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의 트로이 목마‘오픈 프라이머리’
선거판의 트로이 목마‘오픈 프라이머리’
  • 미래한국
  • 승인 2012.06.1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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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 친노그룹 미권스의 역선택 방지 못해

2000년 6월 미 연방대법원(US Supreme Court)은 공화당이 제출한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강제성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비당원인 유권자가 모든 정당에 동시에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하는 블랑킷 프라이머리제도를 도입한 직후였다.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의 판결문 요지는 “당원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비당원의 투표권 행사는 당원들의 정당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당원 의사가 존중되지 않는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한 찬반 논란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완전국민경선, 즉 오픈 프라이머리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다. 김문수, 이재오, 정몽준 등 새누리당의 비박(非朴) 진영 대선후보들은 최근 새누리당이 완전국민경선제도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경선에 대한 보이콧을 시사하는 발언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경우 11일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가 같은 날 동시에 중앙선관위 관리 하에 국민경선을 치르면 우리 선거문화의 획기적인 개혁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경선을 반대하며) 오만하고 수구적 입장인 박근혜 전 대표와 당 지도부에게 엄중 경고한다. 이래서는 국민과 역사의 버림을 받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재오 의원 역시 “경선 룰 변경이 없다면 후보등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친박 진영의 반대 의사는 확고하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주장에 대해 9일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 실시 여부에 대해 사실 지도부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는 여야가 머릴 맞대고 논의할 사항이지 우리 당에서만 결정할 사항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특히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게 된다면) 그에 따른 결함은 무엇이고 비용과 역선택 방지, 관리 소홀에 따른 실수 등에 따른 방지책을 논의하면서 안전하게 해야지 막상 대선후보 결정을 소홀히 했다가는 나중에 당의 존재 자체를 논하는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이같이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편이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려면 그 공정성과 공영성에서 중앙선관위의 관리가 필요한데 선거법 개정을 고려하면 대선 일정상 ‘시간을 놓쳤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외하고라도 본질적으로 오픈 프라이머리의 위헌성 여부를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황성돈 한국외대 행정학과 교수는 "어떤 선거제도로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는 국회의원이 의원 입법으로 개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국민이 선택할 몫"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이에 대한 결정은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정치권이 주도할 문제가 아니다. 정략적 필요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은 더욱 안 된다"며 "미국도 어느 주에서는 폐쇄형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고, 어느 주에서는 개방형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는데 이와 관련한 결정은 주 선거를 통해 결정한 다음 실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선거학회장인 김욱 배재대 교수는 당원 의사를 희석시키는 비민주성을 지적한다. 김 교수는“정당이 후보를 결정하는 데는 당원들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해야 하는데 일반 국민과 똑같이 당의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것은 정당 정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면서“시기적으로도 선거 바로 전에 룰을 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도 “현재 준비도 안 돼 있는 데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원칙적으로 정당정치를 약화시키는 제도이고 어떤 형태로든 민심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면서“현실 가능성보다는 원칙적인 문제를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한 미국의 운영은 어떨까. 우선 미국의 선거는 대통령 선거까지도 미 연방 정부가 아니라, 각 주(State)가 주체가 돼 독자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주(州)마다 선거법이 다르고, 선거관리방식도 다르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선거제도는‘이렇다’라고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미국의 각 주는 중요 선출직 선거에서 민주당의 경우 (워싱턴 DC 포함) 25개 주가 ‘열린 프라이머리’(Open Primary)를 채택하고 있고, 12개주는 ‘닫힌 프라이머리’(Close primary, 당원 경선제)를 채택한다. 14개 주는 ‘코커스’(Caucus, 당의 대의원들이 후보 선출) 제도이다. 공화당은 22개 주가 ‘열린 프라이머리’, 11개 주가 ‘닫힌 프라이머리’, 그리고 14개 주가 ‘코커스’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물론 양당 모두 당원들의 뜻을 존중해서 시행한다.

문제는 오픈 프라이머리의 경우 각 후보 진영에서 지지자들을 동원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이 동원된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최근 공화당의 롬니 후보와 민주당에서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은 각각 우리 돈 1조원대의 선거자금을 마련해 놓은 것으로 알려진다.

선거자금 모금과 지출에 상한선이 없는 미국으로서는 이 오픈 프라이머리가 중요한 흥행 이벤트가 된다. 흔히 우리에게는 ‘역선택’이라고 알려진 파티 레이딩(Party raiding)을 통해 각 정당의 외곽 지원단체들은 상대 당의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가해 가장 취약한 후보에게 투표함으로써 교란을 일으킨다. 이러한 결과 오픈 프라이머리 시행 후 미국 양당의 당원투표율이 실제로 30% 가까이 하락했다는 실증적 통계 보고마저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역선택의 문제는 없을까. 그 답은 최근의 민주당 대표 선거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반 여론상으로 앞서 있던 김한길 후보는 막판에 위기의식을 느낀 친노세력의 모바일 경선 투표에 의해 근소한 차이로 이해찬 후보에게 패했다. 정봉주 팬클럽이라는 미권스의 회원은 전국에 약 20만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민주당의 막판 모바일 경선에서는 하루만에 약 8만명이 경선에 등록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시행했을 때 상황은 어느 정도 예상된다. 민주노총, 전농, 전교조, 한대련을 비롯해 전국 풀뿌리 조직을 갖추고 있는 좌파 운동단체가 새누리당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거 참여할 것이고 그 수는 현재로서는 추정하기 어렵지만 친노세력이 집결할 경우 투표장에서 새누리당 당원보다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문제는 부정선거 시비다.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각 후보 진영들이 무리하게 유권자를 동원하는 과정에서 금품살포, 중복투표 등의 시비가 벌어질 것은 분명하다. 누가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등극하더라도 종북세력과 야당, 특히 극좌세력의 언노련이 주도하는 언론, 방송의 공격에 의해 새누리당 후보의 정당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새누리당이 이러한 공격에 약한 웰빙 집권 여당이라는 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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