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화제다. 이 드라마는 미남 스타 장동건이 12년 만에 TV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더욱이 김은숙 작가도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등의 히트작을 양산했던, 장동건 못지 않은 스타성을 갖고 있던 터라 방송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톱스타인 배우와 작가가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이 드라마는 올 여름 안방극장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신사의 품격>의 중심 스토리 라인은 41세 ‘꽃미남’ 4인방의 우정과 사랑이다. 그런데 이들의 면면을 보면 가히 중년의 로망이라 할 만하다.
직업은 잘 나가는 건축가(장동건, 김수로), 변호사(김민종), 고급 바 사장(이종혁)으로 일단 생계 걱정이 없고, 휴일엔 유럽의 고급차를 몰고 나가 최근의 가장 ‘핫’한 여가 활동인 사회인 야구를 즐긴다.
이런 종류의 드라마에 따라붙는 일종의 ‘공식’ 같은 비판을 하면 어떨까?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문제 제기가 먼저일 것 같다. 우리나라 40대 초반의 실상은 아무래도 직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에 치이고, 자식들의 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처지인 까닭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도 결혼 비용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과거 유행하던 20·30대의 사랑 이야기에 자금력을 추가한 ‘40대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돈 문제로 고민하는 현실의 다수를 도외시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달리 보면 이런 비판이 오히려 도식적일 수도 있다. 우리 문화가 언제까지 부자를 고발하는 계급 갈등이라는 코드만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차별화되는 점은 이런 부자에 대한 태도다.
이 드라마는 부자의 위선이나 허위의식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부자들이 당당하고 착하다.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 받았거나(김수로, 윤진이), 청담동 일대에 매장을 다수 보유한 부동산 부자(김정난)라 해도 전혀 창피할 게 없다.
그리고 이들은 악행을 저지르는 ‘괴물’이 아니라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선량한 시민이다. 그리고 부자가 아닌 김하늘(선생님)과 윤세아(프로 골퍼)가 자기 일 해서 성공하면 그뿐이다.
이런 대목은 최근 우리 문화 산업에서 유행처럼 돼 버린 ‘부자 때리기’를 보는 것보다 신선하다. 예컨대 상위 0.1%의 탐욕과 욕망을 고발한다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을 보고 통쾌함보다는 어색함을 느낀 것과 반대의 경우다.
<돈의 맛>에선 재벌가 상속녀 윤여정이 우리나라 부자를 대표해 악행을 저지르는데, 영화는 감독의 전작인 <하녀>와 별반 차이가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부자=위선=악인’을 주장한다.
사실 최근 여야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며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것도, 그에 한참 앞서 문화계에서 대중에 영합하는 이런 유행을 만들어 냈던 덕도 크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신사의 품격>에서 나오는 장동건의 당당함이 더 품격 있고 향기롭다.(미래한국)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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