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만에 런던에 온 ‘TEAM KOREA’
64년만에 런던에 온 ‘TEAM KOREA’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2.07.2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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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약소국에서 스포츠-경제 강국으로

런던올림픽이 7월 28일(한국시간) 성대한 개막식과 함께 시작된다. 한국선수단은 총 22개 종목, 374명(임원 129명, 선수 245명)으로 구성돼 참가한다.

이번 런던올림픽이 한국 선수단에게 색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한국 선수들이 해방 이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올림픽이 1948년 런던올림픽이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1945년 해방 이후 3년 만에 선수단을 꾸려 현지에 파견했는데, 1948년 6월 21일 서울역을 출발해 런던 도착까지 무려 21일이 걸렸다고 한다.

특히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홍콩 공항까지 가는 데만 12일이 걸렸다. 당시 중앙방송국(현 KBS) 민재호 아나운서(1916∼1987)가 쓴 책 ‘런든 올림픽 紀行(기행)’에 따르면, 선수들은 경기 감각과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홍콩까지 가는 배의 갑판 위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모든 면에서 최악의 경기 조건이었지만, 대한민국 선수단은 역도(김성집)와 복싱(한수안)에서 동메달을 한 개씩 획득하며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종합순위 2위에 올랐다. 당시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었던 일본은 올림픽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64년이 지난 2012년 7월 대한민국 스포츠의 위상도,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도 1948년과는 확연히 다르다. 1948년 런던올림픽 당시 변방의 작은 나라로 비쳐졌던 대한민국은 64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신고한 데 이어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로 종합 10위에 올랐다.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금 12 은 10 동 11로 종합성적 4위를 기록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금 12 은 5 동 12로 종합 7위를 달성했고,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선 금 7 은 15 동 5,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금 8 은 10 동 10의 성적을 거둔다. 이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 9 은 12 동 9로 총 30개의 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사상 최다인 13개의 금메달을 수확, 종합순위 7위에 올랐다.

하계올림픽 뿐 아니라 동계올림픽에서도 한국의 선전은 눈부시다. 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과 98년 나가노올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에서만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그쳤으나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 3개를 기록해 오히려 쇼트트랙(2개)보다 더 많은 금메달을 땄다.

이어 ‘동계올림픽의 꽃’인 피겨스케이팅에서는 피겨여왕 김연아가 올림픽 사상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하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밴쿠버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종합순위 5위에 올랐는데 이는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였다. 중국은 금메달 5개에 그쳤다.

이 같은 성과를 가능하게 만들어 준 것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지칭되는 성공적인 경제 성장이었다. 2011년 집계 결과 대한민국은 수출 부문에서 10위로 세계 10대 수출국에 이름을 올렸다. GDP에서도 1조1,638억 달러로 세계 15위에 올랐다.

2010년 11월에는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위상을 과시한 바 있다. 당시 서울에 모인 세계 20개국 정상들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 시장의 결정에 따르는 환율제도 지향 ▷ 균형 잡힌 경상수지 유지를 위한 예시적 가이드라인 수립 ▷ IMF개혁 ▷ 금융규제 개혁 ▷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등의 사안에 있어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외신들은 한국의 빠른 경제회복 및 성장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 의장국인 한국이 보여준 리더십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결국 한국 스포츠의 성장은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한국 정부는 개발도상국 시절이었던 1970년대부터 올림픽 개최를 추진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어 2002년에는 올림픽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로 손꼽히는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4강에도 진출했다.

2010년 7월 6일 제123회 IOC총회에서 확정된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또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런던까지 무려 21일이나 걸려서 어렵게 도착했던 아시아의 약소국가에서 월드컵,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하는 등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스포츠 1번지’가 된 것이다. 1948년의 대한민국과 2012년의 대한민국을 비교해보는 건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김주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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