을 아무렇지도 않게 굴리며 살고 있는데 오직 나만이 가난의 질곡 안에 있다는 피해의식이 각 세대의 심층심리에 깊은 주름을 새기고 있다. 허나 1억만 해도 여전히 큰돈이다. 눈에 띄는 부자들이 많아졌다고 해서 돈의 가치마저 줄어든 것은 아니다. 기술의 발달이 예전이라면 모르고 넘어갔을 정보까지 빠짐없이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MB정부는 바로 이 비뚤어진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2007년 박근혜 경선 후보와 접전을 벌이는 시점에서 이미 그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허나 그놈의 7?4?7이 내 통장잔고에 대박을 터뜨려주기만 한다면야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것 아니겠냐는 기대감이 모든 의혹을 뒤덮었다. 모두의 통장에 대박이 터질 리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다는 걸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경제민주화 담론이 재차 탄력을 받고 있는 흐름은 바로 이러한 정황들 때문에 영 탐탁지 못하다. 말이 좋아 헌법 119조 제2항을 들먹이지만 이 담론이 진정으로 정의(正義)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수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의 파생상품시장 거래량은 여전히 세계 1위다. 파생상품이 무엇인가? ‘인생 한 방’의 헛된 꿈이 돈 놓고 돈 먹기로 귀결되는 자본주의의 막장이다. 이 파생상품시장의 성장이 얄궂게도 경제민주화 담론의 활성화와 시점을 같이 하고 있다. 앞에서는 재벌가의 탐욕을 비난하는 주장을 하면서 뒤로는 선물이며 옵션시장을 뒤적거리는 자칭 민주투사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 순서대로 깎아내리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담론에 논리며 체계가 있을 턱이 없다. 삼성에 대한 경제민주화 담론이 바로 그렇다. 요즘 경제민주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삼성에서 이건희 일가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폐암에 걸렸으면 폐를 없애면 되고 심장병에 걸렸으면 심장을 없애면 된다. 냄새가 나면 뚜껑을 덮으면 되고 그 다음은 모르겠다는 식이다.

자본주의는 지속적 성장할 때 존립 가능

이건 경제민주화 담론이 아니다. 이건희가 부자인 건 짜증나는데 갤럭시탭은 계속 쓰고 싶다는 볼멘소리에 헌법 119조는 유린당하고 있다. “그 돈 맛 나도 좀 보자”는 천박한 물욕조차 포장해 줄 수 있는 조항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과 같은 수준에서 경제민주화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돈맛의 민주화’라고 보는 게 맞다. 당장은 힘을 얻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겠지만 결국에는 본인들 스스로의 논리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유폐할 뿐이다.

제65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임상수 감독의 신작 <돈의 맛>은 재벌가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영화 속에는 경제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문제 제기도 없다. 오로지 재벌 일가에 대한 단순하고 악의적인 인상 비평만이 난무하고 있다. 한 마디로 ‘삼성에 달린 악플’ 같은 영화다.

영화는 영화니까 그럴 수 있다. 다만 이 영화의 깊이가 얼추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담론의 깊이와 비슷하다. 출구를 통과하는 관객들의 표정이 밝지 못한 것은 감독이 의도한 불쾌함보다 더욱 무겁게 퇴적하는 ‘의도되지 않은 찜찜함’ 때문일 것이다. 그저 이렇게 욕 한 번 하고 나면 끝인 것인가? ‘그들’의 난감한 표정을 상상하며 통쾌해 하면 되는 것인가?

세상의 어떤 댓글도 본문(main content) 없이 달리는 법은 없다. 경제민주화 담론이 ‘발전적 리플’로 도약하려면 결국에는 거시경제 전반을 품어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단순히 가진 자를 악(惡)으로 지목하고 그것의 타도를 위해 돌진하는 것으로는 동력이 부족하다.

돈을 몹시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누가 누구를 욕할 계제가 못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틀린 욕망을 경제민주화라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할 때가 아니다. 지속적인 성장 없이는 존립이 불가능한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안에서 정의가 자리할 공간과 그 비중은 어느 정도일지를 냉철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이다.

* 필자는 <유니크(YOU NEEd Questions)>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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