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래카 해협 制海權은 우리 문제다
말래카 해협 制海權은 우리 문제다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2.08.3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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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플란(Robert Kaplan)의 <몬순>를 읽고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2002년 11월 온 나라가 대선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을 때로 기억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신촌역에서 일단의 학생들이 객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자신들을 연세대 학생들이라고 밝힌 이들은 유인물을 나눠주고 반미구호를 외쳤다.

그해 6월에 발생한 이른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주제로 반미선동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쓴 한 학생이 필자에게 유인물을 건네주었다. “학생, 몇 학년이야?”라고 묻자, “1학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수고가 많군. 미국놈들 정말 나쁜 놈들이지?”라고 다시 말을 건네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습니다. 순결한 이 땅에서 하루빨리 미국놈들을 몰아내야 합니다”라고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미국놈들을 몰아내지?”라고 다시 묻자, “아저씨 같은 민주시민들이 단결하고, 더 나아가 찢어져 있는 남북이 단결하여 힘을 합치면 가능합니다”라고 초등학생 1학년이 국어책을 읽은 것 같은 어조로 또박또박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지하철에서 생긴 일

이 소리들 듣자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감정을 가라앉히고 다정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런데 북한은 왜 그리 못살지?” 이 질문에 이 학생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다른 학생을 쳐다보았다.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대답했다. “미국놈들이 봉쇄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미국놈들이 우리도 봉쇄하면 어떻게 하지? 북한학생들처럼 살 자신 있나?” 이 말에 두 학생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필자를 쳐다보며, “아니, 이 아저씨 민주시민인 줄 알았는데, 악질 수구꼴통이잖아!”라며 온갖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도 합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멱살을 잡혔다.

사태가 험악하게 돌아감을 깨달은 필자는 마침 객차 문이 열린 틈을 이용, 학생들을 밀치고 객차 밖으로 뛰어나갔다. 뒤에서 “저 새끼 잡아”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뒤도 안돌아보고 지하철 밖으로 도망쳤다.

이날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찜찜하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대학생들, 그것도 이른바 명문대생들의 집단 린치를 피해 줄행랑을 놓아야 했다니… 이때 이미 쌀쌀해진 늦가을 하늘을 쳐다보니 순진해 보이는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얼굴들 위로 아프가니스탄 쿤드즈 지역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2001년 11월에 만난 탈레반 소년병들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만 15세나 됐을까? 오랫동안 씻지 못해 얼룩진 얼굴이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솜털이 뽀송뽀송한 어린 아이들이었다. 이 탈레반 소년병들은 ‘확신범’(혹은 양심수?)들이었다. 이들은 ‘하자르’라는 몽골계 아프간 소수민족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모두 그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시아파’이며 다른 인종인 ‘하자르’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하자르’는 ‘더러운 돼지’(이슬람교도들에게 돼지란 먹어서도 안 될 정도로 더러운 존재임)였다. 따라서 이들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라 ‘청소’였다. 이들에게 죄의식이란 전혀 없었다. 아니 자랑스러운 일을 했으며 ‘알라’에게 축복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포로수용소 밖에는 흥분한 ‘하자르’ 민병대들이 문을 열라고 외치고 있었다. ‘타지크’족으로 구성된 북부동맹군 경비대가 이들을 만류하고 있었다. 심지어 몸싸움마저 벌어졌다. 이 몸싸움은 북부동맹군에 배속된 미군 특수부대 대위가 중재하면서 겨우 무마됐다. 미군 대위는 경비대에게는 가능한 빠른 시기에 탈레반 포로들을 미군이 인수해 가겠다고 약속했으며, 하자르족에게는 탈레반 포로들을 미군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식량지원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양심수(?) 탈레반 소년병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탈레반 소년병들은 포로수용소 마당에서 나뭇가지로 땅에 선을 그으면서 돌멩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땅따먹기’ 비슷한 놀이였던 것 같다. 이들은 죽음 따위는 별로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문제는 어른들이었는데… 30대 초반(탈레반에서 이 나이는 노년층에 해당된다!)의 탈레반 지휘관은 “언제 미군이 도착하느냐”고 연거푸 묻는 것이었다. 이 지휘관은 빨리 미군에게 인계돼야 한다고 20대 중간급 지휘관들에게 역설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미군 포로가 돼야 학살을 모면할 수 있으며 둘째, 반미투쟁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국제정치는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호사가들의 지적 유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과목이다. 특히 해외무역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대한민국에게 국제정세는 이미 외국 이야기가 아니라 국내문제인 것이다.

특히 말래카 해협을 중심으로 한 인도양과 서태평양의 원유수송로는 대한민국,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목줄을 쥐고 있는 생명선이다. 석유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대소변도 제대로 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

‘돈’만 있으면 석유를 사 올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흔히 ‘돈만 있으면 무엇이나 살 수 있는 세상’을 비난하는데, 이는 ‘돈 없이도’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다. 세상은 ‘돈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과 ‘돈 있어도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나눠져 있는 것이 실제 상황인 것이다.)

지금은 미 해군 7함대와 싱가포르 함대가 지키고 있기 때문에 ‘무임승차’의 이익을 취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만약 다른 국가 혹은 해적(21세기에 웬 해적이냐며 놀라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는데, 아덴만 인근 해역에서의 소말리아계 해적들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니 사실 말래카 해협은 해적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단 미 해군과 싱가포르 해군 덕분에 대형 유조선들의 안전 운항이 보장되고 있을 뿐이다!)들에 의해 말래카 해협이 봉쇄된다면, 대한민국은 잘해야 60일 정도 버티다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아니 멀리 말래카 해협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대한민국과 중국과의 서해에서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

현재 중국은 대한민국과의 배타적 경제수역 협정을 회피하고 있다. 대한민국 서해 앞바다까지 중국의 바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 해군의 도움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과 협상하느니, 가능한 시간을 벌었다가 나중에(중국 해군이 보다 강화된 다음에) 협상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중국은 자신들이 확보해야 할 선인 이른바 ‘제1도련’(First Island Chain)을 일본열도, 필리핀, 호주 선으로 가정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읽은 <몬순>은 ‘인도양과 미국 국력의 미래’(The Indian Ocean and The Future of American Power)라는 부제가 잘 보여주듯, 인도양에서의 해군력의 역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로버트 카플란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말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방대한 국제정치 및 역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생생한 현장답사와 체험을 바탕으로 저술된 그의 이야기들은 항상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이번 <몬순>도 예외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카플란은 인도양, 특히 서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시키는 말래카 해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카플란의 고민은 경제적 이유로 인해, 이 지역에서의 미 해군의 위상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힘의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 중국 해군은 대양 해군을 꿈꾸며 날로 강화되고 있다. 파키스탄과 스리랑카에 중국 해군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를 개발하고 있다. 또 이에 맞서 인도가 해군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말래카 해협을 둘러싼 각축전

자유시장경제의 도입으로 고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인도는 ‘신커즌주의’(Neo-Curzonism)의 기치 하에 인도양을 자기 앞바다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 있는 사실은 이러한 인도양의 세력 역학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또 다른 해군력으로 일본 해군과 한국 해군을 거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플란은 중국이 계속 성장할 가능성과 중국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칠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고려해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첫 번째 생각난 것은 자신의 생명줄을 남에게 맡겨 놓은 상태에서 그 생명줄을 쥐고 있는 자를 욕만 하고 있는 철부지를 벗어나 이제는 성인이 돼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사실이다.

둘째, 따라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노선은 카플란이 언급한 ‘양심을 가진 현실정치’(Realpolitik with a conscience)라고 생각한다.

셋째, 바로 이러한 바탕에서 ‘신커즌주의’를 활용한 인도와의 동맹, 그리고 대한민국의 처가집이 돼가고 있는 베트남, 필리핀과의 새로운 동맹 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러한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사회, 정치적 분위기 조성이 더 시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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