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드라마, 북한은 어디로 가는가
7월의 드라마, 북한은 어디로 가는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7.3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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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 평양에서는 숨가쁜 드라마가 펼쳐졌다.

북한 신군부의 실세였던 리영호 총참모장의 전격 실각으로 세계의 이목이 평양에 집중됐다. 이날 진행된 조선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리영호는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겸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직무에서 해임됐다. 북한을 지탱하는 군부 권력의 거대한 기둥 하나가 뽑혀나가는 순간이었다.

이튿날 16일 공석이 된 자리에 현영철 대장이 차수 승진과 함께 군 총참모장으로 임명됐다. 이어서 18일 오전 11시 평양은 ‘중대보도’를 예고했다. 12시의 중대보도는 김정은의 ‘공화국 원수’ 칭호 수여에 대한 짤막한 보도였다.

곧이어 후속행사로 군부의 김정은 원수칭호 수여 축하결의대회, 19일 평양시 경축대회가 이어졌다. 이처럼 7월 15일에서 17일 사이 사흘간의 거사는 그야말로 주어진 각본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드라마였다.

북한군 핵심 리영호 실각은 ‘갈 사람 간 것’

북한군의 최고 실세인 리영호가 공개 활동 8일 만에 모든 직책에서 전격적으로 해임됐다는 사실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통상 독재국가나 사회주의국가에서 권력의 실세는 와병 여부에도 불구하고 현직에서 해임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심지어 중병을 얻어 식물인간이 된 경우도 직책만은 유지되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리영호의 경우는 달랐다.

리영호의 실각이 즉각 공개 발표됐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북한과 같은 폐쇄적 독재국가의 경우 권력 상층부의 이동은 즉각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장기간 기밀에 붙여지는 것이 상례라고 할 수 있다. 리영호의 경우 실각이 방송을 통해 발표됐다는 점은 공개적 유포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는 북한군과 주민은 물론, 해외에 대한 대외공표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리영호의 실각이 장성택계의 군부 최룡해와의 권력투쟁에 기인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한다. 아울러 그 권력투쟁의 배경과 본질이 김정일 측근의 몰락과 아들 김정은 측근의 등장이라는 점에서도 모두 일치한다.

다만 리영호의 실각을 개혁개방노선파와 보수강경파간의 노선투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견해가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이렇게 분석한다.

“김정은 정권이 아직 안착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노선투쟁을 위해 군의 실세를 제거한다는 추론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현 상황은 보다 급박한 권력투쟁의 상황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죠. 장성택계가 군 및 보수강경파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할 경우 북한 위기의 원인을 이들에게 돌리고 대남대외 관계에서 유화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는 이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당료그룹인 장성택계가 신주류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군에 대한 전면적 개편을 앞두고 리영호를 중심으로 북한 군부가 반발했거나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리영호는 자신의 실각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장성택계 공안라인의 전격적인 합작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영호의 실각은 1회용 사건이 아니라 김정일 사후 장성택계 중심의 권력 재편 과정의 일환이며 현재 진행형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장성택계는 군과 내각, 당에 대한 전반적이고 포괄적인 권력 장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김정일이 과거에 시도했던 대규모 숙청사례인 심화조 사건을 넘는 규모일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로열패밀리의 선당정치 회귀인가?

한편 이번 평양의 권력교체를 선군에서 선당으로의 정책변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것은 북한의 지배체자가 ‘로열패밀리’라고 하는 특수한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조민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에 의하면 북한의 로열패밀리는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운명과 스스로를 일체화시키는 사람들이다. 김정은, 장성택, 김경희와 함께 이들에게 대를 이어 충성을 서약한 최룡해 이 네 사람에게 국가는 곧 가문의 유산=유업이자, 자기의 실존적 근거가 된다.

왜냐하면 세습후계는 혁명전통의 계승이 아닌 혈통 계승이기에 본능적으로 핏줄 중심의 의식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뢰의 척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열패밀리가 기획하고 연출한 최근의 사흘간의 거사로 이들이 일단 군부를 제압한 상태라는 것이 조민 연구위원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이 로열패밀리가 군부를 제압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조 연구위원은 바야흐로 북한의 노선이 ‘선군(先軍)에서 선당(先黨)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 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선군정치로 자만심에 가득찬 군부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죠. 당 재건을 서두르는 김정일과 후계그룹의 의도를 간취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었던 우동측의 숙청을 계기로 김정은 로열패밀리의 권력 장악을 위한 물밑 작업이 드러났죠. 하지만 신군부 실세는 그러한 동향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리영호의 경우 제4차 당대표자회를 전후해서 일련의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비난하거나 로열패밀리의 권력 구심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재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군부에 대한 통제 속에서 당권을 장악한 로열패밀리는 당장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 회복의 전망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다시 말해 로열패밀리는 김정은 체제의 권력이 총대가 아닌, 쌀과 최소한의 경제 회복의 성과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민 연구위원의 말처럼 ‘가야 할 길은 멀고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6·28 경제개혁 조치는 또 다른 수탈계획?

이러한 입장은 4월 19일자 로동신문에 게재된 김정은과 당 중앙위 일꾼들의 담화 내용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이 담화는 제4차 당대표자회를 앞둔 4월 6일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우리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해가자’는 제하의 담화로, 북한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문건이다.

전문은 16쪽으로 상당히 긴 담화인데 핵심적인 내용은 당 위상의 강화로 당적 유일적 영도 체계 수립을 강조하면서,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 해결’을 선결과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농업 생산에 대한 국가적 투자 계획과 함께 경공업 발전에 힘을 쏟아 인민소비품 생산을 늘린다는 방침을 밝혔다.

‘4·6 담화’는 “경제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를 강조하면서, 내각을 나라의 경제를 책임진 ‘경제사령부’로 규정했다. 나아가 모든 경제문제를 내각과 합의하고 내각의 결정, 지시를 집행하는 한편 각급 당은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강화하는 데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국가의 모든 경제문제를 내각 중심으로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점이 주목된다.

그렇다면 북한은 선군정치에서 선당정치로 회귀함에 따라 경제 개혁과 개방을 추구하게 될 것인가. 우리의 관심은 이 점에 쏠리게 된다. 결론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한의 개방이 그동안의 폐쇄적이었던 북한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과 갈등을 불러옴으로써 결과적으로 김정은 독재체제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든 북한은 경제 개혁의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4·6 담화’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북한 내부 문건이 소개됐다.북한은 지난 6월 말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6·28 방침’을 공표했다고 한다. 이 방침은 김정은체제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경제조치로 협동농장, 공장, 기업소에 시장가격이 반영된 생산비용을 먼저 지급하는 방식의 경제관리체계다. 협동농장의 경우 현재의 작업분조 단위(10~20명)를 4~6명 단위로 줄이고 작업분조에 따라 토지와 생산비용을 할당한 후 국가와 작업분조가 생산물을 일정 비율로 나눈다는 것인데, 새로운 점은 국가가 생산비용을 선지급한다는 사실이다.

공장기업소의 경우도 최초 생산비를 국가가 ‘투자’하고 기업이 원자재를 구입해 생산.판매 후 국가와 해당 기업소가 일정 비율로 나눈다는 정책이다. 협동농장의 기초 생산 단위의 축소는 생산 의욕을 한층 높일 수 있고, 협동농장이나 공장과 기업소에 대한 국가의 선(先)투자는 종자나 원자재 구입 등을 통해 생산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김정은체제가 추구하고 있는 경제 재건의 본질은 일종의 계획경제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시장 없는 개혁’을 추구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시장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의 반영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북한의 6·28조치는 개혁과 개방에 대한 비전이 없을 경우 정권의 또 한번의 수탈정책이 될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대부분이다.

시장 없는 개혁은 신기루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경제체제를 엘리트의 약탈경제체제로 정의한다. 박 선임연구위원에 의하면 북한경제와 시장 확대에 대한 정권의 약탈적 개입은 2009년 이후 현저히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 북한정권은 2008년 이후 해외 원조의 축소에 직면하는 한편, 2005년 이후 경제에 대한 약탈적 개입 강화를 장기화함으로 인해 국내 경제의 생산성이 저하해 내부 약탈 원천이 축소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정권은 재정 지출을 현저하게 확대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그 목록에는 군수공업과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금, 2009년 11월 화폐교환조치 이후 내부 보안 능력 강화 비용, 2012년의 김일성 생일 100주년 기념 및 김정은 후계 정권의 출범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추가 지출 등이 주요하게 포함돼 있다. 박 선임연구위원의 말을 들어 보자.

“북한정권은 이러한 상황에 두 가지 차원에서 대응했습니다. 첫째는 외부로부터 이권이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원천을 발굴하고자 노력했지요. 이에는 광산물 수출의 급격한 증가, 관광사업 강화, 노동력 수출 확대, 폐쇄경제 특구 증가 설치 노력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국내경제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서도 정권유지에 필요한 외화수입을 보장하고자하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내부 수탈을 현격히 강화했지요. 대표적인 조치가 2009년 11월에 시행됐던 화폐교환조치였습니다.”

경제재건 정책 넘어 개방 비전 제시해야

화폐교환조치의 경우 북한은 실제로 정권에 매우 유리한 화폐교환비율을 적용했다. 여기에는 외화사용금지 공갈을 통한 사실상 외환강탈과 신화폐를 특혜로 대량 공급받은 특수기관이 국내 암시장에서 불공정하게 외환을 매입한다든지, 대량의 화폐공급으로 2009년 말에서 2012년 중반에 이르는 동안의 150-200배의 쌀값 및 환율 상승을 야기했던 경우도 있다. 이밖에도 협동농장으로부터 군량미와 수도미(평양공급용 쌀)의 갹출 증대 등과 같은 것도 있다.

북한의 이러한 경제개혁조치의 속내를 알기가 쉽지는 않다. 자본주의 경제원리를 모르기에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제정책을 시행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주민을 수탈할 수 있어서 인지는 그 진정성을 확인해야만 알 수 있는 문제다. 아울러 그 진정성이란 다름 아닌 개혁과 개방에 대한 비전과 의지다. 개혁과 개방이 없는 경제개혁이란 공허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내각 총리 최영림(1930년생)은 북한 최고의 경제통이자 당.정.군 두루 존경받는 인물로 북한경제 재건의 키를 잡고 있다. 당중앙위 경공업부장인 박봉주(1940년생)는 2003년 9월 내각 총리를 맡아 경제개혁을 추진했으나 ‘자본주의 도입’으로 매도당해 한때 쫓겨났으나 2010년 8월 당시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보좌 역할로 중앙당에 복귀했고 최근 김경희의 자리를 이어받아 인민소비품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과업을 떠맡았다.

내각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인 로두철(1944년생)은 내각 경제부문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내각이 ‘나라의 경제를 책임진 경제사령부’로서 노심초사하더라도 ‘빈 곳간’ 앞에서 경제재건 사업이 안착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이 이번 북한의 상황을 지켜보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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