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봄의 법칙으로 이룬 기적의 행보
바라봄의 법칙으로 이룬 기적의 행보
  • 미래한국
  • 승인 2012.06.2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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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가 뛴다] 주대준 카이스트 부총장

주대준 카이스트 부총장의 저서 <바라봄의 기적>이 지난 3월 출간 즉시 기독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08년에 발간해 30쇄를 돌파한 스테디셀러 <바라봄의 법칙>의 후속작이다. ‘바라봄의 법칙’과 ‘바라봄의 기적’은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말씀에서 비롯된 제목이다.

차관급인 청와대 경호차장을 끝으로 2008년 12월 33년간의 공직에서 은퇴한 뒤 카이스트로 자리를 옮긴 주대준 부총장의 삶의 궤적을 보면 ‘바라봄의 기적’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는 청와대에서 공직생활을 할 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있었다”고 회고했다. 여기서 ‘말도 안 되는’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설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이라는 의미다.

 

청와대 경호실 최초의 정년 퇴임

“1989년에 4급 서기관인 전산프로그램 팀장으로 정보화(전산)의 불모지였던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전산프로그램 팀장이 최고로 오를 수 있는 자리는 부이사관급인 전산실장입니다. 대개 전산실장을 거치면 청와대를 나가 다른 자리로 가죠.

근데 제가 전산실장 임기를 마치고 퇴직할 즈음에 전산실과 통신처가 통합이 됐고, 제가 정보통신처 기술심의관으로 발령을 받았어요. 당시 통신처에서 수십년 동안 근무했던 같은 직급(부이사관)의 통신전문가들이 수명이 있었는데 그들과 경쟁해 제가 정보통신처장이 된 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청와대 시스템을 아는 분들은 이러한 일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 겁니다.”

정보통신처장은 대통령 국정지휘통신망을 포함한 청와대 정보통신을 총괄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보직이다. 2005년 부산 해운대(벡스코)에서 있었던 2005년 아시아태평양국제정상회의(APEC)를 끝으로 정보통신처장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그런데 또다시 청와대 내 조직기구 구조조정을 하면서 이번에는 정보통신처와 행정처가 통합해 ‘행정본부’로 조직이 개편됐다.

“조직 명칭도 정보통신은 행정에 흡수돼 ‘행정본부’로 개편됐습니다. 정보통신처는 행정처의 절반 수준에 해당하는 인원수에 기능면에서도 훨씬 적은 조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시 행정본부장으로 승진 임명받은 것은 정말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행정본부장 직책은 청와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총괄해 살림을 사는 자리입니다. 청와대 뒷산의 수목관리부터 연못 속의 물고기 관리, 청와대 각 건물의 온냉방 시설관리, 소방안전, 전기관리, 구매, 인사 행정을 총괄하는 업무죠.”

이후 전산프로그램 출신이 경호차장으로 승진한 것이야말로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하나님의 절묘한 작품’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더 이해가 안 되는 사안은 그가 정권이 바뀐 뒤에도 2개 정부에 걸쳐 경호차장 자리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색깔은 극과 극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경호차장을 이명박 대통령이 그대로 안고 갔다는 건 경호실 50년 역사에 없었던 특이한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바뀌면 처장(본부장)급 이상 고위간부는 100% 교체됐고, 중간간부(부장급)들도 3분의 1 정도는 나가는 게 경호실 조직의 생리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다음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의 최종 방점은 청와대에서 공무원으로서 최초로 정년을 맞았다는 데 있다. 그는 청와대 경호직능 공무원 연령정년(만 55세) 최초로 정년퇴임한 인물이다. 그간의 경호실 간부들은 대개 본부장급 정도에서 청와대를 떠났기 때문이다. 전산전문가가 경호차장을 맡은 비결은 IT강국이라는 배경에 있다. 그는 청와대 업무를 자동화 개발하면서, 경호시스템을 IT 기반의 유비쿼터스 경호시스템으로 기존의 힘의 논리에 의한 통제위주의 경호시스템을 과학화함으로써 경호의 패러다임을 바꾼 장본인이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 때 청와대에 들어가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5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33년의 공직생활 가운데 20년을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에 대해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야고보서 1장 5절의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는 말씀을 붙잡고 아침마다 지혜를 간구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면 주십니다. 다른 비결은 없어요.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요셉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꿈

경남 산청군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거제도로 이사를 가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있을 때 동네 아주머니의 인도로 교회에 나가게 됐다. 얼마 후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과 고아원을 떠돌면서도 주일학교에서 배운 요셉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품고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주경야독하며 대구성광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학과에서 정보처리(MIS) 공부를 하면서 컴퓨터와 인연을 맺어 국방부 전산장교로 근무하게 됐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인 그는 청와대 근무를 시작하면서, 청와대에 근무하는 공직자가 대통령과 국가안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기본 임무라는 생각으로 건국 이후 최초로 청와대 안에 ‘청와대기독신우회’를 창립했다. 6공 당시 신우회 조직하는 일로 눈총을 많이 받았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크리스천들을 만나 “청와대 선교를 감당하자”고 독려했을 때 소극적이거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강하게 반대하는 공직자들도 있었다. 1991년 청와대기독신우회를 공식적으로 창립한 이후 4년 내내 청와대 주변 교회와 식당을 돌며 50여명이 예배를 드렸다. 문민정부 2기 때 고위직 크리스천들이 대거 입성하면서 처음으로 청와대 내에서 예배드리던 날 신우회원들이 절반만 참석했다.

그 예배에 김광일 비서실장이 참석하면서 이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1997년 신우회 창립기념 예배에 조용기 목사를 초청했을 때 500여명이 모였다. 그해 입법 사법 행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100만 공직자 선교를 위한 ‘한국기독공직자선교연합회’ 창립도 주도해 공직자 선교사역을 위해서도 열심히 뛰었다.

“과도한 종교활동으로 인해 승진, 임명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다” “종교활동을 계속할 거면 사표를 쓰라”는 말을 들을 때도 그는 공직자로서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면서 크리스천으로서 선교사명에도 생명을 건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했다. 그는 청와대에 근무하는 동안 매일 아침 ‘국가안보와 국정을 책임진 지도자를 위한 기도’와 주간기도회, 월례예배를 드렸다.

청와대에서 신우회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IT전문가로서 자기가 맡은 업무를 발전시키고 확고한 실적을 거두었기에 가능했다. 청와대 업무 자동화 프로그램, 정보통신시설 디지털화, 국정지휘 통신망 첨단화 및 도감청 대비시스템 개발, 경호 시스템 과학화 등이 다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다섯 명의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주대준 부총장은 IT 관점에서 설명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전산망조정위원회’를 설립해 대한민국 정보화 발전 기반을 구축했고 노태우 대통령 때 전산실을 창설해서 제가 프로그램 개발팀장으로 들어간 겁니다. 그 전까지 청와대는 정보화의 불모지였습니다. 일반 기업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었죠. 김영삼 대통령 때 전자정부의 초석을 놓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으로 발전하는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동화를 이뤄 과도기를 성장기로 끌어올린 장본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보와 통신을 아우르는 융합(컨버전스)시대로 글로벌 정보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방송 통신 융합과, 지식경제와 산업의 융합이라는 틀을 놨습니다.”

그 중에서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오늘날 전자정부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세계 1위 전자정부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은 IMF 때 전국에 광케이블을 깔아 브로드밴드 기반 구축을 했습니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과 도시락을 먹으면서 그들을 설득해서 IT에 투자를 한 대통령입니다. 힘든 시기지만 국가정보화가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었죠. 김 대통령은 신지식인과 벤처 창업자를 많이 독려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IT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임기 시작 몇 주 후에 당시 정보통신처장이었던 그를 불렀다. 대통령이 처장을 독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청와대 내 주요 국정자료나 국가통치권자의 정보 관리가 전혀 자동화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시스템으로는 정부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어려움을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을 하며 ‘e-지원시스템’ 개발을 직접 구상하셨습니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의 자동화 전산화 정보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청와대 전산시스템 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선진국에서도 대한민국 전자정부를 세계 1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근무를 끝낸 그는 카이스트 전산학과(사이버보안) 교수로 부임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NPS에서 전산시스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청와대 재직 중에 카이스트에서 ‘신종, 변종 해킹 탐지기법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아들 은광 씨도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입학해 ‘카이스트 개교 30년 역사상 처음으로 부자가 함께 카이스트에서 공부한 사례’로 언론에 널리 소개됐다. 그는 카이스트 부임 7개월 만에 대외협력부총장에 발탁됐다.

“최고의 대학이라는 카이스트도 사이버보안 관련은 취약한 상황이었어요. 사이버보안 연구센터를 설립해 최고의 사이버보안 요원들을 교육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임 1년 만에 세계 최초로 악성코드(해킹 프로그램) 사전 탐지 신기술을 개발했고, 이 기술을 일본에 수출했다. 정보보호대학을 실무위주의 연구시스템으로 개선하고 ‘카이스트S+컨버전스’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한 일도 그가 주도했다.

IT 전문가 중에는 해킹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사전 탐지 신기술’을 개발한 카이스트 사이버보안연구센터 기술력을 사후치료 프로그램(V3)를 개발한 안철수연구소보다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안철수연구소에서 개발한 V3 백신프로그램으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사이버 해킹사고에 국가차원에 기여도가 높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에 익숙한 기술개발에 취중하다 보니, 글로벌 경쟁력 면에서는 다소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기여도는 절대적입니다. V3가 없었다면 많은 피해를 봤겠지요.”

지난해 농협 전산망이 마비되고 얼마 전 북한이 GPS 신호를 교란한 사건 등을 지켜본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은 실정이다. 주대준 부총장은 “말을 다할 수는 없지만 막을 수 있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신 체계적인 사이버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사이버 위기는 단순히 기존의 수사기관을 확대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사이버는 육상전, 해상전, 공중전, 우주전에 이은 제5의 전쟁터입니다. 새로운 사이버세계에 맞는 법적 제도의 틀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 대응을 치밀하게 해야 합니다.”

사이버보안청 설립 시급

주대준 부총장은 물리적 테러는 크게 생각하면서도 사이버 테러는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의 풍토를 개탄했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는 기억하면서 1·25인터넷대란은 다들 기억을 못합니다. 2003년에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해 3조5000억 원의 피해를 입혔는데 그해 1월 25일 인터넷망이 마비되면서 간접피해를 포함해 7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습니다. 역시 태풍 매미는 기억하지만 1·25 대란은 모릅니다. 과거 초창기부터 눈에 보이는 컴퓨터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소프트웨어는 공짜로 썼잖아요. 사이버세계의 특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반 국민은 물론 고위층도 모릅니다. 국가적으로 제도적인 틀을 만들고 총체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대준 부총장은 정치권이 사이버 문제에 무심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오늘날 사이버 위기 시대에 법적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이 시점에 “비례대표를 포함해 국회의원 중에 사이버 전문가가 한 명 없습니다. 연말에 선출될 새 대통령과 내년에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는 국가 사이버 대응태세를 완벽하게 갖춘 사이버보안청을 만들길 기대합니다. 국민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합니다. 사이버보안청이 생기면 전문가들을 필요한 곳에 파견할 수 있겠지요. 청와대에 최고의 전문가가 들어가서 국가 사이버 안보를 강화해야 합니다.”

바쁜 가운데도 월드비전, 다일공동체, 푸르메재단 등 소외된 이들을 돕는 여러 단체와 여러 기독교 단체에서 봉사하는 그가 요즘 바라보는 목표는 청와대 앞에 선교센터를 짓는 일이다. 책을 판매해서 벌어들인 인세로 부지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청와대 시설을 종교시설로 사용한다는 눈치를 보지 않고, “청와대에 근무하는 크리스천 공직자들과 인근에 근무하는 군부대 장병들이 24시간 아무 때나 들러서 마음껏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후반부 인생의 사명을 ‘대한민국을 사이버안보 최강국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며 그 일을 위해 현재 카이스트에 정보보호대학원을 정규인가 받아 설립해 세계 최고의 사이버보안 인재 양성을 위해 석·박사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이버보안센터장으로서 세계적인 신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라봄의 법칙으로 업무에서도 신앙에서도 계속 기적을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진정한 목표이다.

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사진/은재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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