保守의 스포츠學
保守의 스포츠學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2.07.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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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편집인

스포츠는 보수(保守)적이다. ‘순수한 스포츠’를 정치이념화하지 말라는 항변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항변이야말로 ‘정치적’일 수 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스포츠의 핵심은 경쟁이다. 스포츠는 공정한 경쟁, 페어플레이를 통해 상대방에게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역사적 관례나 규칙에 의해 정해진 동등한 환경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예측불허의 싸움을 펼치는 것이 스포츠의 미학이자 본질인 것이다.

스포츠에서 승리와 성공은 정직하다. 우연적 요소는 최소화되고, 엄정한 기록과 점수가 승패를 결정한다. 선수들은 최종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경기장에서 뿐 아니라 일상의 ‘삶의 게임’에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하루하루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펼쳐간다. 완전경쟁의 극한을 보여주는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은 정치적 협상과 배려에 의해 ‘배분’되거나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실력을 갖춘 각 종목 단 한명의 영웅이 스스로 획득하는 영예의 면류관이다.

운동선수 중에 우파가 많고 연예인이나 예술가 중엔 좌파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의 경우, ‘메이저리그 우파, 헐리우드 좌파’가 상식에 속한다. 운동선수들이 ‘단순’하고 배우나 예술가들이 ‘심오’해서가 아니다. 기록 또는 눈앞의 상대와 싸워야 하는 운동선수의 승패는 대체로 정직하고 객관적이지만, 대중의 취향과 감성에 어필해야 하는 예술가의 성공과 실패는 주관적이며 ‘행운’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적으로 보면, 스포츠는 민주주의 발전과 국력과시, 사회통합과 의사소통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올림픽이 정치와 이념을 뛰어넘는 전세계인의 스포츠 대제전이라고 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국가대표’들을 내보내 체제선전과 국위선양에 기여하도록 한다. 굳이 나치정권의 선전장이 된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부정적 예를 들지 않더라도, 88서울올림픽과 2008베이징올림픽은 양국의 국가발전과 국위선양에 결정적 공헌을 했던 절호의 기회였다.

스포츠는 국민성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프랑스의 쿠베르탱이 근대올림픽을 창시한 애초의 동기도 이러한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는 강력한 대영제국의 동인을 스포츠 중심의 19세기 영국공립학교 교육에서 찾고 부러워했던 것이다.

오늘날 미국 등 선진국일수록 프로스포츠뿐 아니라 아마추어 생활스포츠가 크게 활성화돼 있다. 스포츠는 건강한 보수우파적 가치를 함양한다. 스포츠에선 노력과 결실이 비례한다. 스포츠맨십 안에는 관념적 이상주의나 평등주의, 허무주의 등이 깃들 자리가 없다.

한편 좌파진영이 볼 때 국가스포츠는 왠지 거북하다. 애써 국가주의나 국수주의와 결부시키기도 한다. 지난 김대중-노무현정권 10년간 대한민국 정부에서 체육부가 사라졌던 것도 연관이 없지 않을 것이다.

런던올림픽이 곧 개막되면 태극기와 애국가가 전 세계에 나부끼고 울려퍼질 것이다. ‘대한민국’에 진저리를 치는 적지않은 이들에겐 악몽의 여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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