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종속될 것인가?
중국에 종속될 것인가?
  • 이춘근 박사
  • 승인 2012.07.2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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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정보보호협정 체결 논란의 본질은..

한일 양국 정부가 6월 29일 조인하려다 한국 정부의 갑작스런 조인 취소로 인해 불발이 되고 만 한일정보보호협정에 관해 한국사회 내의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서둘렀다는 비판, 정부의 말대로 절차를 잘못 이행했다는 핑계, 국민의 정서를 살피지 않고 서둘렀다는 비난, 일본과는 절대로 어떤 협정도 맺으면 안 된다는 국수주의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있지만 논쟁의 핵심 포인트를 제대로 짚고 있는 견해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한일정보보호협정은 한일 양국이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방법과 교환된 정보를 보호·관리하는 절차를 규정하기 위한 협정으로, 한일 양국이 체결하기로 약속하고 추진했던 일이다.

협정 전문은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는, 양 당사자 간에 교환되는 군사비밀정보의 상호 보호를 보장할 것을 희망하면서, 양 당사자는 각 당사자의 유효한 국내법령에 부합할 것을 전제로 여기에 제시된 조건에 따라 군사비밀정보의 보호를 보장한다… 군사비밀정보란 대한민국 정부나 일본 정부의 권한 있는 당국에 의하여 또는 이들 당국의 사용을 위하여 생산되거나 이들 당국이 보유하는 것으로, 각 당사자의 국가안보 이익 상 보호가 필요한 방위 관련 모든 정보를 말한다’고 규정했다.

즉 한일 양국이 국가안보 필요상 군사기밀정보를 상호 공유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 경우 양국이 상호 제공한 정보가 불필요하게 누출될 가능성을 막는 방법을 규정한 것이 한일정보보호 협정이다. 그래서 협정의 내용과 목표는 하자가 없다. 한국의 국가안보가 날로 복잡해지는 작금의 국제정치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의 정보는 물론, 솔직히 말해서 한국보다 더 대 북한, 대 중국, 대 러시아 정보력에서 앞서는 일본의 정보도 잘 활용해야 국가안보의 엄중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한국 사람들은 “그렇다면 일본과도 군사 협력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며 흥분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보아 좌우를 불문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능사인 줄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본을 무조건적인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조차 있으며 특히 안보문제에 관해서는 일본과 전혀 협력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국제정치를 냉철하게 분석하기보다는 오히려 국제문제를 정서적(情緖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 국민들의 큰 단점 중의 하나인데 그 같은 단점이 가장 처절하게 나타나고 있는 분야가 한일관계다.

국제문제 정서적으로 인식하는 한국 국민

미국에 핵폭탄 세례를 받은 나라이며, 미국에 철저하게 패배한 나라이지만 지금 일본은 미국과 가장 잘 지내는 나라가 돼 있다는 사실은 한국국민의 정서상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한국 국민의 국제정치관은 감정에 의해 지배받지만 일본 국민의 국제정치관은 이익에 의해 지배받기 때문에 일본은 미국과 잘 지낼 수 있었으며 그 덕택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까지 될 수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단지 영원한 국가이익이 있을 뿐이다’라는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말해 주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최대 금언이 한국인들에게는 도대체 먹히지 않는다. 국제정치의 대가였던 이승만 박사조차 일본을 바라 볼 때는 국가이익을 계산하는 현실주의자가 되기보다는 민족주의자가 돼버리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을 맞이하는 지금, 한반도 주변 국제정치의 전개 과정을 볼 때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갖는 편협한 민족주의와 정서적인 국제정치관은 대한민국 미래 국가안보에 심각한 장애요인이 아닐 수 없다.

금년 봄 간행된 전략비전(Strategic Vision) 이라는 저서에서 미국의 전략가 브레진스키 박사는 만약 미국이 쇄락하게 된다면 그 경우 가장 곤란한 전략 상황에 당면하게 될 나라는 대한민국이라고 보았다. 그는 미국이 만약 정말로 쇠락한다면 한국은 ‘중국의 영향 아래로 들어가 굴종하고 사는 방법, 역사적으로는 적대감이 많지만 일본과 연합해 중국 앞에서 독립과 자존을 유지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살길을 찾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사람들은 미국과는 대등한 동맹국이 될 수 있다면서, 왜 중국 앞에서 한국은 종속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느냐며 반문할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 너무 가까이 있는 강대국이다. 그러다보니 중국은 한반도 영토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한국은 중국과 대등한 동맹관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일본도 한국의 영토를 탐하던 나라였지만, 지금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나라 중 하나다. 브레진스키 박사는 한국은 논리적으로는 일본과 연합해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처해야 하는데 한국인의 정서가 그것을 허락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중국 견제할 대안은?

현재 한국인 다수의 국제정치적 관점이 극도로 비전략적인 이유는 중국의 위협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혹은 무시하는 반면, 필요에 따라 동맹국이 될 수도 있을 일본을 무조건적인 적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미국이 한국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온다면, 그런데도 한국인의 대 일본관이 지금과 같다면, 한국은 중국의 종속국이 되든가 (조선시대처럼) 아니면, 중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를 적국으로 돌려야 하는 최악의 전략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이 스스로의 힘으로 중국의 부상에 대처하고 동시에 영원한 적국 일본에 대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이 금명간 당면하게 될지도 모를 전략적 딜레마를 해소하는 방안 중 하나가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작금 야기되는 한일정보보호협정 관련 비판은 정보협정이 무엇이냐의 여부에 관한 것이기 보다는 “왜 일본과 군사 관련 협정을 맺느냐” 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막연한 국수주의적 감정이나 민족감정에서 한일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반대하면 안 된다. 더 나쁜 것은 친중, 친북, 반미의 연장선에서 한일 군사관계의 증진을 반대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올 줄 뻔히 알면서도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고 설득하기는 커녕 몰래 밀실에서 한일정보보호협정을 서둘러 처리하려 함으로써 오히려 사태를 망쳐버린 정부당국자들의 비전략적이며 무능한 행동 역시 결코 비호될 수 없는 일이다.

-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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