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뷰] 소련에서 본 한국전쟁
[월드뷰] 소련에서 본 한국전쟁
  • 미래한국
  • 승인 2012.06.2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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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작은 3차 세계대전’이었다

황성준 본지 편집위원이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입수한 러시아 국영 RTV의 ‘한국전쟁’ 다큐멘터리 필름의 내용과 소련 참전 군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 월간조선(95년 8월호)에 게재된 바 있다. 당시 소련군이 6·25 작전계획을 수립해줬고 소련 공군이 중국 공군으로 위장해 한국전에 참전한 사실이 증언으로 밝혀졌다. 또한 소련이 미군의 세균전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 북한 주재 소련대사의 오보에서 비롯됐음이 드러났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러시아 국영 RTV의 ‘알려지지 않은 전쟁들’ 제3탄 ‘한국전쟁’은 소련 국방성 비밀자료와 한국전쟁 참가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다. 이 필름은 한국전쟁이 남북한 간의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종래의 시각이 아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사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에서의 미니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개입 종용한 스탈린

50년 4월 8일 김일성이 박헌영과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 스탈린과 남침 계획을 논의했으며 50년 중공군의 개입도 스탈린과의 협의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증언하고 있다. 소련 군사고문단이 남침작전 계획을 직접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소련 군사고문단이 훈련용 작전계획서를 짜 줬으며 이것을 이용, 남침계획이 작성됐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또 테렌티이 쉬트코프 당시 북한주재 소련대사가 50년 1월 19일 스탈린에게 보낸 보고서 내용이 나온다.

“북한주재 중국대사관에서 모임이 있었다. 그때 김일성이 나에게 ‘중국 해방이 완수됐다. 이제 조선 해방이 이뤄질 차례다’라고 말했다. 이에 나는 반드시 스탈린을 찾아가서 남조선 해방을 위한 침공을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라고 대답했다.”

중국의 군사적 원조는 스탈린의 계획에 따라 이미 전쟁 전에 준비되고 있었다. 스탈린은 북한 단독 작전이 실패할 경우 중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쟁 발발 전부터 고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탈린에 대한 남침작전계획 최종 보고는 50년 5월 말 북한군 총참모부와 소련 군사고문단이 공동으로 보고함으로써 이뤄졌다.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스탈린에게 항공지원을 요구했다는 것. 특히 압록강 다리와 수풍댐 수호를 위해서는 소련 공군이 참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중국은 요구했다. 이에 50년 11월 8일 소련 공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196 전투항공연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페페 라에프(당시 중령)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우리는 소련군임을 나타내는 모든 표식을 제거한 채 중국 땅으로 이동했다. 미국 조종사와 겨뤄본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소련 공군의 참전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중국기를 단 전투기를 타고 작전했으며 또 비행 중 러시아어로의 교신이 금지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 포로로 잡힐 위험에 대비, 미군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는 해상이나 전선으로부터 100km 지역으로의 비행이 엄격히 제한됐었다고 필름은 전한다.

한국전쟁을 둘러싼 쟁점 중의 하나는 미군이 세균전을 벌였는가에 대한 여부다. 북한을 비롯한 공산진영은 계속 이 문제를 제기, 자유진영의 도덕성을 해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 필름에서 세균전설이 조작된 것임이 드러났다.

당시 북한 고문이었던 소지노프는 “한국전쟁 당시 이상한 갑충류 벌레가 발견됐다. 그래서 대대적인 방역작업을 실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군에 의해 투하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증언했다. 또 당시 북한군 군의담당 고문이었던 세리바노프도 “아마 중국군이 옮겨온 것으로 파악된다”며 미군의 세균전설을 부인했다.

소련 공군, 중국 전투기로 위장 참전

세리바노프에 의하면 당시 북한주재 소련 대사 겸 제1군사고문이었던 블라디미르 라주바에프가 미군이 세균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자 즉각 대대적인 세균전 반대 캠페인이 전개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진상조사에 나섰으나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로 판명됐다. 그가 이러한 사실을 발표하자 라주바에프는 해임된 뒤 감옥에 가게 된다.

이 필름은 소련군이 한국전쟁에서 299명이 전사자를 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한국전에 참전한 에브게니 페페라에프 제196전투비행연대장의 증언과 소련 국방부 비밀문서에 의하면 소련 공군이 335대의 비행기를 잃었다고 한다. 결국 소련이 한국전쟁의 주요 당사자였다는 것이다.

인터뷰│발렌틴 소지노프 북한 총참모부 소련 군사고문·퇴역대장


“소련 고문단이 군사공격 계획 작성”

- 북한군의 남침계획을 소련 군사고문단이 작성했다는 말이 있는데
소련 군사고문단이 훈련용 군사공격 계획을 작성해 주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이 침공계획을 세웠을 가능성도 크다. 사전에 수립된 군사작전 계획은 서울 점령에 한정돼 있었던 것 같다.

- 서울만 점령하면 남쪽의 좌익이 봉기해서 모든 것이 쉽게 끝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을까?

초기 작전 중 서울에서 시간을 지체했다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군사적 오류였다는 사실을 말씀드릴 수 있다.

- 소련 공군의 한국전 참전에 대해 얘기한다면

미군은 중국군이 넘어오는 압록강 다리를 끊으려 했다. 북한 공군은 미군 개입과 거의 동시에 전멸했다. 중국 공군도 미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련 공군이 직접 참전했다. 그러나 그 작전은 청천강 이북 지역에서 주요 시설을 미 공군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에 한정됐다.

인터뷰│이골 세리바노프 의료담당 고문·군의관·소장

“미군의 세균전설은 소련의 조작”

- 세균전설이 소련에 의한 조작이라고 했다고 하던데…

당시 모스크바 당국은 라주마에프 북한주재 대사에게 미군의 야만성을 폭로할 자료를 찾으라고 계속 다그쳤다. 그때 전염병이 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 보고를 들은 미군이 세균전을 벌이고 있다고 모스크바에 보고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미군의 세균전설의 진상이다. 그래서 제가 직접 조사해봤는데 근거 없는 이야기였다.

- 미군 폭격이 심했을 텐데 의약품 보급이 순조로울 수 있었나?

소련 영토에서 북한 영토로 통하는 지역에서는 원자탄에 대비해 만든 정도로 튼튼한 지하통로가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의약품 보급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 문제만큼은 제 담당이어서 정확히 안다.

인터뷰│에브게니 페페라에프 소련 196전투비행연대장

“335대 소련기 격추 당해”

- 한국전쟁에는 언제 참전했는가

1950년 10월경 한국전쟁에 참가하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해왔다. 기꺼이 동의했다. 그래서 중국으로 이동했다. 첫 출전은 51년 4월 1일로 기억한다. 당시 저는 소련 공군 중령으로서 196전투비행연대장이었다. 1097대의 미공군기를 격추시켰고 아군기는 335대 격추당했다.

- 얼마나 되는 소련 공군이 참전했는가

부대와 대원의 이동이 심했을 뿐더러 모든 것이 극비에 부쳐져 있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개 항공사단이 고정 배치돼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항공사단은 3개 항공연대로 구성되는데 제가 근무한 항공사단은 2개 연대로 구성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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