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2PM] 대한민국은 "김웅용"을 검색했다
[미래한국 2PM] 대한민국은 "김웅용"을 검색했다
  • 이원우
  • 승인 2012.08.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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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백 명이면 백 가지의 ‘성공’이 있고, 그것이 반드시 빛이 잘 드는 화려한 것일 리는 없다.” (릴리 프랭키)

- 천재(天才)라는 단어에는 묘한 뉘앙스가 휘감겨 있다. 하늘의 재능.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실력과 지성이 그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승자’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 27일 미국 텍사스의 비영리단체인 슈퍼스칼러(SuperScholar)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10인'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그 중에서 ‘천재 한국인’의 이름을 발견하고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IQ 210의 천재이면서도 다른 아홉 명에 비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는 간극은 그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 김웅용의 삶은 유년시절부터 영화처럼 극적이었다. 다섯 살에 4개 국어를 구사했다. 여섯 살에 일본 후지TV에서 미적분을 풀었다. 일곱 살에 한양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여덟 살에 콜로라도 주립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열두 살부터 미항공우주국(NASA)의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 ‘천재소년’이라는 수식어 안에서 언론의 관심을 받던 김웅용의 인생이 세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NASA에서 5년을 보낸 뒤인 1978년부터였다. 돌연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검정고시를 치러서 1981년 충북대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김웅용의 승승장구 신화는 ‘실패한 천재’, ‘잊힌 천재’의 수식어에 가려졌다.

- 미국인명연구소(ABI)가 ‘21세기 위대한 지성’에 그를 등재하는 등 김웅용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간헐적으로 지속되었지만 그는 좀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러 나오지 않았다. 본인이 선택한 대로 충북개발공사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낼 뿐이었다. 소년과 청년 사이에서 대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 이러한 행보에 대하여 그는 2006년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틀에 맞춰진 인생보다는 자유로운 삶이 좋다고 말한 그는 “천재라는 말은 잊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미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퇴근 후 동료들과 대포 한잔할 때’로 바뀌어 있었다.

-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도 태도가 변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온 세상이 ‘천재’라는 단어 안에 담긴 엄청난 기대치를 가지고 자신의 판단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는다면? 사람에 따라서 그 부담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 “옆에서 보면 빛나고 있는 인간이 부러워 보이지만, 막상 빛나고 있는 본인은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기타노 다케시)

- 언제나 그랬듯 당장 내일부터 ‘천재소년’ 김웅용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은 또 다른 천재를 찾아, 또 다른 ‘반짝이는 것’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부러워하며 타인의 인생을 엿보다가, 이내 잊어버린다. 지능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동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IQ테스트의 본래 목적을 이미 예전에 잊어버린 것처럼.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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