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원의 편지 - 교양백년사
이성원의 편지 - 교양백년사
  • 미래한국
  • 승인 2012.06.1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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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없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철학이란 말도 있지만, 교양이란 말도 알듯 하지만 잘 모르는 말이다. 영어에 교양에 해당하는 말이 있는지도 언뜻 생각나지 않는다.

6·25세대의 교양

전란 중 공과대학에도 교양과목이 있었다. 개론 수준이었지만 과목만은 망라돼 있었다. 철학, 사회학, 법학, 독일어, 심지어 국어까지도 들어 있었다. 철학시간에는 당시 유행하던 사르트르 등의 실존철학이 주제였고, 사회학 시간에 들어온 미군 교수는 ‘카네기의 인생처세학’을 읽으면 사회학은 그것으로 족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뒤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와는 별개로 학생들 간에는 철학서적을 탐독하는 기풍이 있었다. 전쟁 중의 극심한 궁핍과 언제 죽음의 전선에 서게 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독서에도 절박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의 교양서적이란 고서점에서 흘러 나온 일본말 헌 책들이었다. ‘이와나미 문고’본, 가와이 도쿄대 교수가 주도하던 ‘학생필독교양서’, 이름난 동서양 고전 등.

“하루를 살더라도 어떻게 하면 인생을 뜻있게 살다 갈 수 있을까.” 이것이 당시 학생들이 간절히 찾아 헤매던 지상 테마였다.

올림픽세대의 교양

한강의 기적이 교양의 기반을 깡그리 앗아갔다. 모든 것이 시장에서의 상품가치로 평가되는 시대에 돈 주고 살 만한 ‘유용성’이 보이지 않는 文史哲 ‘인문학’ 교양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만 것이었다.

어느 사회나 늘 하나의 ‘중심이념’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스시대에는 ‘이데’가, 중세에는 ‘신’이, 문예부흥 이후에는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념을 핵으로 하나의 윤리체계가 성립돼 그 사회를 통합했다.

그러한 1극 이념이 20세기 들어 생의 철학, 실존철학, 신체철학 등의 다극이념으로 갈라지면서 지식인들은 중심축을 잃고 불안 속을 방황하게 됐다. 그 빈 자리를 마르크스가 메웠다. 그는 붕괴된 중심이념 자리에 ‘이성’ 대신 ‘물질’을 갖다 놓고, 이것 하나로 사회 전반을 해석했다.

마르크스의 단순 명료하고 윤리적 체계적인 사상은 사회의 1극 이념에 목말라하던 세계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다. 이것이 20세기 70년 간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가 학문적 인식을 슬그머니 사회혁명의 이념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현실과 괴리된 탁상의 교조적 혁명사상은 모든 마르크스주의 국가를 하나같이 기아와 억압의 지옥으로 만들었고, 마침내는 거대한 굉음을 내며 모두가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동구권의 붕괴였다.

2만달러세대의 교양

6·25세대까지만 해도 ‘덕성을 갖춘 지식인’이 교양인이었다. ‘덕성’이 없는 지식인은 교양인이 아니었고, 한편 ‘지식’이 없는 덕망인은 수양이 된 사람이긴 해도 교양인이라 부르지는 않았다. 그들은 소수의 엘리트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사회 대중을 이끌고 계몽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2만달러세대는 모두가 대졸 지식인이고, 모든 정보가 시시각각 모두에게 일제히 전달되는 정보화 세대다. 21세기에는 교양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교양은 밖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안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내 자신을 위한 교양으로 지정의(知情意)를 갖춘 인격체가 돼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그것이 가족과 이웃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선사할 수 있다는 데에 교양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성원 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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