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금세기 최대 불황 이미 시작됐다
[심층분석] 금세기 최대 불황 이미 시작됐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8.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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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때 독일 잠수함에서는 카나리아 새를 길렀다. 잠수함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이 카나리아가 제일 먼저 울기 때문이었다.

세계 경제의 호황과 불황을 미리 알려주는 카나리아도 있다. 바로 수출용 원단이다. 원단은 옷과 직조물의 재료가 된다. 유가가 생산측면에서 경기변동의 시그널이라면 원단은 소비지출의 시그널이다.

“20년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대구의 한 원단 수출회사 사장은 그렇게 말했다.

“여기 공단이 지금 다 그래요. 어차피 주문이 없어 할 일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 게는 휴가간다는 핑계로 문들을 닫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는 처음 봅니다.”

의식주 가운데 불황이 오면 가장 먼저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다름 아닌 의(依)라고 주장하는 그는 올 봄부터 조금씩 줄어들던 원단 주문이 5월이 되자 눈에 띄게 감소했고 7월 들어서는 거의 끊겼다고 한다.

실제로 경기는 불황국면에 확실히 접어들었다. 지식경제부는 7월 국내 기업들의 총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8% 감소한 446억 달러, 수입은 5.5% 감소한 419억 달러로 각각 집계됐다고 1일 밝혔다. 2009년 10월 8.5% 감소한 이래 가장 크게 줄어든 수치다. 품목별로는 선박의 수출액이 가장 크게 줄어 작년 49억 달러에서 올해 21억 달러로 28억 달러 감소했다. 이는 2009년 하반기 미국 경제위기 여파로 선박 발주량이 크게 줄면서 올해 수출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역별로는 유럽연합(EU)·중국 등 우리 수출의 주요 거점지로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7월 EU로의 수출은 전년 대비 4.9% 줄었으며, 중국으로의 수출액은 0.5% 감소했다. 부진한 내수로 인해 수입도 크게 줄었다. 특히 기업들의 설비투자에 사용되는 자본재 수입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성장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반도체 장비 수입액이 31.4% 줄었고, 비철금속 수입액도 26.4% 감소했다. 자동차부품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7% 수입이 줄었다.

불황에 신음하는 지구촌

과거 국내 경기를 견인하던 선박과 자동차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특히 선박은 유러존 사태로 인해 거의 붕괴직전이다. 조선업체들에 남은 일감을 뜻하는 수주잔량은 현재 5000척, 1억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5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우리 수출경제에 산소호흡기 역할을 한다는 자동차의 경우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하반기 현대ㆍ기아자동차를 비롯 국내 완성차업계의 수출은 168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170만대를 기록했던 올해 상반기보다 줄어든 수치다.

이렇듯 수출경제 전반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이유는 심화되는 유럽발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의 부진에 있다. 문제는 이 불황이 과거처럼 2~3년 내에 회복되는 경기변동상의 불황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2000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증가한 유동성이 지구 전역에 글로벌 자산 거품을 만들었고 이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은 앞으로 10년 이상 지속된다는 전망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조적, 장기적 불황으로 세계 전체가 접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지난 6일 “미국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개인, 가계, 기업은 여전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 사실은 미국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려면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 다시 추락할지 모른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 달 “현 시점에서 더블딥 침체 리스크는 감지되지 않는다”며 “미국 경제는 완만한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번 달 들어서서는 다시 3차 유동성 공급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발언을 내비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놓인‘재정 절벽’이다. 경기회복을 위해 감세와 재정지출 축소를 주장하는 공화당과 정반대로 부자 증세와 재정확대를 주장하는 민주당간에 타협이 어려운 절벽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독일의 경제지표 부진과 영국 경제성장률 전망 하향 등으로 유럽 경기침체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유럽의 엔진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경우 지난 6월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9% 감소했고 수출은 1.5% 감소했다.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경제분석가 울리케 론도르프는 “현재 나온 수치들은 독일 경제가 2분기에 성장했음을 보여준다”면서도 “하지만 독일의 국내총생산이 3분기에는 줄어들 것이라는 조짐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영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0.8%에서 0%로 낮췄다.

이러한 유럽경제의 불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분석이 있다. 다름 아닌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해 유럽 10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다.

지난 5일 미국의 종합금융회사인 씨티그룹은 앞으로 2∼3분기 내에 유럽 주요 10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1단계 이상 강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유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시화와, 연말까지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구제금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 때문이다. 재정불안국에 대한 지원 때문이다. 씨티그룹은 이러한 문제가 2~3년간 지속되면서 이들 국가 신용등급은 추가로 하락하게 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해당 10개국은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다.

중국, 한국, 일본에 몰려올 쓰나미

유럽발 경제 쓰나미는 올 연말에는 아시아 전역에 도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한국경제원구원의 최근 조사보고에 의하면 EU에 대한 중국의 수출 감소를 통해 간접적으로 우리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된다. 다시 말해 중국 최대 수출시장인 EU의 경기침체는 중국 수출에 타격을 주고 이에 따라 중국과의 가공무역이 약 50%를 차지하는 한국 수출도 감소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출부진은 생산감소, 고용 및 투자감소 및 내수위축으로 연결되면서 성장률 하락을 초래할 것으로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특히 유럽 위기가 미국 중국 등에 전이될 경우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도 경고한다. 석유 및 석유화학 제품,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같은 중간재 품목들이 중국에 수출되고 완제품이 EU와 북미에 다시 수출되는 무역구조이기 때문에 유럽의 경기침체는 중국의 수출 감소를 통해 우리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순환구조 모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하게 보는 것은 유럽재정위기가 초래할 중국의 부동산 버블붕괴다. 전문가들은 이 시나리오를 최악의 경우로 상정하고 있다.

‘버블 예측의 권위자’로 불리는 앤디 시에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7월 18일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초청 토론회에서“중국에서도 부동산 버블이 조만간 폭발할 것”이라며 이에 따른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충격을 예고한 바 있다. 시에 박사는 “지난 2004년부터 중국 정부가 생산에서 투기로 전환했다”며 “이 때문에 중국 부동산에는 현재 상당한 버블이 형성돼 있으며, 이 버블은 올해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에 박사는 그러한 예상의 근거로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0%가 부동산 관련 투자에서 발생했던 사실을 꼽는다.

문제는 시에 박사가 중국 정책 당국의 개혁 의지와 능력에 대해선 비관적으로 전망한다는 점이다. 그는 “중국은 여전히 법과 제도가 아닌 중앙 정부나 정부 관료들에 의해 경제가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일본의 경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유럽 금융위기 여파로 엔화값이 강세로 돌아서고, 이로 인해 지난해 사상 최악이었던 일본 기업들의 실적은 올해 들어서도 부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4일 전자기업 샤프가 2012회계연도 첫 분기인 올 2분기(4~6월)에 1000억엔 규모의 연결 순이익 적자를 낼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전년 동기 492억엔 적자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일본의 양대 제철소인 신일본제철과 JFE의 올 2분기 경상이익도 100억엔 미만에 그칠 전망이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80%와 60% 감소한 규모다. 중국 철강사들이 대대적인 증산에 나서며 아시아 지역 철강 가격이 하락하고 엔고로 인해 수출 채산성이 악화된 것이 원인이다.

중소기업 구조조정 서둘러야

이번에 찾아오는 경제 불황이 세계적이고 장기적이며 구조적인 속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의 대응 정책도 이에 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와 같은 버티기만으로는 곤란하며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의 가운데는 국민 고용의 8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의 낮은 생산성과 비효율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글로벌 대기업들은 과거 IMF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불황에 버틸 수 있는 체력이 확보됐지만 내수형 대기업과 매출 100억 미만의 중소기업들의 경우 이번에 몰려올 불황의 파고를 제대로 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구조조정을 미리 서두르는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웅진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KTB투자증권의 사모투자전문회사인 KTB PE 부문과 신설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웅진코웨이 지분을 매각했다. 그 결과 웅진홀딩스는 이번 계약으로 경영권을 지키면서 1조원이 넘는 현금을 확보했다.

STX그룹은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STX는 계열사인 STX 0SV 매각이 확정됐고 현재 STX에너지, STX중공업 등 비상장 계열사 일부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자금 확보를 위해 자회사를 매각하는 상장사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랜드백화점은 부채상환 및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롯데쇼핑에 인천 지역 토지와 건축물을 매각했다고 6일 공시했고 하림홀딩스는 자회사 엔에스쇼핑의 기업형 슈퍼마켓 사업부문을 양도하고 토지와 건물도 매각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영세한 중소기업들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업종별로 중소제조업체 100곳을 선정해 실시한 긴급 경영상황조사에서 응답기업 10곳 중 8곳은 ‘하반기 나아지길 기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질문에도 60% 가량이 ‘나쁘다’고 말했고, ‘주문 자체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답한 기업이 많았다.

‘사회통합 운동’이 필요하다

100억 매출 미만의 중소기업 가운데 세 곳 중 한 곳이 한계기업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러한 중소 한계기업들은 이번 글로벌 불황에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되거나 필사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는 고통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쏟아내는 중소기업 보호와 지원의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불황에서는 다시 ‘약자에 대한 우선권’이라는 아젠다가 이러한 구조조정의 멍에를 벗어던지려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민간 주도의 사회통합이 경제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사회통합 없이는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황일수록 우리 사회에 건전한 상식이 필요하고 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믿음이 필요하다는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현진권 소장의 주장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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