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 위한 정치 아닌, 가난을 없애는 정치 돼야
가난한 자 위한 정치 아닌, 가난을 없애는 정치 돼야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2.07.1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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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소웰의 <경제적 사실들과 오류들>을 읽고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A(49세)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열대야 때문이 아니다. 주범은 날로 떨어지는 아파트 값. A씨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당시 선망의 대상이었던 D그룹에 입사했다. 그러나 87년 IMF 사태로 인해 직장에서 나와야만 했다. 이듬해 A는 무역업무 경험을 살려 개인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종자돈을 마련하고자 32평짜리 반포 아파트를 팔았다. 판매가격은 3억6천만원.

시작한 개인 사업은 쉽지 않았다. 큰 바이어들은 대부분 A를 외면했다. 그나마 건질 수 있었던 바이어들은 조그만 영세업자들뿐이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중앙아시아 오지를 누볐다. 에어컨 펑펑 나오던 사무실에 앉아서 바이어를 기다리던 때가 그립기도 했다.

팔면 오르고 사면 떨어지는 아파트 값?

이를 악물고 노력한 결과 나름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직원도 몇 명 고용하게 됐으며 자동차도 고급 중형차로 바꿨다. 그런데 아파트를 되사려고 하니 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살던 아파트 가격은 2007년 현재 이미 10억에 육박하고 있었던 것. 약 9년 동안 뼈 빠지게 일했는데… 그동안 번 돈으로 자신이 판 아파트를 다시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차라리 사업을 하지 않고 그냥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던 편이 더 이익이었다.

이에 A는 무리해서라도 강남 아파트를 구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특히 A는 2007년 다가오는 대선에서 MB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는 사실에 주목했다. “서민 경제를 외치는 노무현 정권에서도 강남 아파트 값이 폭등했는데, MB가 집권하면 강남 아파트 값은 무적일거야”라는 것이 A의 정치적(?) 판단이었다. 이에 50평형 아파트를 15억에 구입했다. 5억은 자신의 돈이었으나 나머지 10억은 대출받은 돈이었다.

2012년 A의 아파트 가격은 10억대로 내려앉았다. A의 연소득은 1억이 넘는다. 그러나 600만원이 넘는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고등학교 다니는 첫째 아이와 초등학교 다니는 늦둥이의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과 여러 개의 카드를 통해 돌려막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그렇다고 지금 아파트를 팔자니 너무 억울하다는 것이 A의 하소연(?). 10억에 팔리더라도 빚 갚고 나면 무일푼이 될 뿐만 아니라, 혹시 차기 정권에서 다시 아파트 값이 오르면 약 올라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다. 아무튼 요즘 A는 MB정권 욕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기만 하면 “서민을 위한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곤 한다.

A는 비교적 친한 친구이다. 그러나 A가 자신을 ‘서민’이라고 부르면서, 이른바 ‘가진 자’를 욕할 때마다 거부감이 든다. 강남 50평 아파트에 살고 연소득이 1억이 넘는 사람이 ‘서민’이라면 나는 도대체 뭘까? ‘프롤레타리아’도 못되는 ‘프로박테리아’(?) 쯤 되는 것일까? 물론 각자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불만을 어느 정권이 해소시켜 줄 수 있을까?

30대 중반의 회사원 B는 A와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세상’과 ‘MB정권’을 저주한다. 월세 아파트에 사는 B는 “강남 아파트 값은 모조리 절반 이하 가격으로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B는 “나 같은 월급쟁이는 평생 월급을 모아도 강남 아파트를 살 수 없다”면서 “강남에 사는 X들은 전부 도둑놈들”이라고 눈에 핏발을 세우는 것이었다. “평범한 미국 샐러리맨이 평생 월급을 모으면 맨해튼 고급 아파트를 살 수 있나? 아니 어느 나라에서 평범한 월급쟁이가 최고 부자 동네에서 살 수 있나”라고 물으니 B는 무슨 끔찍한 벌레를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문제는 해결방법인데 그 해결방법이라는 것이 신통해 보이질 않는다. 비판은 손쉽다. 오르면 오른다고, 내리면 내린다고 비판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비판자에게 해법이 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국민 모두가 강남 아파트에 살겠다고 하는 한, 제갈량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나오더라도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도깨비 방방이는 없다’

최근 재미 있게 읽은 책은 토머스 소웰의 <경제적 사실들과 오류들>이다. 정치를 “금 나와라 뚝딱”하면 금이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 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번역서도 나왔는데 번역서의 제목은 <경제학의 검은 베일>이다.

저자는 “경제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큰 재앙을 부른다”며 문제가 복잡할수록 ‘원칙’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 경제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현재도 ‘가진 자’(haves)와 ‘못 가진 자’(have nots)로 구별해 선동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러한 대립구도는 잘못된 것이며 현재 존재하는 사람들은 ‘가진 자’(haves)와 ‘많이 가진 자’(have lots)라는 것이다.

흔히 중산층이 붕괴하고 빈부의 격차가 늘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현재 상황을 정확히 살펴보면 “과거에 ‘소수의 가진 자들’이 향유하던 것들을 다수가 향유하게 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가난’(poverty)의 문제와 ‘불평등’(inequality)의 문제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다른 범주이며 불평등이 늘었다는 것이 반드시 가난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자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가난 한 자를 없애는 정치’이다. ‘가난한 자를 위한 정치’를 하는 자는 당선되기 위해서라도 ‘가난한 자’가 항상 다수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자를 위한 정치’를 주장하는 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싫어한다. 반면 ‘부자를 위한 정치’를 하는 자는 당선되기 위해서라도 ‘부자가 다수가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역설(?)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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