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내가 북한에서 당한 끔찍한 고문
[증언] 내가 북한에서 당한 끔찍한 고문
  • 미래한국
  • 승인 2012.08.17 13:4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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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보위부와 정치범수용소에서 가해지는 고문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인권말살의 현장이며, 북한 독재정권을 교체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박광일 (사)세이브엔케이 사무국장의 생생한 증언을 소개한다.

나는 북한에서 남한 비디오를 봤다는 죄목 때문에 1998년 탈북을 감행했으나 중국에서 보름만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다. 송환 이후 1주일 동안에는 함경북도 무산군 보위부에서 취조를 받았다. 나를 취조한 수사과 직원은 상위계급의 젊은 수사관이었다.

그는 걸상다리로 손바닥과 발바닥을 타격하는 고문을 많이 사용했다. 자기가 의도했던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두 손바닥을 위로 펴고 책상 위로 올리게 한다. 그리고는 아직 정신이 덜 들었다면서 준비해 놓았던 걸상다리로 내 손바닥을 힘껏 내리치곤 했다.

그는 살기어린 웃음을 지으며 좀 아파도 참으라면서 걸상다리로 내 손바닥을 힘껏 내려쳤다. 몇 시간 동안 열심히 반성문을 작성했는데 조사실로 들어와서 대충 보고는 솔직하지 않다고 하면서 또 걸상다리로 내 손바닥을 내리쳤다.

하도 손바닥을 많이 맞아 손바닥은 다 갈라터지고 나중에는 도저히 펜을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1주일 동안 무산군 보위부에서 수사과 지도원으로부터 걸상다리로 손바닥을 얻어맞은 숫자를 헤아려 보았더니 총 300회 정도였다.

잠도 안재우고 죽도록 매질

종일 조사에 시달리다 구류장에 들어가면 잠을 재우지 않았다. 계호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방에서 나는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는 밤새 꼼짝하지 말고 앉아 있어야 했다. 구류장 안에서 당하는 기합 중의 하나인 펌프(팔굽혀펴기)를 할 때면 큰 소리로 하나, 둘, 셋 숫자를 외치며 해야 했다. 너무 힘들어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작아지면 또 끌려 나가 계호원들에게 거의 죽도록 매질을 당했다. 계호원들의 매질에 정신을 잃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후에 무산군 보위부에서 함경북도 도보위부로 이송돼 함경북도 보위부 반탐과에서 다시 취조를 받았던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산군 보위부 수사과에서 취조를 당했던 1주일간은 매도 적게 맞았고 생각보다는 그리 힘든 나날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무산군 보위부에 끌려와 7일째 되는 날 아침 나는 담당 수사과 지도원으로부터 나에 대한 사건이 무산군 보위부에서 함경북도 보위부로 송치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경북도 보위부에서는 무산군 보위부와는 달리 조그마한 지하 독방에서 지내야 했다. 종일 고된 조사와 조사과정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당한 뒤 계호원들에 의해 끌려서 캄캄한 지하 독방에 시체마냥 쓰러져 있을 때는 정말 한시라도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 이외에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나에게는 ‘자본주의 황색문화의 유포’라는 죄명이 씌워졌다. 북한사회에서 금지된 적대국인 남조선의 드라마 ‘모래시계’가 들어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친구들에게 빌려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래시계’ 사건은 곧 김일성, 김정일이 창조한 ‘건전한 북한식 사회주의 제도’의 사상문화를 부정하고 ‘썩어 빠진 자본주의 문화’를 북한사회 전반에 유포시켰다는 정치적인 죄명으로 이어지게 됐다.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 훼손’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조사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배반하고 중국으로 불법월경을 했기에 함경북도 도보위부 반탐처에서 나에게 마지막 ‘불법월경행위에 관한 위법’이라는 죄명을 덮어씌웠다.

대답을 해도 돌아오는 건 고문

하루에도 몇 십번씩 반복되는 조사관의 질문에 똑 같은 대답을 해도, 아니면 조금씩 다른 대답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가혹한 고문이었다. 아무리 진술서를 잘 써도 조사관들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매일 몽둥이에 의한 찜질을 수없이 당해야 했다.

그래도 몽둥이에 의한 고문은 좀 나은 편이었다. 각목에 온 몸을 얻어맞을 때는 정말 눈앞이 아찔하다 못해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두 다리의 무릎관절 뒤로 나무각목을 끼고 무릎을 꿇고 한 시간씩 앉아 있어야 하는 관절꺾기 고문 역시 참기 어려운 고문의 한 종류다. 두 손과 두 발을 뒤로 비틀어 사족을 하나로 묶어놓고 천정에 매달아 놓는 비둘기고문에 의해 병신이 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고 한다.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 정신을 잃으면 정신을 차리게 한다고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큰 물독에 얼굴을 처넣고 흔들어 대는 물귀신고문 등 상상하기도 끔찍한 야만적인 고문을 조사과정에서 수없이 당해야만 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조사보다는 고문을 위한 도구로서의 죄수가 더 필요했던 것 같았다. 열흘 동안 밤낮으로 잠도 재우지 않고, 먹이지도 않고 때리고 패고, 매달아놓는 고문으로 인해 온 몸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됐다.

두 손목과 두 발을 뒤로 비틀어 하나로 묶어놓고 천장에 매달아 놓는 비둘기고문은 말 그대로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사람의 두 손목과 두 발목을 뒤로 비틀어 하나로 묶어놓은 후 그 사이로 연결해 천장에 매달아 놓으면 남자인 경우에는 머리가 무거워 온 몸이 앞으로 거꾸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한 두 시간도 아니고 몇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몸 안에 있는 피가 앞으로 모인다. 결국 시간이 오래 지나면 두 눈과 코, 입, 귀로 피가 쏟아져 나오게 된다.

함경북도 도보위부로 이송된 후 보름이 지나자 나는 완전히 살아 있는 시체가 돼 버렸다.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없었다. 혼자서는 단 1초 동안도 서 있을 수 없게 됐다. 그 이후 함경북도 보위부로 이송된 지 30일째 되는 날을 맞이했다.

박광일 (사)세이브엔케이 사무국장, 목사
김형직사범대학 졸업
총신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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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2013-01-05 05:34:48
위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저도 탈북하였다가 북송되어 경험한 바입니다.
이러한 고난을 겪은 자로서 이러한 반인권적 북한정권 붕괴운동에 나서는 것 당연.
이러한 사실들은 알리는 것도 그 일환이겠지요.
사무국장으로 사역하심에 응원을 드립니다. 시애틀 집회 중에서-

김상원 2012-09-01 22:11:52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저에게 메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블로그에서 내리겠습니다. 먼저 올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연락이 없으시면 허락하신 줄로 알겠습니다. 제 블로그 주소는 dolpa.egloos.com/3358223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