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8.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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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농경 정착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토지다. 하지만 유목민에게 중요한 것은 가축이지 땅이 아니다. 곡물재배는 고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지만 유목은 공간을 이동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유목민에 중요한 것은 이동 경로와 시간이다. 농경민에게 중요한 것은 땅이라는 공간을 잃지 않는 것이지만 유목민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 즉 기동성이다.

농경문명은 근본적으로 토지라는 고정된 공간에 결박돼 있다. 인간은 토지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조직화되고 관리되며, 그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는 것이 중요해진다. 왕토사상(王土思想)과 정전제(丁田制) 등은 그러한 목적의 사상 제도이며, 장성(長城)은 바로 그런 공간의 구분과 보호를 위한 울타리다.

그러나 공간을 끊임없이 이동해가는 유목문명은 다르다. 인간생활의 모든 것은 이동을 전제로 조직화되고 관리된다. 울타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이동을 위한 수단이 중요해지고 공간과 공간의 연결이 중요해진다.

길의 장악이 패권이다

상업활동 그중에서도 특히 원격지 교역활동은 이러한 유목민의 특성과 상당 정도 닮아 있다. 유목민에게 가축이 중요한 것처럼 교역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상품이다.

그리고 원격지 교역에서의 이익은 두 가지 요소, 상품을 얼마나 많이 운송할 수 있느냐와 공간적 거리를 넘는 시간을 얼마나 단축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이동운송수단과 ‘길’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대양 항해 시대가 열리기 전 유라시아 내륙의 원격지 교역을 장악한 세력은 기마유목민이었다.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도 교역은 필수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이동능력에서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유라시아 내륙이 아닌 지중해 일대에서도 기본 원리는 비슷했다.

중근동 지역 내륙지대는 낙타 대상(隊商)들이 누비고, 에게 해 일대에서는 일찌감치 해양상업문명이 꽃피었다. 로마 제국은 그러한 교역망 위에 서 있는 문명이었다. 그래서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알려주듯 장성이라는 담벼락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데 힘썼다.

농경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농업 생산력이 아무리 우수해도 그것만으로 일국 차원을 넘어서는 국제적 패권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패권은 군사적 힘의 바탕이 없이는 확보할 수 없다. 그런데 백성 대다수가 농업에 묶여 있으면 자체 군사력을 형성하는 데 제한이 따른다.

일시적으로 징발 동원되는 농민군은 언제나 전문적 군사집단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그에 맞설 수 있는 상비군을 지대수탈적 농업잉여만으로 지탱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발달된 상업활동으로 획득하는 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역사상의 모든 강력한 국가는 교역로의 장악과 그렇게 획득한 부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길렀다. 그리고 역으로 그러한 부를 보장하는 교역로를 장악하고 지키는 힘이 곧 패권이다. 다시 말해 길의 장악이 패권의 핵심이다.

울타리 안의 문명

농업공동체를 이상으로 하는 문명은 이를 언제나 소홀히 했다. 중국 한족 왕조들과 주자학에 빠져 있던 조선이 전형적이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질서에서 상인은 가장 천한 신분이었다. 철저히 문사 중심으로 군인도 자리가 없었다. 근본적으로 울타리 안의 문명이었다. 자신과 바깥 세계와는 구분을 강화하고 문을 닫아걸면 그뿐이었다. 그런 나라에서 상인과 전사가 중요할 까닭이 없었다.

대양 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중국과 조선의 이러한 약점은 치명적이 됐다. 이전에 육로를 기본으로 하고 바닷길을 보조적으로 했던 국제적 교역로가 해양을 주 무대로 바뀌었다. 이제 바다가 길이 되어 이익은 거기서 나오게 됐다. 그러나 주자학적 세계관에서 바다는 아예 존재 자체가 없었다.

중국은 명나라 때 정화의 남해원정 이후 바다를 철저히 버렸다. 함대를 파괴하고 모든 자료를 불살랐으며 심지어 모든 섬에서 사람들을 내모는 공도정책(空島政策)을 단행했다. 조선도 명나라의 이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청나라도 내륙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회사를 통해 인도를 관리한 영국, 상인 돈 버는 꼴을 못 본 조선

근대 서구 해양세력의 대표적 존재였던 대영제국은 달랐다. “대영제국은 무엇보다도 강한 상업적 동기에서 비롯됐다. 프로이센 주재 영국 대사는 ‘우리는 군인이기 이전에 상인이어야 한다’는 점과 ‘영국의 진정한 원천인 부는 무역에 달려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는 훈령을 받았다.”(박지향 영국사) 한마디로 대영제국은 상인과 군인의 제국이었다.

대영제국은 그렇게 대외 개척에 나서면서 상인답게 철저히 최소경비 원칙을 견지했다. ‘싼 제국주의’였다. 사기업에 식민지 통치의 특허장을 준 것은 그중에서도 백미였다.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 시절, 왕관의 가장 빛나는 별이라고 불렀던 인도를 초기에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관리했다. 조선의 주자학자들은 상인들이 돈을 버는 꼴을 못 봐 했지만 영국은 요즘으로 말하자면 종합상사에다 식민지 통치권을 주었던 것이다.

땅덩어리에만 매달려 있던 중국과 조선이 이런 무장한 해양상업세력들에 맞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일본은 달랐다. 일본도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는 쇄국정책으로 문을 닫아걸고 주자학적 관리 방법에 의존했다.

하지만 일본은 원래가 섬나라인 해양국가였으며 상업의 전통 또한 강했다. 강제 개항을 한 후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철저히 서구 근대 해양문명 세력의 전례를 따라갔다.

중국과 조선은 백성들이 섬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데 몰두했다. 하지만 일본은 무인도 돌섬에까지 닥치는 대로 깃발을 꼽으며 해양 영토 개척에 나섰다. 센카쿠 열도와 독도에도 그 시절 그렇게 깃발을 꼽았었다.

오늘날의 패권은 바다에 있다

중국은 지금 그때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절치부심하고 있다. 남사군도, 센카쿠 열도는 물론 우리의 이어도까지 넘보고 있다. 일본도 제국주의 시절 꽂은 깃발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해양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근본적 한계가 있으며, 일본도 미국의 양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오늘날 세계의 바다는 미국이 지배한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미국은 대서양 태평양 양 대양을 끼고 있다. 대항해시대 이래 오늘에 이르는 동안 두 대양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바다가 좁혀져 하나로 연결됐다.

가히 글로벌 지중해 시대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두 대양을 양 날개로 하면서 사실상 세계의 모든 바다를 지배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은 바다에 대한 지배력과 동의어다.

길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그런데 오늘날 가장 중요한 길은 바로 바다다. 바다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수산자원이나 그 어디 해저에 자원이 있다든가 하는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길이라는 데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역상품은 바다를 통해 오간다. 바다를 지배하는 것은 세계의 무역로를 지배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오늘의 패권이다. 지금 그 주인공은 우리의 동맹이다. 무역에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는 한국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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