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최대 판도는 세계의 지표면과 총인구의 1/4을 아울렀다. 게다가 전 세계 대부분 해양의 통행을 장악하고 있어 사실상 세계의 2/3를 지배했다.
이 대단한 제국의 역사를 간단히 요약하면 두 여왕의 이름으로 정리된다. 엘리자베스 1세와 빅토리아 여왕이다.
대영제국이 가장 크게 팽창해 있던 시기는 20세기 초였다. 제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의 해외 식민지와 몰락한 오스만투르크의 영토를 상당 정도 접수하게 되면서였다. 하지만 대영제국은 이때부터는 내리막길이었고, 전성기는 그 직전인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시대였다.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하던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런데 이 전성기의 기초를 닦은 이도 여왕이었다. 3세기 전의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03)였다.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은 엘리자베스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영국은 유럽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영국을 보고 훗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되리라고 했다면 여왕 자신부터가 웃고 말았을 것이다. 그 시절 그런 제국은 이미 따로 있었다. 바로 스페인 왕국이었다. 스페인은 1492년 이사벨라 여왕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을 쫓아내고 통일 왕국을 이룩한 이래 국력이 절정에 있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마젤란 함대가 태평양을 돌아 필리핀을 발견 귀환하는 세계 일주 항해에 성공하여, 스페인은 세계 전역에 식민지를 거느렸다. 특히 아메리카로부터 유입되는 엄청난 금 은 덕분에 막강한 국력이 구축됐다. 영화 <골든 에이지>는 이 시대가 배경이다. 2007년 작품인데, 그로부터 9년 전인 1998년 발표된 영화 <엘리자베스(Elizabeth)>의 후속편이다.
전작 <엘리자베스>는 개신교도인 공주 엘리자베스가 이 위기를 넘기고 왕위에 올라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다툼을 제압하고 통치권을 굳혀 영국의 통합과 안정을 가져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지막 장면,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결혼했다. 영국과.” 이어 해설 자막이 나온다. “엘리자베스는 40년을 더 통치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죽었을 무렵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였다. 그녀의 통치 시기는 황금시대라고 불린다.”
무적함대를 격파하다
<골든 에이지>는 엘리자베스가 그 황금시대를 어떻게 열게 되는지 보여준다. 때는 1585년, 식민지의 황금으로 막강한 국력을 구축한 스페인은 유럽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당시 스페인 왕 펠리페(Felipe) 2세는 유럽을 ‘거룩한 전쟁(Holy War)’으로 빠뜨리고 있었다. 오직 영국만이 그에 저항하고 있었다.
영국은 개신교 여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바로 엘리자베스였다. 엘리자베스를 겨냥한 치열한 음모 끝에 스페인은 마침내 그 유명한 아르마다(Armada) 즉 무적함대를 앞세워 영국에 대한 전면 공격을 시작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펠리페 2세의 자랑인 무적함대를 궤멸시킨다. 1588년이었다. 스페인의 시대가 끝나고 영국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골든 에이지> 마지막 장면, 자막은 이렇게 흐른다. “무적함대의 궤멸은 스페인 해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였다. 펠리페는 10년 후 스페인을 파산 상태로 남긴 채 죽었다. 영국은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객관적 전력만으로 볼 때 영국이 스페인을 물리친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영국은 여전히 잠재적 분열이 상존하고 있었다. 종교적 이유로 스페인보다 오히려 엘리자베스에 더 반감을 갖는 세력이 국민 절반에 육박했다. 군사적으로도 무적함대의 전력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에게는 스페인에 없는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 종교적 관용과 엄격한 법치의 조화였다. 엘리자베스는 반역을 꾀할 때는 단호히 응징했지만 종교적 이유 자체만으로 탄압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른 한 가지는 바로 해적(海賊)이었다.
관용과 법치의 조화, 그리고 해적
영화에서는 이것을 월터 롤리(Walter Raleigh)라는 인물을 통해 살짝 보여준다. 그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알현하는 자리, 스페인 외교관들은 그는 해적이라며 항의한다. 그러자 롤리는 “금을 더 빼앗는 만큼 폐하는 더 안전해집니다”라고 응수한다.
그가 무적함대와의 해전에서 화공으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롤리는 실존 인물이지만 이 대목은 사실이 아니다. 스페인의 함선을 약탈한 해적이면서 무적함대와의 해전에서 큰 역할을 한 실제 주인공은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였다.
사실 스페인과 영국의 갈등에는 종교적 문제만이 아니라 해적 문제도 있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드레이크였는데, 그는 스페인의 배는 물론 식민지를 직접 공격 약탈하기도 했다. 금액으로도 어마어마했다. 당연히 펠리페 2세는 영국에 그의 처벌과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오히려 드레이크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했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는 단순한 해적이 아니었다. 그는 마젤란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태평양을 돌아 세계 일주 항해에 성공한 영국의 국민적 영웅이었다.
게다가 해적질은 국가로부터 면허장을 받은 일종의 사업이었고, 여왕 자신이 가장 큰 투자자의 한 명이었다. 영국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말대로 당시 영국은 가히 해적국가였다.
엘리자베스 리더십의 의미
무적함대에 맞선 영국함대의 사령관은 항해 경험은 꽤 있었으나 해전의 경험은 없었다. 그런데 그 휘하에 드레이크가 부사령관으로 있었다. 영국 함선은 스페인 함선에 비해 크기는 작았지만 기동성이 있었다. 함포의 사거리도 스페인 함선보다 길었다.
이것은 스페인 함선을 약탈하고 재빨리 도망치던 영국 해적선의 특징 그대로였다. 드레이크는 이 장점을 살려 기습 공격과 화공선 돌격으로 스페인 무적함대에 강력한 타격을 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이런 인물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비록 허구겠지만 그녀의 지도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전투 개시 전 그녀가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병사들 앞에 나선 장면이다.
“나의 사랑스런 백성들이여… 나는 뜨거운 전장의 한가운데 서기로 결심했다. 너희들과 함께 살거나 죽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서 있는 동안은, 어떤 침략자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전투가 끝나는 날, 우린 천국에서 다시 만나든가 아니면 승리의 들판에서 만날 것이다.”
함께 죽을 각오로 나선 지도자와 무엇을 함께 하지 못할 것인가? 대영제국은 그렇게 시작됐다. (미래한국)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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