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경쟁의 미학, 우리는 올림픽을 기다린다!
극한 경쟁의 미학, 우리는 올림픽을 기다린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7.0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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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장원재 문화평론가

할리우드에는 좌파가 많고 메이저리그에는 우파가 많다. 사실인가? 사실이다. 왜? 예술과 스포츠가 갖는 속성 때문이다.

이 둘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쌍생아다. 둘 다,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활동이지만, 현대사회의 주요한 제도 가운데 하나로 산업화에 성공했다.

재능이 뛰어난 개인이 부와 명예를 독점하는 승자독식구조(winner take all)라는 점도 같다. 궁극적으로는 대중들이 판관 역할을 수행하는 대중의사결정 시장이라는 점도 동일하다.

‘뛰어난 개인’이라는 것도, 바로 아랫단계의 재능과 비교하면 아주 미세한 차이를 보일 뿐이지만, 이 ‘아주 미세한 차이’에 거액을 지불하는 고객이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예술과 스포츠는 서로 닮았다. 하지만 승자가 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 이 둘을 좌우로 가른다.

할리우드 좌파와 메이저리그 우파

예술도 스포츠처럼 예술가로서의 재능이나 자질, 그리고 작품으로 드러나는 결과에서 일류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일류들 사이에서 승자를 결정하는 제1요인은 ‘대중의 취향’이다. 비운의 천재, 저주받은 걸작,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 같은 표현은 예술적 완성도를 극한으로 끌어 올렸으되 당대의 취향과 어긋나 부당하게 잊혀진 작품들에 바치는 후대의 찬사다.

시대의 흐름 자체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본인의 예술적 기호와 대중의 취향을 일치시킬 수 있는 작가는 없다. 예술은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단기간에 U턴 할 수도 없는 분야다.

조각가가 어느 날 갑자기 영화감독이 되거나 시인이 건축가가 되는 일은, 농구선수가 야구로 전향하고 마라토너가 유도선수로 종목을 바꾸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을 터이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당대의 예술적 승자를 결정하는 궁극적 기준으로 ‘행운’을 꼽는다. ‘취향’이나 ‘행운’은 객관적 측정과 예측이 불가능한 잣대다. 바로 여기가 예술가들의 좌파적 성향이 태동하는 지점이다.

승자는 승자대로, 자기의 뛰어난 재능을 한참이 지나서야 ‘뒤늦게’ 발견해 준 대중과 사회를 원망한다. 어쩌면, 대중의 취향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걸 모르지 않기에, 언제 어느 순간 하루아침에 잊혀진 존재가 될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더욱더 왼편으로 몰아가는지도 모른다.

패자는 패자대로,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고 느낀다. 왜 하필이면 내가 아니고 저 친구인가. 내가 저 친구보다 못한 점이 무엇인가.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독특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존재에게 사회는 이 정도 대우밖에 하지 못하는가…

기실, 예술은 유연하고 기발한 사람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분야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삐딱하게 비칠 수도 있는. 예술(art)의 반대가 자연(nature)라고 한다면, 예술은 인공적인 요소가 가미된 모든 것의 총칭이다.

농업, 길 닦기, 뜀박질 등 인류의 모든 행위가 바로 ‘아트’다. 이토록 무수히 많은 ‘아트’ 가운데서 주목을 받으려면, 다시 말해 직업적 예술가의 경지로 뛰어 오르려면,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극한까지 자기의 아이디어와 재능을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껏 존재한 적이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직업적 예술가들의 존재 이유라는 뜻이다. 파괴 없이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따라서, ‘생산비용’이라는 요소의 고려 없이,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생각과 행위와 아이디어의 극한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투입(in-put)없이 산출(out-put)이 있을 수 없다는 원리에 따르면, 예술품 제작에 들어간 생산비용은 예술가의 생애 자체다. 평생을 걸고 매진한 결과가 우연적 요소에 의해 판가름난다는 것. 여기에 예술가들이 구조적으로 좌편향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스포츠 무한경쟁의 진정성

그렇다면 스포츠는? 스포츠의 기본 뼈대는 ‘경쟁’과 ‘객관’이다. 재능 있는 개인이 생애를 걸고 노력하면 그에 상응한 보상이 따른다는 구조는 예술과 스포츠 사이에 차이가 없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고 부상이나 사고가 재능 있는 선수의 앞길을 막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에 비하면 스포츠는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에 우연적 요소가 개입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것이 핵심이다.

수영, 양궁, 사격, 육상 등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기록’으로 평가한다. ‘기록’은 선수 본인은 물론, 코치 관중 기타 모든 사람들이 곧바로 납득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데이터다. 무시무시할 만큼 엄정하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준인 셈이다.

구기 종목의 경우, 스코어가 기록을 대신한다. 오죽하면 프로야구단은 거의 매일 주주총회를 여는 기업과 같다는 이야기가 나돌겠는가. 프로구단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경기력이다. 매일 경기를 치르다보면 관중들과 미디어에게 각 구단의 실력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피해갈래야 피해갈 길이 없는 것이다.

스코어 이외에도, 구기종목 역시 수많은 ‘기록’을 챙긴다. 야구의 경우, 관중들을 매혹시키는 건 개인 타율, 시즌 최다승, 역대 홈런 순위 같은 ‘기록’이다.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가 모두 자료가 돼 흔적을 남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등위가 아니라 기록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모든 스포츠 선수들의 경쟁 상대는 종횡으로 늘어난다.

‘기록’은 역사다.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눈앞의 상대만이 아니라, 역대 모든 선수들의 업적, 즉 ‘역사’가 선수들의 경쟁상대로 화한다는 이야기다.

업적을 평가하는 ‘객관적 잣대’가 이러한 무한 경쟁의 진정성을 보증한다. 예술사를 관통하는 객관적 혹은 객관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은 유감스럽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존재할 가능성이 없을 터이다. 일류의 지위로 나아가지 못한 사람이 발생하는 건 예술이나 스포츠에 차이가 없지만, U턴이 어렵다는 것도 공통이지만, 스포츠의 세계에서 패자들이 품는 억울한 감정의 총량은 예술계의 그것에 비해 극소량에 지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좌파 선동의 순환고리, 예술+인터넷+매체

많은 분들이 한국 사회의 좌경화를 걱정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좌경화한 이면에 예술을 통한 프로파간다가 막대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개탄한다. 좌경화의 부정적 측면,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조자구(自助自救) 보다는 사회적 부조에 기대며 공적 질서를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한 것이 예술적 선동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가 부분적으로는 진실일 수도 있다. 예술은 인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 정서적 영향을 끼쳐 내면의 본질을 바꾸는 힘이 있다.

공자(孔子)도 일찍이 감성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시어흥 입어례 성어악(詩於興 立於禮 成於樂)’이라는 <논어(論語)>의 구절을 파고들어 보자. 공자는 당대의 구전가요 300여 수를 모아 <시경(詩經)>을 편찬했다.

공자가 말하는 ‘시’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상태를 채집한 ‘느낌의 표본’이다.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감정상태의 폭은 무변광대(無邊廣大)가 아니다. 그렇다고, 미지의 영역을 넓게 남겨두고서는 군자(君子)의 도를 행하기 어려우니, 공자는 시를 통해 다양한 감정상태를 간접체험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란 감성을 다잡는 절차다. 흥이 올랐다 해도 어떤 절차 속으로 들어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흥겨움과 예절의 정반합(正反合)적 결과물이 바로 ‘음악’이다. 음악은 음계(音階)를 바탕으로 성립한다. 음계 사이의 간격이 바로 예술적 질서를 만든다.

음악은 질서와 절차, 즉 ‘예’를 통해 ‘흥’으로 나아가는 방법론이다. 흥겨움에 일어나고 예로써 이를 다잡고 음악으로 이를 완성하라는 이야기는 그러므로 ‘정서적’ 반응이 인간 문명의 근간을 이룬다는 통찰은 혹시 아닐는지.

그렇다. 어떤 느낌에 감화돼 감성적으로 돌아선 사람을 이성적으로 설득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인간은 이성(理性)보다는 감성으로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인간 본능에 내장된 DNA의 본질이다. 이성은 훈련과 교육을 통해 다다르는 인위적 경지지만, 감성은 그 자체로 타고나는 본디상태다.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은 그래서 무섭다.

예술의 작동원리는 휴머니즘과 동정심(pity)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상태가 국가나 사회의 기본 작동원리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일부 극소수 예술가들은 예술적 작동원리와 정치적 사회적 작동원리를 고의로 뒤섞는다. 다른 사회의 가장 좋은 점과 우리 사회의 가장 나쁜 점만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비교하는 놀라운 선별력을 보이기도 한다.

데모꾼 중에도 주동자, 적극가담자, 단순가담자가 있듯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는 예술가들도 여러 층위가 있다. 문제는, 이들이 지닌 동기의 농도와 상관없이 예술이 때로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양분으로 작동한다는 데 있다.

게다가, 현대사회의 미디어 환경이 정치적 의도를 가진 예술가들에게 이로운 환경을 제공한다는 사실도 고려의 대상이다. 인터넷은 예술적 결과물을 싼 값에 널리 퍼뜨리는 유통망으로 기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정치세력은 예술가-인터넷 사용자-인터넷 매체-오프라인 매체-예술가…로 이어지는 순환고리를 장악했다. 한 가지 생산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선전해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사회적 구조를 완성했다는 뜻이다.

인터넷은 특정세대와 기계친화적 사용자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이며 따라서 인터넷 상의 여론은 그만큼 왜곡된(bias) 의견이라는 것이 실체적 진실이지만, ‘첨단’이며 ‘목소리가 크고’ ‘실시간으로 반응’한다는 역동성이 인터넷 신화를 증폭시킨다.

본질적으로 좌편향일 수밖에 없는 예술에 이어 인터넷 공간까지 점령당하면, 이 둘 사이의 시너지가 극대화하면, 대중들의 감성이 어느 한 편으로 기우는 건 순식간일 터이다.

다양한 가치와 의견이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되는 것이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보다 나은 사회라고 믿는다면, 현실을 개탄하기 전에 다양한 가치가 유통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왜 스포츠인가

그래서 스포츠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가 지닌 선기능을 활용하자는 이야기다. 건실한 사회는 롤모델, 다시 말해 영웅이 주기적으로 출현하는 사회다. 스포츠는 사회적 제도 가운데 영웅제조비용이 가장 적게 소요되는 분야다.

산업화의 여파로, 현대사회는 다가치(多價値) 다원화(多元化)사회로 빠르게 변모했다. ‘단 하나’의 표준화된 기준은 이미 사라졌다. 누구에게는 정말로 본받고 싶은 인생이 누구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는 생애일 수 있다. 일부의 칭송을 받는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누구는 정치가를 상찬하며 그의 생애를 닮고 싶어 하지만, 반대편에는 정치인을 혐오하는 그룹이 존재한다. 연예인, 과학자, 성직자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자기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사람이라도, 언제 어디서 어떤 노력을 거듭했는지를 깔끔하게 밝혀내기는 불가능하다.

스포츠는 그런 점에서 가치중립적 객관성을 담보한다. ‘정해진 틀 안에서 공정하게 경쟁한 끝에 정상에 오른’ 팀과 개인은 그래서 현대 사회의 영웅이자 롤모델이다.

영웅담(英雄譚)은 인간 감성에 호소하는 가장 뿌리가 깊고 파장이 큰 예술장르다. 영웅이 만들어내는 교육효과는 판이 크고 진지할수록 오래가고 길게 남는다. 프로스포츠의 승자가 추앙을 받는 건 진지함 때문이다. 최고의 재능들이 오직 그 한가지에만 매달려 빚어내는 경쟁의 순도! 프로스포츠는 질적인 면에서의 완전경쟁 시장이다.

올림픽 입상자들이 영웅일 수 있는 건 경쟁의 대상이 인류 전체이기 때문이다. 경쟁범위의 극한확대! 올림픽은 양적인 면에서의 완전경쟁 시장이다. 물론, 어느 경우나, 진정한 세계 최고수가 되지 않고서는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터이다.

자, 이제 올림픽의 계절이 돌아왔다. 감성의 문을 활짝 열고 올림픽에 흠뻑 빠져 즐거운 여름을 보내시라. 영웅을 기다리자. 이런 기회는 4년에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미래한국) 

 

장원재 문화평론가

전 숭실대 교수
전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전 SBS 아테네올림픽 메인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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