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범죄와 싸워 이기려면
공공의 적 범죄와 싸워 이기려면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9.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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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체가 온통 범죄소식으로 뒤덮였다. 지난 8월 18~22일 사이 전국에선 9건의 흉기 난동사건이 발생해 2명이 숨지고 2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3건은 ‘묻지마’ 칼부림이었다.

공포스러운 흉기난동에 이어 발생한 7세 여아에 대한 납치 성폭력은 일거에 대한민국 사회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급기야 성범죄자에 대한 ‘물리적 거세’ 입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청소년에 대한 화학적 거세 범위 확대 방안도 등장했다. 치안인력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강력범죄 대처를 위해 경찰 1천명과 보호관찰관 250명을 늘리는 내용의 인력증원안을 최근 내놓았다.

‘범죄왕국’ 대한민국, 살인 6위·강간 11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중 살인 6위, 강간 11위의 대한민국. 강도, 살인, 강간, 방화 등 강력범죄는 2001년 이후 10년간 무려 84.5%나 증가했고 성폭력사건은 2002년 6754건에서 2011년 1만9491건으로 급증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사회를 범죄가 날뛰는 아수라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아이러니한 것은 세계 범죄 전문가들이 지난 20여년 동안 범죄의 원인을 놓고 여전히 논쟁중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범죄학에는 사회해체이론, 자아통제이론, 사회통제이론, 깨진 창문이론, 범죄 자본이론 등이 춘추전국 시대의 백가쟁명을 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영성과 예술론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적 범죄론’까지 등장했다. 그야말로 사회학의 모든 범주들이 총망라돼 논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왜 범죄가 일어나는가’라는 문제와 ‘어떻게 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속시원하게 대답하는 학자는 없다.

한 사회에 범죄가 일어나는 이유와 관련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사회적 관용이 범죄를 확산하다는 사실이다. 흔히 신뢰, 용서, 타협과 같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잘못 사용되면 이것이 일종의 범죄자본(criminal capital)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는 서더랜드(Edwin Sutherland)와 같은 학자에 의해 경험적으로 확인됐다. 즉 ‘법위반에 대한 우호적 태도’가 높은 범죄율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나주 여아 납치 성폭행 사건의 주인공 고종석은 자신의 고향 보길도에서 어릴 때 마을에서 좀도둑질을 자주 저질렀지만 그때마다 마을 주민들은 고 씨의 집안이 어렵다는 이유로 야단으로 끝냈다고 한다. 결국 고 씨는 15살이 되던 해 새마을금고에 모인 마을 행사기금 700만원을 훔쳤고 주민들은 고종석을 경찰에 인계하는 대신 고향 보길도에서 그를 내보냈다. 고종석의 사건을 들은 한 마을 주민은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그때 종석이를 경찰에 신고해 혼이 나도록 했어야 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사회적 관용이 범죄자본을 키운다

범죄가 사회적 관용을 먹고 자란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사례가 있다. 바로 학교폭력이다. 최근 학교폭력은 과거와 달리 조직적이고 폭력적으로 전개돼 왔다. 단순한 비행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를 줄이기 위해 과거 여러 방책이 제기됐으나 확실하게 효과를 본 것은 올해 3월부터 시행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제도였다.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해당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하는 이 제도가 시행되자 해당 학교의 폭력사건은 평균 50%이상 감소했다.

문제는 국가인권위의 결정이다. '가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졸업 전에 해당 기록을 삭제 권고하자 일선 교사들 가운데는 ‘아예 이 제도를 시행하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이렇듯 범죄에 대한 엄격한 불관용의 태도가 범죄를 줄일 수 있는 점에 비춰 볼 때 우리 사회는 선진국에 비해 반사회적 범죄에 대한 관용도가 높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최근 전국형사법관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13살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 가운데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비율이 지난해 50퍼센트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살인, 폭력, 강간과 같은 범죄에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형량이 감소되는 우리 범제도의 문제점도 관용을 통해 범죄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범죄는 무관용과 강력한 처벌만으로 예방이 가능할까. 많은 경험적 연구들은 범죄가 처벌만으로는 줄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경우 범죄와의 전쟁과 함께 지역 조폭과 마약 보스들에게 뉴욕 쓰레기 수거 사업을 분할 독점으로 보장해 주는 대신, 조무래기 마약상들과 피라미 조폭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보스들이 관리하게 하는 ‘비즈니스 협정’을 맺기도 했다. 범죄를 비경제효과로 보고 일종의 시장원리를 적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 경찰력이 선진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 1인당 담당 국민은 프랑스 300명, 미국 354명, 영국 380명 등에 비해 한국은 501명이다.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중 치안예산 비중은 캐나다 0.87%, 일본 0.83%, 미국 0.87%, 프랑스 1.02%, 영국 1.43%, 한국은 0.42% 로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그렇다면 경찰력을 늘리면 범죄가 줄어들까.

경찰력을 늘리면 범죄가 줄어들까

미국의 범죄학자 제이콥과 리치 교수 등은 1980년 초에 뉴욕 시카고 등 주요 10개 도시에서의 30년간(1948-1978)의 시계열 자료를 이용해 경찰력과 경찰활동의 증가와 범죄율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10개 도시 중 6개 도시에서 경찰활동의 증가가 오히려 범죄율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자들(로프틴, 맥도웰)이 디트로이트市의 50년간(1926-1977) 자료를 토대로 한 분석에서도 경찰력이 범죄를 감소시켰다는 것을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의 체포활동과 순찰활동의 범죄억제효과 등을 각각 살펴본 연구들에서도 때로는 범죄억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형사정책연구원의 한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즉, 경찰력을 증가시키면 범죄자들은 검거가 표적이 되는 큰 수익의 범죄를 포기하는 대신 작은 수익의 범죄로 대체하며, 그렇게 줄어든 범죄수익을 보충하기 위해 더 자주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 주장도 있다. 경찰 활동이 증가되면서 신고가 늘어나고, 경찰이 인지 범죄를 처리하는 건수가 증가해서 오히려 범죄통계가 올라간다는 주장이다. 결론은 무엇이 맞는지 여전히 모른다는 점이다.

경찰력만으로는 범죄예방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치안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국민들이 안전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따라서 범죄 예방과 사후 관리방안을 위해 선진국에서는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CCTV를 더 늘리고 범죄인, 범행 대상, 범죄 기회 등 범죄 3요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도시환경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감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옥내에서 발생하는 살인, 폭력, 강간과 같은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는 맹점을 갖는다. 성폭력의 대부분은 아는 사람을 통해 발생한다.

무엇보다 일부 특정 범죄자에게는 증가된 수준의 처벌 및 제재수단이 충분한 범죄억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레메르트(Lermert)와 같은 학자들은 1960년대에 이미 경험적 연구를 통해 고질적인 범죄습관과 반복적인 범죄 경력을 갖고 있는 일부 범죄자에게는 집중보호관찰이나 전자감독과 같은 처벌강화가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 예로 일부 상습 음주 운전자에게는 처벌 및 단속 강화가 범죄억제 효과를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미국의 범죄학자들(Freeman, Liossis,& David)은 오히려 강화된 처벌이 범죄자로 하여금 저항심을 불러 일으켜 향후 더 심각한 문제행동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즉, 처벌의 증가가 무조건적으로 범죄율 감소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통제, 범죄성향은 10세 전에 고착된다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를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가족은 1차적으로 사회화가 이뤄지는 사회적 자본이자 최소단위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가정불화나 잘못된 양육방식으로 인한 자녀들의 범죄성향이 아주 이른 시기에 형성되는데, 자녀들은 8~10세경에 가정 폭력, 무관심, 차별대우, 부모의 일탈, 방치 등을 겪을 경우 예비적 범죄성향이 고착된다고 한다.

이러한 범죄성향의 고착은 성인이 되어서도 해결되지 못하며 일생에 한번은 범죄자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경험적 이론을 ‘자아통제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 이론은 이제까지 범죄의 원인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해체로부터 찾으려 했던 사회적 생태이론을 뒤집었다.

더구나 사회 통제를 강화하면, 즉 처벌을 강화하면 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통제주의적 관점을 바꾸게 했다. 물론 오늘날까지 범죄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느냐 사회에 있느냐는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이 주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거의 모든 강력 범죄자들의 유년 시절이 불우한 가정환경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윤우석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2011년에 발표한 <가족의 구조적 특성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부모의 양육과 청소년 비행에 미치는 영향 검증>이라는 긴 제목의 보고서는 청소년들의 비행이나 범죄에 가정의 경제적 형편보다 가정 내 폭력과 부모의 비정상적인 양육 방식 등 가정환경이 청소년의 비행과 일탈에 더 분명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한 결과는 선진국에서도 같았다. 즉 가난한 가정이 아니라 부유하더라도 화목하지 못한 가정의 자녀들이 범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학교에서 왕따를 주도하는 학생들의 가정은 중산층 이상이라는 언론 보도들도 있다.

가족 회복 프로그램의 필요성

그렇다면 범죄의 예방에 우리는 어느 정도 해답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범죄는 사회의 모순이나 결속력의 문제로 발생한다기 보다는 개인이 처한 어릴 때의 가정환경에 크게 기인하고 있고 가족의 해체로 말미암은 부모들의 잘못된 양육방식, 그리고 가정 내 폭력이 수많은 예비 범죄자들을 양산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이 매년 발간하는 범죄통계자료인 ‘범죄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체범죄 발생건수는 186만7882건에서 216만8185건으로 약 16%가 증가한 반면에 강간 등 성폭력범죄의 발생건수는 1만189건에서 1만6156건으로 58.5%가 증가했다.

이에 우리 사회에는 성폭력특별법, 청소년성보호법, 위치추적전자장치법, 성충동약물치료법 등 특별법과 함께 성범죄자 신상정보공개, 치료감호,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여기에 물리적 거세법도 등장했다. 사형 집행 재개도 언급된다.

이렇듯 강력한 성폭력 대책들을 속속 도입했음에도 성폭력범죄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범죄란 어릴 때부터 교화가 필요하다는 자기통제 이론을 우리 사회가 적극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의 범죄이론, 즉‘감시와 처벌’이라는 판 옵티콘(수용소 감옥)을 넘어 우리에게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아무리 범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무관용으로 대해도 가정이 파탄나는 한 범죄자는 계속 등장한다는 사실과 살인, 강간, 폭력 등의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 만능, 감시 만능으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와 시민단체 역할 늘려야

나주 여아 성폭력범 고종석과 부산 여중생 납치 사건 김길태의 케이스는 모두 부모의 박대와 무관심, 그리고 가정 폭력에 노출됐다. 이러한 가정의 문제를 방치한다면 제2의 고종석, 조두순, 김길태는 얼마든지 계속 등장한다는 이야기다.

국가가 나서기 어렵다면 교회와 시민단체들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문제 있는 가정의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줄 멘토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방법이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파탄난 가정의 굴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희망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동시에 부모들을 깨우치고 권면할 때 범죄와의 전쟁은 비로소 승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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