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분수를 넘으면!
가짜가 분수를 넘으면!
  • 미래한국
  • 승인 2012.08.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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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영화산책 - <왕이 되려던 사나이>(The Man Who Would Be King)

논설은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면 안 된다. 하지만 문학이든 영화든 ‘이야기’는 다르다. 평가를 받는 작품일수록 함의가 중층적 다중적인 경우가 많다. 세계는 단순하지 않고 인생은 언제나 난마처럼 꼬이기 십상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은 그런 세상을 뒹구는 인간의 ‘뒤엉키기 일쑤인 삶’을 솜씨 있게 포착해낸다.

이 같은 작품들은 애초 기대치 이상의 생명력을 갖게 돼 끊임없이 재발견되고 다시 음미되곤 한다. 그리하여 예상치 못한 곳, 뜻밖의 상황에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금 소개하려는 옛날 영화 한편도 꽤 그렇다. 37년 전인 1975년도 영국영화다. 현재의 20대에서 30대 초중반까지 세대에게는 태어나기도 전의 영화다. 이 케케묵은 영화가 눈에 띈 건 제목이 풍기는 묘한 오버랩 덕이었다. <왕이 되려던 사나이 The Man Who Would Be King>다. 2012년 한국, 각양각색 인물들이 현대판 ‘왕’이 되고자 나서 있다. 분위기 탓에 제목에 낚인 셈이다. 하지만 사실 그냥 낚인 건 아니다.

이 영화는 무슨 정치 드라마는 아니다. 권력 쟁투를 다룬 사극도 아니고 현대의 선거전을 다룬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오지 모험담이다.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절, 주인공은 인도 주둔 영국군 출신의 두 남자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가 오늘의 우리 군상들을 비추고 있다.

한 방을 꿈꾸는 사기꾼들

<노던 스타>지의 인도 특파원인 키플링의 사무실, 어느 날 피치 카네한(마이클 케인)과 다니엘 드래보트(숀 코네리)라는 두 사나이가 찾아온다. 프리메이슨이라는 인연으로 체포위기에서 구해준 바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지방의 작은 나라인 '카피리스탄'에 가서 왕이 되려고 한다며 이를 위한 서약에 증인이 돼 달라고 한다. 황당한 그러나 진지한 제의에 키플링은 증인을 서준다. 엉뚱하지만 대담한 ‘모험가’들, 그런데 사실 이들은 ‘사기꾼’들이다. 한때 인도 주둔 영국군에 복무했지만, 절도 총기밀수 협박 등 갖은 건달 짓을 일삼다 추방된 처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반전의 ‘한방’을 꿈꾸며 기회를 찾아 나선 것이다.

어떻든 이 두 사기꾼 모험가들은 갖은 고비 끝에 목적지에 도착, 거기서 전투를 거듭하며 제법 세력을 구축한다. 한 전투 도중 다니엘이 화살을 맞았는데 탄띠 위라 목숨을 건지고 이 덕분에 신처럼 대접 받으며 군림하게 된다. 이 소문을 들은 그곳 사제들이 그들을 부른다. 만난 자리, 한 사제가 다니엘에게 활을 쏘고 이게 빗나가자 최고 사제가 그의 가슴을 칼로 찌르려 옷을 풀어 헤친다.

바로 그 순간 사제의 눈에 들어온 다니엘의 프리메이슨 상징의 목걸이. 사제는 갑자기 “시칸더”라고 외치며 그 앞에 엎드린다. 시칸더는 바로 알렉산더 대왕, 프리메이슨 목걸이를 건 다니엘은 그 후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사제들은 둘을 시칸더의 보물창고로 안내한다. 엄청난 보물! 사제는 “이 보물은 이제 시칸더의 후손인 당신의 소유니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한다. 대박! 마침내 제대로 한건 한 셈이다.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영국으로 금의환향할 꿈에 부푼다.

도취와 허욕의 결말

그런데 반전이다. 다니엘은 시칸더의 후예인 神王으로 떠받들어지면서 거기에 점차 도취되기 시작한다. 결국 다니엘은 보물을 갖고 떠날 생각을 버리고 눌러 앉아 ‘진짜 왕 노릇’을 하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왕국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자손을 남기고자 원주민 여인과 결혼을 감행한다.

하지만 신이 인간 여인을 건드리면 그 여인은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믿음이 문제였다. 결혼식 날 다니엘이 여인에게 입맞추려하자 두려움에 떨던 여인이 그의 뺨을 물어뜯는다. 다니엘의 뺨에선 피가 흐르고, 이를 본 사제들은 다니엘을 ‘가짜’로 선언하고 원주민들과 함께 공격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결국 사로잡히고 다니엘은 처형을 당하고 만다.

이 영화는 여러 층위가 있다. 우선 오락영화다. 재미만으로도 썩 괜찮다. 그러면서 킬링 타임 이상의 여운도 넉넉하다. “제국주의에 대한 냉소”, “문명과 문화인의 허상” 등등, 혹은 정반대로 “백인 우월주의가 물씬한 영화” 등등, 감상은 당자의 자유다. 그러나 어떻든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메시지는 인간의 허욕에 대한 것이다. 특히 분수를 넘어선 정치적 허욕의 운명에 대해 매우 신랄한 풍자가 있다.

두 사기꾼은 인생의 큰 것 한 방을 꿈꾸었던 모험가였지만 궁극적으로는 물욕충족이 목표였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기꾼답게 보물을 챙겨 곱게 떠나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데 원주민들과 그 사제들의 ‘믿음’에 편승해 ‘진짜 왕’이 되려는 ‘정치적 과욕’을 부리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가짜로 들통 나면 ‘난폭한 취급’

2012년 현대 한국판 ‘왕좌의 게임’이 진행 중이다. 만만한 게임이 아니다. 여든 야든 예비 레이스부터가 고달프기 짝이 없다. 여당의 이미 대세라는 후보도 끊임없이 고단한 상황에 시달린다. 그런데 대중들의 분위기가 엉뚱하다. 공식적으로 뛰어들지도 않은 장외의 한 인물이 시선을 상당히 붙들고 있다. 덕분인지 ‘잠재적 예비후보’라는 특이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인물, 그간 ‘밀고 당기기’를 계속해오다(물론 아직도 ‘밀당’은 여전하지만) 드디어 <생각>을 피력하고 나왔다. ‘진짜로 뭔가 되려는’ 마음을 굳히기는 한 듯하다. 그런데 그는 대중들의 막연한 ‘믿음’에 편승해 있다. 그러다 실체가 들통 나면 결말이 매우 매섭게 된다. ‘가짜’라고 선언되는 순간 ‘특이한 대접’은 곧바로 ‘난폭한 취급’으로 바뀌는 것이다. 정치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잠깐은 몰라도 헛바람이 마냥 통하진 않는다.

팁! 영화에 등장하는 키플링이라는 인물은 실제 원작자가 모델이다. <정글북>의 작가 키플링이 바로 그다. 그가 1888년 발표한 동명 단편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이다.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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